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38년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와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리리에 총리는 독일 뮌헨에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총리와 신생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인 주데텐란트를 나치독일에 넘기기로 합의했다.

체임벌린 총리는 귀국 후 “독일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들고 돌아왔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영국 여론도 그의 ‘유화정책’을 지지했다. 기사 작위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노벨평화상도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체임벌린은 히틀러에 속았다.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넘어간 것이다. 히틀러는 세계 1차 대전의 참상을 목격하고 거의 신앙적 평화주의자가 된 체임벌린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체임벌린은 당시 뮌헨협정이 굴욕적인 양보인 줄 알면서도 평화를 지키고 싶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히틀러는 체임벌린을 비웃듯 평화를 깨고 주변 국가를 무력으로 하나 둘 점령해갔다. 결국 이는 인류 최대 비극적 전쟁인 세계 제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체임벌린 오판의 교훈을 잊어버린 지도자가 또 하나 있다. 1973년 파리 평화협정 체결 후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공산 월맹은 전쟁할 능력이 없는 데다 평화협정 이후 미국이 40억 달러를 원조하기로 했기 때문에 월맹은 협정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월남 국민들은 티우 대통령의 이 같은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이 후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총체적 안보불감증이었다.

공산 월맹은 좌익 인사들을 이용해 반정부 시위를 조종하는 한편 정권의 핵심부까지 간첩들을 침투시켰다.

월남에 주둔해있던 미군도 국내 반전 분위기로 철수해버렸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월맹은 2년 뒤인 1975년 월남 침공을 단행했다. 월남의 공산화는 이렇게 아주 손쉽게 이루어졌다.

남북 정상회담이 11년 만에 판문점에서 열린다고 한다. 불과 2개월 여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졌었다. 그러나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전격 참가를 계기로 남북은 화해무드로 바뀌고 있다. 대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북·미 관계도 점차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초청했으니 말이다.

좋은 일이다. 아마 많은 국민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런 평화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북한 김정은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그동안 북·미 간 합의를 툭하면 파기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방북 특사건만 해도 그렇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영변 핵시설 원자로 가동 가능성이 보도되고, 관영 매체를 통해서는 “핵 보검"을 운운했다.

좋다. 북한 체제 구조상 그럴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러나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북·미 평화협정에 있음이 이번 남북 합의문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다는 사실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핵을 포기하거나 미국의 구미에 맞는 조치를 해줄 수 있다는 말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우리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미국은 북한이 내걸 조건이 자국의 이익에만 부합한다면 우리의 뜻과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뮌헨협정과 파리협정은 물론이고 과거 북한과 맺었던 합의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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