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돌연 미국행을 택했다. 지난 14일 충남 홍성을 방문하며 정치 재개 신호탄을 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안희정·박수현 쇼크’로 충청권 지방선거 판도가 휘청거리는 상황이다. 정치적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절묘한’ 시점에 그는 왜 돌연 미국으로 건너갔을까? 지난 2006년 이 전 총리의 행보를 되짚어 보면 어느 정도 그의 전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혜성처럼 등장해 도백이 됐던 당시에도 그는 지방선거 직전 미국 구상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렸다. 정치권에서 이번 이 전 총리의 미국행 역시 단순한 머리 식히기 차원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귀국하는 이 전 총리의 손에 ▲충남도지사→대권 ▲천안갑 재선거→당권→대권 ▲2020년 총선→대권 가운데 하나의 선택지가 들려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 ① 도지사→대권 ② 재보궐→당권→대권 ③ 2020년 총선→대권
- 이완구의 숨 고르기…천안갑 아닌 21대 총선 출마로 ‘급선회’?

 
이완구 전 총리가 지난 14일 충남 홍성을 방문하면서 정치 재개를 위한 워밍업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촉발된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가 무죄로 확정된 지 2개월 여 만이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충남 홍성군 장곡면 옥계리 이광윤(1546∼1592) 선생 사당을 참배했다. 이광윤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을 탈환한 의병장으로, 이 전 총리의 11대 조부다.
 
이완구 천안갑 출마 채비…
한국당의 셈법
 

이 전 총리는 참배 후 ‘천안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치권에서 3개월은 긴 시간이다. 트럼프-김정은 간 북미회담, 남북 정상회담, 이명박 전 대통령 문제 등 국내외 현안이 너무 많다”며 “현재 출마 여부를 논하기에는 이르다. 지켜봐 달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는 “앞으로 한 달 후에 보자”며 “평소 좌우명대로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처럼 쳐다보고 소처럼 일한다는 뜻)의 자세로 행동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전 총리 주변에서는 “이 전 총리가 천안갑 국회의원 재선거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다음 달 초 공식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안다”는 말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당내 비주류 세력과 천안 지역 당협위원장, 광역·기초의원들 역시 이 전 총리의 재보선 선거 출마를 바라고 있다. 홍준표 대표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는 반홍(反洪)계 중진의원들은 대체로 배현진 전 아나운서의 서울 송파을 투입에는 이견이 없는 반면 길환영 전 사장의 충남 천안갑 전략공천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한국당 의원은 통화에서 “길환영 전 KBS 사장은 지난 총선 때 천안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가 지역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중도 포기 했던 인물”이라며 “(전략공천)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당 소속 한 충남도의원은 “홍 사무총장 등이 이 전 총리에게 도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충남 정치인들은 이 전 총리가 어떤 역할을 해 주길 간절히 바라는 게 사실이지만 도지사 출마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본다.

천안갑 재선거를 발판 삼거나 다음 총선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하는 게 충청대망론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비난 내 개인적인 소견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치권의 기류와는 달리 정작 공천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당 지도부와 주류 진영은 이 전 총리의 충남도지사 출마를 떠밀고 있다. 홍문표 공천관리위원장은 최소 1차례 이상 이 전 총리에게 도지사 선거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천관리위원장이라는 자리의 성격 상 홍준표 대표의 의중이 그대로 담긴 것으로 봐도 무리는 아니다.
 
홍 위원장은 이 전 총리가 정치활동 재개를 선언한 다음날인 15일 오전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아까 말씀드린 세 분 또는 네 분 속에 한 분으로 저희들이 마음을 두고 있다”며 이 전 총리가 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주길 바란다는 뜻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정치권은 이를 두고 홍준표 대표가 장래 당권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은 이 전 총리의 원내 입성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이 전 총리가 원내 진입에 성공할 경우 자칫 홍 대표 체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주류 진영이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서둘러 당협위원장직에 임명하면서 노골적으로 이 전 총리의 원내 진입을 막아서는 모습이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홍 대표는 잠재적으로 차기 (대권)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들이지 않는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나 김태호 전 의원도 절대 공천을 안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이처럼 이완구 전 총리의 명예회복을 위한 첫 행선지를 두고 당 주류 세력과 이 전 총리 측의 기 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뜻밖의 상황이 연출됐다. 당사자인 이 전 총리가 돌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 후보 공천 작업이 진행되는 민감한 시점에 이 전 총리가 현실 정치의 궤도를 이탈하자 정치권에는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미국 行…
‘큰 그림’ or ‘그래도 천안갑’
 

당장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가 시계추를 2018년이 아닌 2020년 4월 예정된 21대 총선에 맞출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 나왔다. 이 전 총리가 급변하는 정치 상황에 부화뇌동해 가벼운 처신을 하기보단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며 조심스럽게 국회에 입성, 향후 대권까지 바라볼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전 총리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승기를 꺾기가 힘들다”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안 전 지사의 성폭력 파문과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낙마는 자유한국당으로선 분명한 호재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고 4월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이 모든 이슈를 덮으며 기울어진 운동장이 복원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으로 보인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그는 기존 지역구였던 부여·청양(현재는 공주와 통합)보다는 홍성·예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때 이른 관측이 제기된다. 홍성·예산은 한국당 사무총장인 홍문표 의원의 지역구여서 홍 의원에겐 4선 도전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 정치권의 관계자는 “3선 국회의원에 여당 원내대표, 총리까지 지낸 분이다. 더욱이 ‘선거 불패’를 이어온 그다. 급할 게 없다. 미국에서 당장이 아닌 큰 그림을 그리며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재단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관망했다.
 
반면 이 전 총리의 미국행을 ‘전략적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전 총리가 지역에서 자신의 출마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이 자신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정치적 운신의 폭을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즉 그의 미국행 역시 천안갑 재보궐 선거를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안희정 사태’ 이후 새로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경우 당 주류세력도 어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총리 다음 지사 도전?
명예회복 아니다...”

 
이장우 전 최고위원은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총리께서 어떠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라며 “도민들이 충청 정치의 복원을 위해 나서 달라는 여론을 갖고 있다면, 그에 답을 할 것인지의 판단을 총리가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희정 사태 이후 충청도의 명예와 긍지에 엄청난 훼손이 있어 충남도민들이 굉장히 좌절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는데, 충청 정치를 빠르게 복원시켜 영남 정치·호남 정치와 균형을 맞춰가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현재로 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분은 이완구 총리”라며 “이완구 총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을 때에는, 당 지도부도 당연히 그에 화답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이미 충남지사는 10년 전에 했기 때문에, 총리까지 지낸 양반이 다시 지사에 도전한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도 않고 명예회복도 아니다”라며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다르다”라고 이 전 총리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도전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 전 총리는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3선 의원으로 이번 재·보선에서 당선될 경우, 4선 의원의 반열에 오른다. 게다가 국무총리와 충남도지사, 원내대표 등 당과 중앙·지방의 요직을 두루 거쳐 상당한 정치적 무게감을 갖게 될 전망이다.
 
한편 충남 천안갑 국회의원 재선거에는 현재까지 여야 인사 4명이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하고 얼굴 알리기에 나섰다. 야당 인사 2명도 출마를 준비하고 있거나 저울질하고 있다.
 
한태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21일 천안시청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이규희 더불어민주당 전 천안갑 지역위원장도 지난 14일 천안역 지하상가에서 재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 전 위원장은 20대 총선 때 당내 경선에서 한태선 후보에게 패배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유진수 중앙당 부대변인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난 16일 최고위원회를 열고 길환영 전 KBS 사장을 천안갑 선거구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재선거 후보로 공천할 태세다. 길 전 사장은 다음 주 중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출사표를 던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른미래당에서는 이정원 전 천안시의회 의장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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