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정비사 사내서 투신자살 내막
대한항공에서 의문의 자살사건이 발생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낮 12시께, 대한항공 기체정비팀 최모 과장이 15년간 몸담고 있던 김해정비공장 격납고에서 만 38세란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과장의 사인은 투신자살. 회사에서 그는 꽤나 인정받던 직원이었다. 대한항공 측에서 내린 표창만 해도 수십 개가 넘었다. 또한 최모 과장은 80세를 훌쩍 넘긴 노부모와 여우같은 아내, 토끼 같은 딸(7세)을 둔 한 가정의 반듯한 가장이었다. 그리고 아내의 뱃속에는 7년간 애타게 바라던 둘째가 8개월째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이에 본지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하나 없던 최모 과장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해 되짚어 봤다.


사건 당일인 지난 7월 10일은 최모 과장이 한 달간 손수 기름칠을 하며 관리하던 UA항공기를 납품하는 날이었다. 그는 맡은 업무를 끝까지 수행한 직후인 이날 12시 30분께 김해정비공장 격납고 지붕에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최 과장은 1991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4년 전부터 문제의 김해정비공장 작업통제그룹에서 근무해 왔다.

출근한다며 나갔던 가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유가족 측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대한항공 측에 요구했다.


7일간 고작 14시간 취침

처남 정모씨에 따르면 매형인 최 과장은 UA항공기 납품을 일주일 앞두고 매일 새벽 1·2시에 퇴근해 한 두 시간만 눈을 붙인 후 다시 새벽 3·4시에 출근하기를 반복했다. 이로 인해 지난 한달 간 최 과장의 몸무게는 자그마치 8kg이나 줄었다.

사건 당일도 새벽 2시 20분경 퇴근해 집에 왔다가 다시 샤워만 하고 새벽 3시께 회사로 출근했다는 것이 유가족 측의 주장이다. 이후 최 과장은 새벽 4시 35분경 상사인 A 부장에게 대용량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아내 정모씨에게 ‘여보 미안해’라고 시작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약 2분간 통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측 관계자는 “같이 근무하던 동료가 회사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회사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자살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유족의 주장처럼 사고가 회사의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은 확인이 어려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유가족들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도울 수 있는 지원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유가족 측은 대한항공의 무례한 반응에 울분을 토했다. 처남 정씨는 “지난 24일 오후 2시경 대한항공측에서 항의전화가 왔다”며 “한 언론에서 매형의 죽음을 기사로 다뤘는데 본사의 한 직원이 그에 불만을 품고 다짜고짜 반말로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회사 측이 진상규명해 준 게 뭐가 있느냐고 따지자 ‘당신은 나쁜 놈이야. 누나를 빌미삼아 돈을 뜯어내려는 속셈이지’라고 말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덧붙
였다.

정씨가 언급한 언론은 S신문으로 당시 취재를 했던 기자 또한 “대한항공 측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며 정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지난 27일 S신문 K 기자는 전화인터뷰를 통해 “당시 대한항공 측 S상무와 통화를 하는 동시에 기사를 썼다”며 “토씨하나 틀린 게 없다”고 단언했다.

K 기자가 작성한 기사를 살펴보면 대한항공측이 폭언을 한 대목은 바로 이러하다. “처남이 언론에 알리면 여론이 무서워서 보상을 해 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그쪽이 약자인 만큼 회사와 좋게좋게 하면 알아서 잘 해줄 텐데 지금은 회사 내부에서도 해주지 말라는 여론이 높다며 큰소리 쳤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측은 “K 기자와 통화한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말까지 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S신문이 우리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너무 유가족 측 입장에서만 기사를 작성해 사내에서 그러한 말이 나돌긴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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