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문 제기인가 ‘근거 없는’ 마타도어인가
반면, 폭침 주역을 특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제기되면서 이 기회에 북한 소행인지 아닌지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북한 어뢰에 의한 수중 폭발로 천안함이 폭침했다고 최종 발표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영철 방남 계기로 ‘천안함 사건’ 진실 공방 점화
어뢰 추진부·각종 부품 “북한 산” 논란의 ‘1번’ “北 어뢰 표기”
‘폭침’인데 고열 흔적·화약 냄새 無·사인 ‘익사’ “이해 안 가”
‘진상 규명’ 범시민단체 출범 움직임…휘발성 커 실효성은 의문
천안함 사건은 1200톤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2010년 3월 26일 밤 9시경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상 경계 임무를 수행하며 6.3노트(시속 11.7㎞) 속도로 기동하던 중 선체 중간 부분이 두 동강 난 채 침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함정 승조원 104명 가운데 46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UDT(해군 특수부대) 한주호 준위가 천안함 수색 과정에서 희생되는 안타까운 상황도 발생했다.
사건 직후 정부는 침몰 원인을 규명할 민·군 합동조사단을 꾸렸고, 합동조사단은 같은 해 5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중(重)어뢰(CHT-02D)에 피격돼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천안함 침몰 원인을 조사한 합동조사단 윤덕용 공동단장은 조사결과 발표에서 이른바 ‘1번’ 어뢰의 뒷부분 추진부를 결정적 물증으로 제시하며, “천안함은 북한제 어뢰에 의한 외부 수중폭발의 결과로 침몰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합동조사단은 백령도 해저에서 쌍끌이 어선에 수거된 프로펠러와 추진 모터, 조종 장치 등이 북한의 수출용 무기 소개 책자에 소개된 이 어뢰의 설계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1번’ 한글 표기에 대해서는 군이 확보한 북한의 어뢰 표기 방법과 일치하며, 이는 어뢰 부품이 북한에서 제조됐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당시 합동조사단에는 미국·영국·호주·스웨덴 전문가들이 참여했으며, 미국 측 조사단 단장 격인 에클스 준장은 당시 “국제 조사단은 여러 가지 증언과 과학적 상상을 통해 분석했으며 모두 현재 조사 결과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불신’ 응답↑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발표에 대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여론이 존재한다.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난 여론조사도 있었다.
2015년 3월 천안함 사건 5주기를 맞아 뉴스타파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천안함 조사를 어느 정도 신뢰하느냐”라는 질문에 ‘불신한다’는 응답이 47.2%(신뢰하지 않는 편 26.5%,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20.7%)로 ‘신뢰한다’는 응답 39.2%(매우 신뢰 18.8%, 신뢰하는 편 20.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천안함 재조사 필요성과 관련해선 “불신 해소 차원에서라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공감한다”가 48%로 “공감하지 않는다” 32.5%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0년 당시 국방부 민관 합동조사단에 참여한 신상철 전 조사위원은 폭발의 3대 요소(고열·파편·충격파)를 언급하며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신상철 전 위원은 “국방부 조사보고서가 밝힌 TNT 360kg의 화약이 터지면 천안함 (주변에) 3000도가량의 고열이 나타나는데, 천안함 내부 설비나 비닐, 플라스틱 (어느) 하나 불에 녹은 흔적이 없다”며 “그을음도 없고 화약 냄새를 맡았다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당시 생존자 발언을 보면 화약 냄새는 맡지 못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신 전 위원은 파편과 관련해선 “(폭발이 터지면) 잔해로 파편이 생기는데 천안함 하부에는 파편 흔적이 없다”고도 했다. 충격파(폭풍)에 대해서는 “바로 발밑에서 어뢰가 터졌는데 절단면 상판 위에 있는 형광등이 멀쩡하다는 게 납득이 되느냐”며 “또 폭발에 가장 취약한 것은 생명체인데, 폭발에 노출된 사람은 고막이 터지거나 코피, 장 파열 등 이비인후과적 현상이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생존자·사망자 중 이비인후과 현상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사망자의 사인은 모두 익사인 것으로 파악된다. 생존자의 부상도 골절, 열상(피부가 찢어짐), 타박상은 있었지만 화상, 파편상, 관통상 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진보 지식인 유시민 작가는 폭발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유 작가는 지난 1일 TV프로그램 ‘썰전’에서 “어떤 폭발 등으로 인해 배가 반파된 건 인정되지만 어떻게 확신하느냐”며 “생존 장병들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대(對)잠함 작전을 한미 합동으로 하고 있는 중에, 우리 해군은 적을 본 적도 없고 전투를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정부의 조사 결과 중 제기된 의문에 대해 정부가 한 번도 제대로 해명한 적 없다”며 “정부를 안 믿는 게 아니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여전한 합리적 의문 정도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19대 국회 국방위에서 활동한 김광진 전 의원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그때 많은 주장이 나왔을 때 정부가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반론하고 설명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까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쉽다”고 말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특조단 발표 내용 중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도 많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결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고 주장했다.
“조작? 어떻게 눈을 다 속이나”
하지만 천안함 사건은 명백한 북한 소행이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김혁수 전 해군 제독은 “(북한 소행이라는) 수많은 증거가 있지만 어뢰 잔해에 ‘1번’이라고 적힌 어뢰관리번호, 북한의 수출용 어뢰설계도, 과거에 회수한 북한의 훈련용 어뢰가 (명백한) 그 증거”라며 “74명의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북한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피격이라고 밝혔다”고 강조했다.
김 전 제독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좌초설’에 대해 “그곳에는 암초가 없으며 암초에 부딪히면 선저가 앞에서 뒤로 길게 찢어지지 중간에 10m가 날아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잠수함 충돌설’에 대해선 “길이 110m가 넘는 미국잠수함은 최소 안전수심이 50m인데 30m정도의 천안함 침몰 위치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현 여권에서도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에 힘을 싣는 발언이 나온다. 송영무 국방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 맞느냐”는 질문에 송 장관은 “저는 그렇게 믿는다”며 “(폭침 주체는) 북한의 연어급 소형 잠수정으로, 정찰총국 소속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 국방위 소속인 이철희 의원도 최근 TBS라디오에 나와 “천안함 폭침은 누가 봐도 북한이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영철 방남을 정부가 거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이준석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천안함에 대해서는 명백한 규정이 끝났다”며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의 소행이라고 인정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3월 25일 당 대표 시절 천안함 5주기를 하루 앞두고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한 자리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 잠수정의 타격’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준석 위원장은 “천안함 조사 결과는 우리나라만 참여한 게 아니라 중립국에서도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린 것인데,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며 “정말 폭침에 희생된 장병들을 피해자에서 강등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 (의혹 제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썰전’ 박형준 동아대 교수도 “그걸 거짓으로 조작하려면 모든 눈을 속여야 되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 눈을 다 속이냐”라며 정부 발표에 힘을 실었다.
“당시 軍작전 실패” 책임론도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의혹 제기와 반론이 뒤엉킨 가운데 진실 규명을 위한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조헌정 전 향린교회 목사, 명진 스님, 문대골 목사, 김원웅 전 의원, 박해전 6.15 10.4 국민연대 상임대표 등 5명의 공동대표가 주축이 된 ‘천안함 진실규명을 위한 범시민사회협의체 준비위원회’는 최근 천안함 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요청하는 특별성명을 냈다.
과거부터 범시민단체 구성을 논의해왔다는 이 기구는 올해 8주기에 앞서 조만간 정식 출범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정부 차원의 재조사나 국회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성명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천안함 재조사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재조사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휘발성이 너무 강한 이슈라 정부가 직접 재조사에 착수하는 건 판도라 상자를 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원칙적으론 필요하지만 현실적·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인가에 대해선 유보적”이라며 “언론이나 전문가 등 주도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을 놓고 오랜 기간 공방이 벌어지는 데 대해 군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광진 전 의원은 “군사적으로 보면, 북한군이 우리를 공격했고 돌아갈 때까지 아무 것도 못 했다는 건 실패한 (군사) 작전”이라며 “책임져야 할 (군인들이) 승진하는 문제 등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사기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시 핵심 책임자들은)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되고, 사과와 잘못을 얘기해야 한다”며 “(아울러) 군 복무하다가 희생된 46명의 장병들을 추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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