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개헌’ 밀어붙일 줄 몰랐던 한국당
- 변화된 유권자 욕망 따라가야 할 시간 오고 있어
 

자유한국당이 16일 개헌 방향 및 일정과 관련, 책임총리제를 골자로 한 분권형 대통령제를 6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발의한 후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껏 개헌에 대해 전혀 협조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다가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나 홍준표 대표로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굳이 개헌이라는 공약을 지킬 필요가 없다.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인을 준 입장이었다. 그들 생각에는, 그런 사인을 보낼 경우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밀어붙이지 않으리라고 봤을 것이다.
 
왜냐하면 87년체제 헌법의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기본적으로 개헌이 달갑지 않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빨리 개헌안을 도출해 내야 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임기 초반에 현직 대통령은 개헌을 하기가 싫다.
 
하고 싶은 정책 과업이 많기 마련이고, 개헌을 추진하면 정치적 동력의 상당 부분을 거기에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임기 중반 이후 현직 대통령이 공익적 사명에 눈을 떠 개헌안을 발의하고자 한다면, 그때는 차기 주자들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면서 협조를 하지 않기 마련이다.
 
자유한국당으로서는 그러한 일반적인 행태를 예상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게 사인을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그쯤에서 대통령이 접어야 할 일이었다. 개헌안이 진행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짐짓 야당 탓을 하면서도 손을 놓아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매우 소박한 논리로 개헌안 공세를 유지했다. 대규모 광장 촛불시위로 인한 근본적 정치적 변혁의 열망을 안고 탄생한 정부이기에 개헌의 당위성 역시 컸다. 무엇보다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 개헌은 지난 대선 모든 정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
 
개헌 밀어부친
문재인 정부 셈법

 
한 달 전 2월 이 지면에서 <개헌에 발목 묶인 청와대, 왜>란 글을 썼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 찬반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는 일정의 개헌안 통과는 이미 거의 불가능해졌는데, 청와대가 이에 집착하여 지방선거의 유리함을 다소 희석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국민투표를 하려면 세금 1200억원을 더 써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한국 정도 규모의 나라에서 이것이 감당 못할 비용이라 보기는 어렵고 특히 효율성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을 더 셈해 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끌어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반영한다는 개헌을 속도전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한다면 일종의 자기모순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
 
지난주 이 지면에선 <한국당 발목을 잡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전략>이란 글을 썼다. 여러 얘기를 했지만 추려야 할 핵심은 일견 민주당에 악재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지방선거에서 결코 한국당이 유리하지 않다는 진단이었다.
 
특히 한국당이 수도권에서 절대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냉정하게 말해, 수도권에선 2006년 지방선거 열린우리당의 대참사가 역으로 재연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평가는 일정할 수 있지만 예측과 진단은 정세에 따라 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국민투표 일정 개헌안에 집착하는 논거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를 낼지를 묻는다면 다소 상황이 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면에서 여러 번 문재인 정부가 특히 경제 부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그들이 원하는 개혁의 다음 스텝을 밟지 못하고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금까지 진행을 본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경제 부문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었는지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외교·안보 영역에서 커다란 성과가 나오기 직전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 문제에 관련해 중국과 북한에 매달릴 때에만 해도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서로에 대한 협상을 필요로 하는 시점을 정확하게 매개한 셈이 되었다.
 
호사가들은 여전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있지만 현 시점에선 미국과 북한이 상당히 전향적인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들 표현대로라면 ‘핵무력 완성’ 이후 국내 경제의 쇠락을 방지해야 하는 김정은의 입장과, 여러 모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미국을 향한 북한 핵미사일의 위협을 타개한 지도자라도 되지 않으면 안 되는 트럼프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여전히 비관론을 고수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 부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경우 개헌 문제를 회피하려던 한국당의 처지는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한다. 문재인 정부가 모종의 성과를 거두었고, 더군다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개헌안 요구를 공세처럼 내세우는 시점에서 오히려 지난 대선 정국에선 먼저 개헌을 추진했던 한국당의 입장은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6월 개헌안을 내세운 것은 6월 국민투표 일정까지는 수용하지 않더라도 그 이후 연내에, 혹은 임기 중에 개헌안을 합의하는 것까지는 피하기 어려운 그들의 정치적 사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국당, 지체 비용
지방선거 치를 가능성

 
정리하자면 한국당의 개헌에 대한 태도가 지방선거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살핀다면 2016년 가을의 분기점과 이후 2017년 대선 정국까지 일어난 변혁의 흐름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과거의 정치문법에서 다시 양당제의 한축으로 복귀하기를 꿈꿔왔던 한국당의 정치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러한 전략이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은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했다. 유권자들의 욕망의 변화를 보지 못하고 과거의 관성에 답습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정치지형이 변했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할 유권자층은 상당 부분 있는데,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피지 않고 하던 대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이번 주 갤럽조사 정당 지지율에서 민주당은 50%에 한국당은 12%인데, 무당층은 무려 25%에 달한다. 무당층의 두터운 비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결국 한국당은 변화된 정국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대가를 이번 지방선거에서 치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