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누구든 화를 낼 수 있지만,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화를 내더라도 제대로 화를 내는 것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유익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직은 생소하기만 한 직업인 ‘분노관리사’. 우리나라 최초의 분노관리사로 활동 중인 노재흥 박사는 ‘현대인의 풍토병’이라 할 수 있는 분노의 전문가다. 현재 한양대 학점은행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에게 분노의 조절 노하우와 치료법, 분노관리사가 된 계기를 들어봤다.


‘5년 차 직장인’ 송민석(33세, 가명)씨는 지난 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업무 문제로 상사와 말씨름을 하다 주먹다짐까지 한 이후 이직할 곳을 찾고 있다. 과음하면 주위 사람들과 다투는 술버릇 탓에 경찰서를 드나든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화를 참지 못해 직장 상사를 먼저 때렸던 것. 송 씨는 “나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을 보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병원을 찾은 그는 ‘간헐적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다.

분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가운데 하나다. 사전에는 분노를 ‘위협당하거나 해를 입는 개인의 지각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스스로 분노를 억압하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 탓에 제대로 분노를 표현하거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거세됐다.

‘우선 멈춤’에서 시작되는 분노조절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끊임없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고 매일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감정을 제대로 배출할 곳도 없고 처리할 방법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최근 갑작스런 감정의 폭발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매스컴에 넘쳐난다. 유대교의 랍비인 벤 조마는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자는 힘센 자보다 낫고,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도시의 정복자보다 낫다”고 했다. ‘분노조절장애’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귀 기울여 볼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국내 1호 분노관리사’라는 타이틀을 가진 노재흥 박사는 일상생활에서 ‘나 왜 이렇게 화가 나지?’ 하는 느낌이나 내면의 물음이 생길 경우 분노에 대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귀띔한다. 그는 분노의 원인을 ‘자기애(自己愛)에 상처를 주는 것’에서 찾는다. 자존감과 자신감의 결핍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로, 또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깁니다. 이 두 가지 생각에 대해 누군가가 침범을 하게 되면 거기에 대한 반응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생겨나는 것이죠.”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고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자세와 마인드컨트롤을 통해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분노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 가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기는 쉽지 않은 일. 따라서 많은 이들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직장에서 시시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분노의 얼굴과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런 분노를 멈추게 할 방법이 있을까? 노재흥 박사는 분노의 해법 중 가장 좋은 비책에 대해 “화가 폭발하지 않도록 감정을 제어하라”고 조언한다. 이른바 ‘우선 멈춤’의 방법이다. 그러나 감정 제어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노재흥 박사는 감정 제어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 노력하듯 ‘우선 멈춤’이 조건반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감정 제어 강화훈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이를 위한 구체적인 생활습관 노하우도 제시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상대도 분노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자세,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대비하는 일 그리고 자존감과 자신감을 기르는 연습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남들도 분노할 수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타인 감정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노재흥 박사는 강조한다.

분노관리사 40여 명 배출

“인간은 모두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노를 갖고 있다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분노는 삶의 원동력이자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감정입니다. 다만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1호 분노관리사’로 알려진 노재흥 박사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직업군인 생활을 한 그는 2011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한때 국방부에서 ‘민원 제기 사망사고 특별조사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병사들의 자살사건 민원을 재조사하면서 유가족들의 아픔과 눈물을 접했다. 당시 유가족들의 아픔과 눈물은 단순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분노였다고 느꼈단다.

“당시 재조사 결과를 유가족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해도 그들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그 때부터 분노에 대한 논문 등 자료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을 만나는 등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분노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한 그는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 2010년 ‘분노관리’ 전공으로 상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15년 ‘분노관리사’라는 직업을 직접 만들었고 국내 1호 분노관리사가 돼 활동에 나섰다. 올해 초에는 한양대에서 정신보건학 박사학위도 취득해 학문적 영역을 넓혔다.

“누구라도 일정한 교육 이수를 하면 한국인력진흥원과 보건복지부가 공인한 ‘분노관리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동덕여대 출신 미용장들과 한양대 심리상담사과정 학생 등 3개 기수에 40여 명이 배출돼 각계에서 ‘분노관리사’로 활동 중입니다.”

후진 양성과 상담, 선교 등 세 밭을 일구다

아직은 ‘분노’ 분야의 학문 체계가 정립된 상태가 아니어서 ‘분노관리사’ 양성이 녹록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노재흥 박사.

그는 군 생활 중에 위와 같은 경험을 하면서 전역 후 다른 인생을 살 준비를 했다고 한다. 스스로 세 가지 ‘프로젝트’를 구상했는데 바로 ‘강의, 상담, 선교’였다. 분노관리에 관한 후학 양성과 상담을 통한 대사회 봉사,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선교활동이 제2의 인생 미션이었던 것.

노재흥 박사는 현재 그 세 가지 꿈을 모두 이뤘다. 현재 한양대 학점은행제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1인 기업인 ‘스마일 상담개발원’을 운영하고 있다. 육군본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담 활동을 벌이고 또 목회자인 아내와 세종시의 한 노인요양병원에서 주일예배 사역을 하며 선교활동도 병행한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세상에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길과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두 가지 길이 있다. 성서에서도 ‘넓은 문과 좁은 문’을 제시한 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권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익숙한 길이나 넓은 문은 평탄하고 안온한 길이지만, 그 길은 ‘이타의 삶’보다는 ‘이기적 소시민의 삶’에 더 잘 어울린다. 반면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대승적 삶을 볼 수 있다. 그곳은 인생과 세계를 바라보는 치열한 시선이 존재하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길이다.

노재흥 박사가 걸어온 길은 후자 쪽에 가까웠다. 매 순간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자가발전의 동력을 일으켜 독보적인 자기세계를 직조해 낸 그는 원칙과 상식, 성실에 기반을 둔 혹독한 자기 관리로 사람들이 가지 않는 좁은 길을 한결같이 걸어왔다.

“생생하게 꿈을 꾸고, 간절히 원하며,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행동하면 어떤 꿈이든 반드시 이뤄진다”는 폴 마이어의 전언(傳言)처럼, 군 생활의 아픈 경험을 밑거름으로 ‘분노관리사’가 된 노재흥 박사.

그는 지금까지 여러 대학과 군부대, 공공기관에서 200여 차례 강의하는 등 자신의 꿈을 펼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싱그러운 청년의 풋풋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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