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여당이 사실상 ‘결선투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선투표가 실시될 경우 하위 후보자 간 연대가 가능해진다. 당내 경선 결과를 끝까지 속단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경선 흥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당내 일각에선 결선투표가 친문·비문 후보 간의 갈등 요소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당내 경쟁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이 공교롭게도 모두 비문 그룹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 친문계가 ‘박원순·이재명 견제’를 위해 ‘결선투표제’ 카드를 도입했다는 시각이다. 민심을 업은 비문계와 당심을 업은 친문계, 어느 쪽이 최후에 미소를 지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불가측성으로 경선 흥행” vs “‘민심(民心)’보다 ‘문심(文心)’”
- 非文 대표 안희정의 ‘몰락’, “친문 색깔 더 짙어질 것”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5일 6·13 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되 상황에 따른 2단계 경선 실시 가능성은 열어두기로 했다. 박범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당무위원회에서 ‘공직후보자 추천 심사 기준 및 방법 승인의 건’ 등 9건에 대해 검토 후 의결했다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광역·기초단체장, 지방의원 후보자 경선 방식은 2~3인 경선을 원칙으로 하되 해당 공천관리위원회 판단에 따라 1·2차 경선을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2단계 경선’=사실상 ‘결선투표’
서울시장·경기지사 판도 ‘주목’

 
정치권에서는 ‘2차 경선을 실시할 수 있다’는 대목을 두고 사실상의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결선투표는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한 사람의 득표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할 경우 1·2위 등 높은 득표를 얻은 후보자를 놓고 한 번 더 투표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1차 투표에서 1위를 하더라도 과반이 되지 않을 경우 2차 투표에서는 후순위 후보자에게 밀려 최종 순위가 뒤바뀌는 일이 가능해진다. 1차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2위 후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5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6명이 출마한 1차 투표에선 우원식 의원이 우상호 의원을 4표 차이로 따돌리고 1등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만 맞붙은 2차 투표에선 오히려 우상호 의원이 7표 차이로 역전하면서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이 같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불가측성은 경선 흥행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2016년 원내대표 경선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득권을 가진 후보자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제도다.
 
그러자 정치권의 시선은 자연스레 박원순 현 시장을 비롯해, 민병두·박영선·우상호·전현희 의원 등이 도전장을 내민 서울시장 당내 경선으로 향한다. 현재까지는 현직 프리미엄을 업은 박 시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3선 고지 문턱까지 와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서울시장 경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경우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차 경선에서 탈락한 후보들이 ‘반(反) 박원순 연대’를 형성할 경우 결과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하나같이 친문 구애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위를 기록 중인 박영선 의원은 최근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만나는 등 친문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한 우상호 의원은 지난 1월 문 대통령과 영화 ‘1987’을 관람하며 친문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대협 1기 부의장을 지낸 우 의원은 3기 의장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安의 몰락’, 친문·비문
분화 가속도 붙나

 
한편 경기지사 경선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이재명 현 시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시장이 1차 투표에서 50% 득표를 못하면 2차 투표에서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을 중심으로 연대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문 대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몰락은 이 같은 친문계의 결집을 가속화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선 “비문 진영의 구심력이 약해지면서 친문 진영에 대한 견제 세력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7일 “비문, 합리적 진보, 86세대 대권 주자로 불리던 안 전 지사가 몰락하면서 당의 권력 지형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친문과 비문 진영의 갈등이 표면화하던 중이었는데, 비문 진영이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밝혔다. 친문 색깔이 더 짙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안 전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의원도 “안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돼 당·청 관계에서 목소리를 내면서 존재감을 높일 계획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안 전 지사가 몰락하는 바람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 비문 진영 전반의 입지가 줄어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반면 친문 진영에선 안 전 지사의 몰락이 여권 전체와 문재인 대통령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면서도, 향후 당의 구심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안 전 지사 지지층이었던 친노 그룹 내 비문 세력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라며 “계속 비주류로 남을지, 친문 세력과 함께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 비문 진영 일각에선 “친문계가 ‘민심’을 업은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을 ‘당심’으로 주저앉히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여론조사와 결선투표는 각각 ‘민심’과 ‘당심’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박 시장과 이 시장은 모두 여론조사에서 다른 후보들에 앞서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갑작스레 ‘결선투표’ 카드를 꺼내 들자 위와 같은 비난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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