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묻지마 투표’, ‘줄투표’ 기승 우려
- ‘정치는 공공재다’라는 명제 훼손되지 말아야

 
6.13 지방선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파란 점퍼, 붉은 점퍼를 입은 예비후보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나 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쉽게 눈에 띈다. 저녁에 식당이나 선술집에 가면 예비후보들의 명함이 쓰레기통에 수북이 쌓여 있는 것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유권자는 아직 선거 모드에 접어들지 않았지만, 당내 경선을 통과하여 정당공천을 받아야 하는 예비후보들은 본선보다 더 힘든 싸움을 하는 중이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으로 지난 한 달 동안 국민적 관심사는 온통 올림픽이었다. 이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특사파견이 이루어져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미투 운동은 우리사회가 대전환(switch)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초대형 태풍으로 성장하였으며, 그 위력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이 있었고, 곧 구속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이렇듯 현재 펼쳐지는 <인생극장>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사회적 이슈를 모두 갖추고 있다. 국민들이 온전히 6.13 지방선거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이러한 재미에 푹 빠지다 보면 정작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을 선출하는 행위에 소홀하기 쉽다. ‘묻지마 투표’, ‘줄줄이 투표’가 기승을 부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손가락을 원망하는 고질적인 정치무관심 행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바라는 최적의 시나리오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앞선 <인생극장>보다 더 재미있는 스토리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정치를 종합예술이라 하는 이유는 정치가 바로 그러한 재미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런 관점에서 서울시장 선거를 바라보고자 한다.
 
당초 서울시장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집안싸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꼭 그렇게만 전개되지 않아 재미가 생겼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다양한 루트를 앞에 두고, 크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한 것은 서울시장 3선 도전이었다.
 
일하는 재미에 푹 빠져서 너무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정치적 감각이 굉장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박원순 시장이 나름대로 정치공학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박원순 시장과 2인3각으로 서울시정을 운영해 온 것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었다. 이인영 의원은 서울시장에 도전할 생각은 있지만, 박원순 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면 양자 간의 경선은 피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혔고, 결국 그는 서울시장 도전을 포기했다.
 
30년 전 피고인 이인영과 그의 변호인 박원순의 관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계의 상식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단이다.
 
SNS상에서는 이미 서울시장급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작년 12월 자신의 트위터에 “적어도 분명한 건 이명박, 오세훈보다는 잘할 자신 있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민심을 경청하겠습니다”라며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했지만, 올 2월 초에 “열매는 땀 흘린 사람이 가져가야 한다. 제 몸에 맞는 옷도 아닌 것 같다”며 서울시장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그토록 비난했던 공갈포를 40일간 쏘아 올렸지만, 그의 최종 선택은 정치 상식과 인간계 상식에 공통으로 속하는 교집합이었다.
 
지난 총선, 강남을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전현희 의원은 지난 8일 선당후사(先黨後私)의 논리로 서울시장 출마포기선언을 하였다. 공갈포가 지나간 후, 지난 2월 4일 뜬금포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했을 때보다 더 뜬금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출마포기선언이 선당후사의 논리라면, 그녀의 출마선언은 선사후당(先私後黨)의 논리였던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정치 상식은 물론 인간계의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정치공학적으로도 손해 보는 선택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다.
 
미투 운동의 유탄을 맞고 쓰러진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꼼꼼히 준비해 제2의 문민시대를 꿈꾸던 그는 10년 전 행적에 대한 의문의 소리에 자신의 온몸을 던졌다. 국회의원직을 사퇴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선택이 정치 상식에 부합하지 않고 정치공학적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선택이라며 당 지도부가 만류했지만, 그의 선택은 변하지 않았다. 필자가 아는 민병두 의원이라면 가능한 선택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선택은 인간계의 상식과도 부합하는 선택이었다.
 
정봉주 전 의원의 복당이 어려워짐으로써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은 현직인 박원순 시장과 박영선 의원, 우상호 의원의 3파전으로 전개될 공산이 커졌다.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일 것이다.
 
두 가지는 당내의 역학 문제로, 하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일 것인, 다른 하나는 보이는 손이 서로의 손을 잡을 것인가. 마지막 하나는 당 밖의 역학 문제로 자유한국당 후보로 유력시되는 이석연 전 법제처장, 그리고 바른미래당 후보로 회자되는 안철수 전 대표의 존재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이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박영선 의원, 지난 대선에서 원내대표로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우상호 의원, 청와대에 서울시정 운영을 함께한 인재들을 보내주었다고 자임하는 박원순 시장 등 3명의 후보 모두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또한 박영선 의원은 비록 경선이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7년 전에 서울시장 후보를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했다는 논리로 압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과정에서 박영선, 우상호 후보 간 단일화 협상도 진행될 것이다. 정치 상식과 정치 공학, 그리고 인간계 상식까지 복합적인 요소가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박원순 시장은 절대적 수세에 몰릴 것이며 그것을 극복해야만 3선의 길이 열린다.
 
자유한국당은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전략공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원순 시장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전제로 하는 전략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로 심플하게 가져가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전 대표를 앞세워 박원순 시장에게 5%의 추억을 떠올리게 할 심산이다.
 
아직 안철수 전 대표가 결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출마로 결정하게 된다면 박원순 시장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본선도 본선이지만 당내 경선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본선에서 이석연, 안철수 단일화가 이루어질 공산도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박원순 시장에게는 첩첩산중에 사면초가가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누가 서울시장이 되는가보다 더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이 있다. 정치 상식, 정치공학이라는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정치는 공공재다’라는 명제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향후 3개월 동안 우리 정치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가가 그것이다. ‘정치는 공공재다’라는 명제가 훼손되지 않고 차기 서울시장이 탄생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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