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바짝 독이 올랐다.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수사에 정치권과 재계 등의 외압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권은 ‘특검’ 카드로 검찰권을 무력화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러한 정치권의 ‘흔들기’에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 의지를 강하게 다지고 있다. 최근 검찰이 그룹 총수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지와 맞물려 있다. 검찰 주변에선 벌써부터 ‘사정리스트’가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 리스트에는 정치인과 재계 인사들이 총 망라되어 있다. 특검정국으로 인해 바짝 독이 오른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현정부 출범이후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등 ‘살아있는 권력’에 맞서는 용기와 소신수사를 강행해 왔다.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을 비롯한 대북송금, 현대·SK비자금, 대선자금 수사 등 대형 권력형 로비의혹 사건에 대해 거침없이 메스를 가했던 것.그 결과 전·현정권의 실세로 통했던 인사들이 대거 사법처리됐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염동연(구속)씨와 안희정(불구속)씨가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됐고, DJ(김대중 전대통령)정권때 실세로 통했던 한광옥 전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용근 전금감위원장도 역시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박지원 전청와대비서실장과 민주당 권노갑 전고문이 현대측으로부터 각각 150억원과 20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추가 기소되거나 구속기소됐다.현역 의원들을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들도 검찰의 메스를 피할 수 없었다.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해 DJ의 장남 김홍일 민주당 의원이 불구속기소됐고, 민주당 박주선·한나라당 박명환 의원 등 현역의원 2명은 체포동의안이 발부되기도 했다. 또 한나라당 박주천·임진출 의원, 박광태 광주광역시장, 김용채 전 자민련 부총재 등은 현대비자금에 연루된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처럼 전·현정권 실세들에 대한 검찰의 단죄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서곡에 불과했다.현대비자금에 이어 SK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검찰의 칼날은 대선자금 등 전반적인 정치비자금 수사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SK측으로부터 노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청와대총무비서관이 11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드러났고, 한나라당도 100억원을 전달받은 사실이 대검 중수부 수사결과 드러났다.급기야 노 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들었다.하지만 검찰은 정치권의 정쟁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야를 망라한 대선자금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지난해 대선당시 자금을 담당했던 여야 정치인과 실무자, 정치자금을 건넨 기업 관계자들이 대거 출국금지 되거나 줄소환됐다.재계에 대한 수사도 ‘5대그룹+’ 로 확전됐다.

검찰이 ‘부패정치’와의 전면전이라도 선포한 듯한 기세였다. 검찰의 이같은 기세에 정치권은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야당 핵심 당직자들은 검찰청사를 방문, ‘기획수사설’ 등을 제기하며 검찰권 행사에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이러한 압박에도 검찰이 굴하지 않자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 등 야3당은 특검법 카드를 들고 나왔고, 결국 특검법은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했다.비록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이 노 대통령 측근비리에 맞춰져 있긴 하지만 특검법이 공포될 경우 검찰은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검은 검찰 수사의 보완책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만큼 특검 저변에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검찰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10일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송광수 검찰총장은 “속이 편하면 사람이 아니지”라며 특검법 국회 통과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한나라당을 비롯한 야3당이 의기투합해 특검법을 통과시킨 것은 ‘노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한 철저한 진실규명’이란 명분도 없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권을 정조준하고 있는 검찰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려는 전략도 깔려 있다.

하지만 검찰은 특검과는 별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선자금 및 노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를 계획대로 밀고 나간다는 방침이다. 오히려 정치권의 ‘흔들기’에 맞서 대선자금 등 정치비자금 수사에 박차를 가해 부패정치를 발본색원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LG 구본무 회장의 출금에 이은 LG홈쇼핑 압수수색,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 소환 조사, 중견 건설업체 서해종건 압수수색 등으로 이어진 최근 검찰의 행보는 이러한 결연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특히 대선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조만간 정치권에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기업리스트를 확정, 이들 기업 최고위직 임원들을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중수부가 조사대상 리스트에 올려놓은 기업은 삼성, SK, LG, 현대차, 롯데 등 이른바 5대 기업을 포함한 금호, 한진 등 14∼15개에 달한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은 한나라당 나오연 후원회장과 열린우리당 정대철 의원 등 현역정치인들에 대한 소환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이들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검찰은 또 노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와 관련,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선봉술 전 장수천대표 등도 조만간 재소환 조사한 뒤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이처럼 검찰이 특검정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칼날을 꺾지 않자 정치권 주변에서는 “검찰발 정계개편이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실제로 검찰은 현대·SK비자금에 이은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광범위한 자료와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상당수 정치인들이 대선자금 등 정치자금을 돈 세탁을 거쳐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정치인들의 관련계좌 등을 추적해 선거자금 등 정치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검찰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사정리스트’도 정치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이른바 ‘정치자금 리스트’와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특검정국, 정치권의 강한 압박, 경제 악영향 등을 감안하면 검찰이 대선자금 전모를 파헤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자금 유용 등 개인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검찰의 성난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게 검찰 주변의 분위기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