‘넥타이 맨 의정활동 도우미’? 현실은‘사노비’ 신세...


국회의원 보좌진은 스스로를 ‘사노비'라고 자조한다. 겉으로는 4급부터 9급, 인턴까지 정무직 공무원 신분이지만 생사여탈이 온전히 국회의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보좌직원의 임명과 면직은 국회의원의 도장 찍힌 서류 한 장으로 끝난다.
 
어떤 법적 보호장치도 없다. 국회의원은 유권자, 국민들 앞에서 종복, 머슴을 자처한다. 반면 보좌직원은 처한 현실 때문에 사노비처럼 의원의 온갖 갑질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좌직원의 의원실 내 처우는 온전히 의원의 몫이다. 급여나 대우는 법에 정해진 대로 받지만 모든 의원실 보좌진이 다들 ‘넥타이 맨 의정활동 도우미'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보좌직원의 인격을 비하하는 막말이나 밤낮 없는 업무 지시, 부당한 사적 업무 요구 앞에서 사노비의 애환은 아비규환의 신음이 되기도 한다.
 
페이스북 계정인 ‘여의도옆 대나무숲'은 국회에 근무하는 보좌진의 애환을 익명으로 토로하는 곳이다. 누가 운영하는 지 모를 해당계정에는 하루에도 몇 개의 게시물이 올라온다. 이 대나무숲은 지난 2016년 12월 12일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다.
 
회관에서 벌어지는 의원들, 보좌진들의 온갖 갑질, 성추행 등의 부끄러운 민낯이 적나라하게 담긴 게시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이제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때론 보좌진의 애환이나 격려가 올라오기도 하지만, 부당한 처우에 대한 과감한 폭로가 올라오기도 한다.
 
“사회곳곳에서 ‘미투'가 심상치 않다. 머지않아 국회에서는 ‘갑질 미투’바람이 불지 모른다. 사실 의원회관 내의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해 쉬쉬해 왔던 것을 잘 안다.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추악한 악의 근원을 도려내야 한다."
 
최근에 올라 온 ‘미투’를 응원하고 국회에서의 ‘미투’ 바람을 전망하는 글이다.
 
“요새는 여자 보좌진끼리 만나면 미투 얘기만 한다. 너도 미투야?로 시작하면 얘기가 끝이 없다"라고 밝히는 글도 있다.
 
“여자는 허리가 가늘어야 여자지~"라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술 먹고 밤마다 여직원들에게 전화질하는 보좌관을 고발하는 글처럼 생생한 경험담까지 올라온다.
 
국회 의원실은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의 정점을 중심으로 보좌관, 비서관, 비서, 인턴들이 철저한 권력관계로 묶여 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국회의원이나 의원실을 총괄하는 보좌관의 경우 이런 유혹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문학계의 고은, 연극계의 이윤택, 영화계의 조재현, 연예계의 조민기가 국회에 없으란 법은 없다. 국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조차 국회가 '미투'에서 조용한 것을 의아하게 바라본다. 어느 순간에 터질 시한폭탄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의원들,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미투'운동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처신을 바로 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페북 ‘여의도옆 대나무숲'에 익명으로 고발하는 ‘미투' 게시물들이 올라오는 한 국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지난 연말 ‘여의도옆 대나무숲'을 도배했던 게시물들은 ‘8급 신설'문제였다. 국회는 지난 연말까지 의원실마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급, 7급, 9급 각 1명씩과 인턴 2명을 직원으로 둘 수 있었다. 지난 연말에 8급 1명을 신설하고 인턴 1명을 줄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국회 인턴제도에 대해 ‘열정페이'라는 비판은 꾸준히 있어왔다. 국회 인턴은 ‘정식 직원'의 역할을 해 온 지 오래되었다. 국회에서 인턴이 ‘급수’를 다는 것은 실력이 아닌 ‘운’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의원실에 빈 자리가 없으면 승진은 불가능하다. 인턴직원들의 ‘열정페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8급 신설은 국회의원 회관 내부에서는 조용하지만 뜨거운 논란이 되었다.
 
인턴을 8급으로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신설한 자리에 인턴을 승진시키지 않는 의원실이 꽤 있었다. 인턴들보다 선임인 9급 행정직 여비서들이 8급을 꿰차거나 아예 지역사무실 몫으로 돌린 것이다. 인턴을 승진시키는 경우에도 2명의 인턴 중에 누구를 승진시킬 것이냐 하는 것도 문제였다.
 
국회는 지연, 학연을 비롯한 온갖 연줄이 작용하는 곳이지만 실력에 대한 잣대가 엄정한 곳이기도 하다. 의원이나 보좌관, 비서관 입장에서 업무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인턴까지 8급으로 올리라는 ‘원칙'은 일견 부당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8급 자리를 둘러싸고 급수를 받고자 하는 인턴들과 다른 보좌진들 간의 이견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유행을 타는 이슈말고도 ‘여의도옆 대나무숲’은 회관생활의 애환이 끊이지 않는다. 계단이나 화장실과 같은 흡연 금지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를 경고하는 게시물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올라온다. 계단 비상구나 인적이 드문 화장실에서 피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여지없이 ‘대나무숲'에서 저격 대상이 된다.
 
능력 없이 갑질만 일삼는 보좌관, 비서관들도 자주 저격 대상에 오른다. “제대로 된 비서관이 없다”는 외침은 능력 떨어지는 상관의 갑질에 신음하는 하위직원들의 비명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직원들 간에 알게 모르게 형성되어 있는 긴장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의도옆 대나무숲’에 가면 국회 밖 사람들은 모르는 애환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