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흐름 타고 변화할까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사회 각계에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확산되면서 가해자에 대한 공분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학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른바 ‘똥군기’라고 불리는 군기 문화가 만연해 있기 때문. 경찰은 매년 똥군기와의 전쟁을 선포해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한다. 그러나 암암리에 일어나는 일인 만큼 근절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의 시각이 적잖다. 반면 미투 현상과 맞물려 대학의 군대문화도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표출되는 상황이다.

선배들의 가학 행위···‘액땜 의식’이라며 막걸리 뿌리기도

‘신입생 머리에 막걸리 뒤집어씌우기’ ‘신입 동아리생들에게 얼차려 주기’. 새 학기를 맞아 대학가에서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행하는 광경이다.

몇 년 먼저 학교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깍듯한 대접을 바라거나 특정 호칭을 강요하는 것은 물론이고 폭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특히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행위들로 인해 매년 신입생들이 사망까지 이르는 경우도 허다한 실정이다. 이에 대학가에서는 잘못된 군기잡기 악습을 이제는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OT‧신입생 환영회
무용론까지

 
‘똥군기’는 신입생들의 입학을 축하하는 오리엔테이션(이하 OT)과 신입생 환영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이 행사들은 입학 전 대학생활의 적응을 돕고 선후배 간 유대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교류 문화다. 그러나 지나친 음주 강요를 포함해 과도한 위계질서 부각,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게임 강요 등 원래 목적과 취지와 달리 예기치 않는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OT·신입생 환영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해 2월 강원 춘천시의 한 콘도에서는 경기지역 A대학교 신입생 수십 명이 선배들의 지시에 맞춰 얼차려를 받았다. 이른 아침 이들의 ‘팔 벌려 뛰기’와 함께 울려 퍼진 구호는 잠에서 깬 콘도 투숙객들의 거센 항의 끝에야 마무리됐다.

같은 달 강원 고성군의 한 콘도에서는 인천지역 B대학교 신입생이 손가락 3개가 절단된 상태로 다른 학생들에 의해 발견됐다. 신입생 OT로 콘도로 간 신입생은 술을 마시던 중 사라졌다가 엘리베이터 기계실에서 사고를 당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충북지역 대학생들이 이용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의 한 커뮤니티에는 충북의 C대학교 모 학과의 신입생 OT기간에 벌어진 강압행위와 개강총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글에는 ‘선배들이 OT기간 신입생에게 구보, 외워 부르기 등을 시켰고, 큰 소리로 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반복하게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개강총회 때 여학생들이 선배의 모욕적인 말을 듣고 큰 부담과 공포를 느꼈고, 이 같은 부조리 때문에 학생 2명이 자퇴했다’는 내용을 적기도 했다.

같은 달 부산의 D대학교 축구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액땜 의식’이라며 음식물이 섞인 막걸리를 신입생에게 뿌리는 사진이 온라인상에 공개돼 공분을 샀다.

선배들은 강의실 바닥과 천장에 비닐을 미리 깐 뒤 신입생 10여 명을 일렬로 세우고, 먹다 남은 두부와 김치를 막걸리에 섞어 신입생 머리에 차례로 끼얹었다. 이 행사는 1년 동안 동아리에서 액운이 끼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매년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이 군기 문화가 만연한 대학가 OT‧신입생 환영회는 연례행사처럼 구설에 오른다. 각종 성추문도 빠지지 않는 항목이다.

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는 OT에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한 게임을 해 비난을 받았고 2016년 3월에는 신입생 MT에서 남학생 여러 명이 동성 학생을 성추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를 놓고 한국 특유의 군대 문화가 한몫한다고 평가한다. 남성 대부분이 군 복무를 통해 철저한 서열 문화와 권위주위를 체득하게 되고, 군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변 영향을 받거나 대중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또 입시 위주가 아닌 인권의식 교육 강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 측의 대처도 문제다. 이 같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쉬쉬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 학교 측은 각종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해당 사과문을 발표하는 식의 대처를 하지만 이마저도 반성보다는 변명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 선배 갑질 횡포
집중 단속 나서

 
경찰은 매년 대학가 새학기마다 OT‧신입생 환영회 등을 빙자한 선후배 간 군기잡기를 집중 단속하고 있다. 이번 ‘신학기 선후배 간 폭행‧강요 집중신고기간’은 오는 31일까지 운영된다.

경찰은 대학가의 선후배 간 군기잡기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횡포’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전국 대학 소재지를 관할하는 경찰서마다 ‘대학 내 불법행위 전담수사팀’이 지정·운영되고 있다. 교내 인권센터·상담소 및 단체 활동 지도교수 등과도 직통 회선으로 개설된 상담·신고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경찰은 신고접수 시 즉시 현장에 출동해 우선적으로 피해자 안전조치를 하고, 사건발생 경위 및 피해 정도 등을 파악해 사안별 경중에 따라 구분해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학습 공간인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형사입건 여부는 신중히 판단하되, 명백한 형사처분 대상 사건은 고질적 악습 여부, 가해자 범죄경력까지 면밀히 확인해 엄정 처리한다. 경미한 사안은 무리한 입건 대신 훈방을 하거나 정식 형사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는 즉결심판에 넘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와 수사팀 간 직통 회선 구축, 가명조서, 맞춤형 신변보호제도 등을 활용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할 방침”이라며 “피해 발생 시 적극적인 신고와 제보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대학가 군기잡기가 선후배 사이에서 암암리에 일어나는 일이면서 매년 경찰의 단속기간이 있었음에도 만연했던 점 등을 지적하며 뿌리 뽑힐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는 상황.

그러나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대학가 군기잡기도 미투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 ‘이번 기회를 통해 근절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여론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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