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투 운동… 조직 내 남녀 관계 성찰 계기로 삼아야
- 남녀 간 배타적 관계가 운동의 본질은 아냐

 
1월 말 모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여전히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국회 출입을 오래한 기자로서 유력한 대권 주자가 성폭행 의혹으로 검찰에 출두하고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일반인도 아니고 대권을 노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관리를 저렇게 못할 수 있나”라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전전긍긍하는 유명 인사가 적잖겠지만 일반인에게 끼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국회 출입하는 기자로서 여성 보좌진이나 여기자를 단둘이 만나기가 꺼려지는 게 현실이다.
 
국회 관계자들과 회식 모임에서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여기자가 참석하느냐 마느냐가 참석 여부로 이어질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혹자는 자리배치를 걱정하는 인사들도 있고 여성들과 말을 섞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말도 한다. 기업에서는 아예 회식을 중단하고 여직원과 업무를 할 경우에는 공석으로 불러서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는 후문이다.
 
남성들이 여성과 단둘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은 ‘미투 운동’의 전형적인 부작용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위 요즘 유행하는 ‘펜스룰’이다. 펜스 룰(Pence Rule)의 기원은 현재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가 인디애나주 하원의원이던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펜스는 아내가 동석하지 않는 자리에 다른 여성과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데서 비롯되었다. 보수적 기독교 윤리에 따라 그는 아내가 아닌 여성과 단둘이 만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괜히 오해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에 상륙한 미투운동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다. 피해자인 여성도 가해자인 남성도 모두 피해자라는 시각도 엿보인다. 법정 소송을 하면 소송을 한 사람이 입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아픈 기억을 되뇌며 관련 증거를 모아야 한다. 가해자는 반대로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 ‘서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를 모으고 진실공방을 벌인다.
 
1차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2차 피해를, 가해자는 소송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건다는 점에서 서로 데스 게임으로 흐를 공산이 높다. 이를 바라보는 남성들은 ‘차라리 문제를 만들지 말자’며 ‘펜스룰’ 유혹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미투 운동 창시자인 버크는 “미투는 성폭력을 겪은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지 여성운동이 아니다”라며 “미투 운동은 배타적 대립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수 유명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는 여성 100명과 함께 ‘르몽드’에 문화계 ‘성적 자유에 필수적인 유혹할 자유를 변호한다’는 공개서한을 통해 “성폭력은 분명 범죄다. 하지만 여성의 환심을 사려거나 유혹하는 건 범죄가 아니다. 남자들은 여성을 유혹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해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자는 유혹할 자유가 있다”는 드뇌브의 주장이 여권 신장 운동에 반대하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뇌브는 개인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경계했을 뿐이지 남성이 권력을 이용해 성적 폭력을 행사하는 데 대해서는 단호하다. 전 세계적으로 비판이 일었지만 프랑스는 오히려 차분하게 미투 운동을 진화된 논쟁의 소재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미투 운동을 남녀 간 배타적 양상으로 흐르거나 음모론적으로 몰고 가서는 답이 없다. 남성중심의 ‘남녀 간의 관계는 둘만 안다’는 식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선상에 놓는 경향도 나온다. 반면 미투 운동을 접한 여성들은 ‘여자가 당했다쟎아’라고 맞서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한마디로 현대판 ‘남녀칠세부동석’이다.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유명 배우와 한 교수가 자살한 사건을 보면서 남녀 간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여성들은 “정말 무책임한 행동으로밖에 안 보인다. 조사가 진행되면 더 밝혀질 죄가 두려워 도망친 것 아닌가”라는 입장인 다수인 반면 남성들은 “용서를 구할 수 없도록 코너로 몰아서 죽이는 것이 ‘미투’라면 피해자들 또한 살인자나 다름없어 보인다"고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미투운동이 남녀 간의 대립으로 가는 시점에 떠오르는 글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고 쓴 글이다. 미투 운동에 관련됐건 안 됐건 현재 대한민국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성인 남녀가 한번 곱씹어봐야 할 글이라 요약본으로 소개한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중략>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중략>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중략>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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