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한 여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운동’(나도 피해자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가해자들의 면면을 보면 연극계 거장부터 유명배우, 교수, 시사만화가에 종교계 신부까지 다양하다. 가해자만도 여검사가 고백한지 한 달도 안 돼 22명이나 됐다. ‘터질 게 터졌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등 사회 전반에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돼 있었는지 대한민국 성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 여의도 ‘여비통신’발 미투운동 번질까 전전긍긍
- 3000여 명 근무하는 국회… 자구책 마련은 ‘환영’

 
연극·영화 등 문화계, 종교계, 대학가, 언론계까지 ‘미투 운동’이 확산됐지만 ‘무풍지대’가 있다. 바로 국회다. 오히려 정치권은 ‘미투 운동’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김어준VS금태섭 미투논쟁
금태섭 맞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불을 지폈다. 김 씨는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진보진영 인사들이 거론되면서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특정 세력이) 미투 운동을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로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보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를 무슨 여야나 진보 보수가 관련 있나”라며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어도 방어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감춰줘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진보 진영내의 젠더 갈등으로 프레임이 잡히면 미투운동이 흔들리고 진보 진영 내의 분열로 끝나게 된다”며 “내가 우려하는 것은 미투 운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을 차단하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 의원은 이에 대해서도 “왜 진보 진영의 분열 공작 가능성 등 정치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다”며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는 피해자들이 걱정 없이 피해 사실을 얘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데 집중해야지 피해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동에 반대한다”고 재차 반박했다.
 
실제로 국회는 2차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점은 반길만하다. 여당이 가장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미투 1호법안인 ‘여성폭력방지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현행법상 근거가 없던 ‘성폭력 예방 교육'을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들이 나서서 유치원·초중고교에서 시책을 수립·시행하는 조항이 담겼다(제19조).
 
이 밖에도 ▲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업무상 불이익 등 2차(사후) 피해 관련 지원 ▲ 여성폭력방지정책 관련 국가기본계획 5년마다 수립 ▲ 가정폭력·성희롱 등 여성폭력실태조사 3년마다 실시 ▲ 현행 파편화된 여성폭력 발생 현황 및 유형별 가해·피해 등 현황 통계를 종합적으로 구축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당은 법안 발의뿐만 아니라 당정협의와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성폭력을 방지하고 미투 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또한 민주당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론화할 경우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맞고소되는 것을 막는 형법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나아가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는 성폭력 및 성매매 범죄경력에 대해서는 기소유예를 포함해 형사처분 시 공천에서 배제시키겠다고도 강조했다.
 
바른미래당도 ‘이윤택 처벌법’(미투응원법)을 발의해 이슈 선점 경쟁에 나섰다. 이 처벌법은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이미 오신환 수석부대표가 발의한 형법 개정안 등 성범죄 관련 7개 법안을 묶은 패키지 법이다.
 
민주평화당 역시 공직자의 ‘갑질 성폭행’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당내에 고발센터를 설치할 것을 약속했다. 정동영 의원은 법관과 검사의 각종 성범죄를 엄중 처벌하는 내용의 ‘법관징계법’과 ‘검사징계법’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처럼 정치권이 성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발의나 간담회 개최가 아닌 실질적인 법안 통과 여부다. 국회가 아직은 ‘미투 운동’에 무풍지대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회 종사자들조차 언제 터질지 초미의 관심사다. 특히 의원회관은 총 3000여 명의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다. 국회의원 300명에 의원실당 보좌진 8명 그리고 인턴 1명까지 합한 숫자다.
 
과거 모 국회의원실 남성 보좌관은 직위를 활용해 여직원에게 ‘같이 자자’고 했다가 뒤늦게 외부로 알려져 쫓겨난 바 있다. 그 여직원은 제안을 거절한 후 더 이상 사무실 근무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해서 사퇴했다.
 
이후 여직원은 여비통신(여비서들의 SNS통신공간)통해 선배 여비서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고 이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보좌관은 방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언론보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보좌관은 최근까지도 광역단체장 고위직을 역임한 바 있다.
 
국회의원과 여비서관 부적절한 소문도 횡행한 적이 있다. 19대 국회 때다. 국회의원 회관 7층, 여비통신 발이다. 주말 7층 의원 회관 복도에서 ‘여비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면서 그 사건이 여비통신에 걸렸다.
 
여당 중진 모 국회 의원과 모 여비서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가 지나가는 모 여비서의 귀에 들렸다는 내용이었다. 삽시간에 여비통신을 통해 국회회관 내로 퍼져나갔다. 여비통신의 결론은 여당의 A 의원이 정치적 경쟁관계인 B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퍼뜨린 해프닝으로 유야무야됐다. 진실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이처럼 국회의원이 상주하는 의원회관이 정치적 특수관계로 모인 집단이라는 점, 그리고 의원 개개인 성향에 따라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 미투운동이 번질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된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국회의원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다. 유명 배우나 감독, 연출가는 일반인이지만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으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에 있을 경우에는 더 그렇다.
 
국회 ‘미투운동’ 터지기전
대책 내놓아야

 
하지만 정치권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만큼 미투운동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자성의 계기로도 삼아야 한다. 단순히 지방선거를 의식해, 아님 2030 젊은 여성 표를 잡기 위해 포퓰리즘식으로 공약을 내놓는다면 국회 역시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때 가서는 원하건 원치 않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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