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만 ‘삶의 질’ 높이나… 자영업도 ‘워라밸’ 열풍

요즘처럼 한국사회에서 사표를 쓴 이들의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회자된 적이 있었을까. 직장인들 사이에서 ‘퇴준생’이란 단어가 이슈다. 과거 세대가 가슴에 품고만 다녔다는 사표를 당당히 쓰는 세대.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벨(Work-Life-Balance)’이다.
 
스펙을 쌓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막상 입사하고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현실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고 짧게는 1년, 보통 3년 동안 퇴사를 준비해 재취업이나 창업에 도전하고 있다.
 
창업보다는 패기가 앞서야
 
퇴사 후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 그들의 노하우를 전하는 책과 방송프로그램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심지어 ‘퇴사학교’라는 것도 생겼다. 퇴사 후 진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돕는 어른들을 위한 교육과정이다.
 
일본의 칼럼니스트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에서는 준비 없는 퇴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퇴사 후 무엇을 할 것인가’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계획은 필수다. 퇴직금 한도 내에서 이직이나 창업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퇴준생에서 이젠 어엿한 사장이 된 청년창업자들은 “창업은 전쟁터와 같다. ‘창업’은 단순한 ‘취업’의 대안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전문성 갖추기
 
강남 대형 치과병원에서 총괄실장으로 13년 넘게 근무했던 장혜진 점주는 2017년 7월 자신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여성전용 휘트니스클럽(커브스 위례클럽)창업을 선택했다. 10년 넘게 병원에서 일하면서 건강한 삶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현재 운영 중인 헬스케어 업종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그녀는 일과 자신의 삶을 고심하게 됐고,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퇴사를 결정, 창업을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다 여성만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커브스’를 알게 되면서 창업에 필요한 것들을 계획했다. 우선 운동 관련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문성을 갖춰야 해당 업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녀는 1년 남짓 시간을 투자해 체대생들이 수료하는 국가고시 자격증인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수료했으며, 보디빌더 자격증도 수료했다. 또한 단지 일하고 돈을 버는 곳만이 아닌 따뜻한 감성이 숨 쉬는 공간으로 여성 고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직접 POP(글씨체) 글씨를 두 달간 배워 자신의 매장인 커브스 위례점을 알차게 꾸미기도 했다.
 
현재 장혜진 점주가 운영 중인 커브스위례클럽은 여성 회원들 개개인의 체질에 맞는 운동법과 식이조절 등의 섬세한 회원관리로 전국 370여개의 커브스 클럽 중 매출 상위권 클럽으로, 현재 40% 이상의 재등록률을 자랑한다.
 
퇴사 후 일과 삶의 균형에 큰 만족을 느끼고 살고 있다는 그는 “하루 30분만 투자하면 충분한 운동효과를 볼 수 있는 ‘30분 순환운동’이 우리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여성들에게 강조되던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 위주의 프로그램에서 탈피, 원안에 비치된 운동기구로 2바퀴를 돌며 최소 근력운동을 통해 체지방을 감소시켜 몸매를 잡아주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그녀는 체수분, 단백질, 골격근이나 내장지방 등의 수치를 파악할 수 있는 체성분 분석기를 이용해 매월 회원들의 체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별 운동 강도와 운동 방법을 지도하고 있다. 3명의 스탭을 두고 있으며 이들 모두 장 점주와 같이 모두 생활스포츠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그는 유소년과 노인에 관련된 국가고시 자격증과 재활 관련 교육을 이수해자격증을 취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보 수집하기
 

청년 창업자의 가장 큰 무기는 기성세대보다 월등한 정보 수집 능력이다. 2016년 10월 얌샘김밥 포항효곡점을 오픈한 이광 점주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창업 아이템을 선정했다면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7년간 무역회사에서 근무한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카페형 분식 창업으로 가닥을 잡고 창업 관련 동호회 카페에 가입해 프랜차이즈 정보와 창업정보 등을 수집하며 창업을 설계했다.

주방에서 칼 한 번 잡아본 적 없던 그는 4개월 정도 시간을 투자해 여러 분식 프랜차이즈의 매장을 방문, 메뉴구성과 컨셉 등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시장조사를 했다. “A업체는 김밥과 모든 식사메뉴에 현미를 사용해 소비자의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B업체는 김밥 외의 식사 메뉴가 부실했다. C브랜드의 경우 시그니쳐 메뉴 구성은 좋은데, 젊은 감성이 없고 노후한 느낌이 단점으로 다가왔다.”
 
창업박람회와 분식과 관련된 창업설명회와 세미나는 빠짐없이 듣고 메모했다는 이 씨. ‘얌샘김밥’은 우선 색다른 메뉴가 많았다. 가령 돈가스가 김치찌개 안에 들어가 있는 돈가스김치찌개 등 기존 분식집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메뉴와 스파게티와 스테이크 등의 양식 메뉴가 돋보였고, 떡만두국, 얼큰칼국수, 뚝배기 부대찌개 등 계절 메뉴 구성도 탄탄했다. 매장 또한 캐주얼한 느낌의 카페형 컨셉으로 자신과 같은 2~30대 소비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창업을 결정했다.
 
현재 하루 평균 150만 원선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그는 “직장인 시절 느껴보지 못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내 매장만을 찾는 단골고객들이 오늘 반찬 정말 맛있다 말해 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외식 창업 시 우려하는 노동 강도에 대해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강조한다. 시간제 종업원과 주방직원 1명을 두고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얌샘김밥의 경우 분식류는 물론 찌개류, 면류, 돈가스 등 50여 가지의 메뉴가 80%이상 가공된 원팩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조리가 간편하다고 전했다.
 
포장고객이 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는 그는 “1일 1배송을 고집하고 있다. 야채, 샐러드 등 신선재료는 대형마트에서 유기농 제품을 구입 사용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포장고객이 늘어 오후 8시가 되면 재료가 떨어져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고, 내일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여의도 IFC몰 스크리트샵 지하2층 15평 규모의 천연캔들공방 ‘캔들라인’을 운영 중인 이지아 점주는 현재 월 매출 3000만 원의 천연캔들전문점을 운영하며 여의도 증권회사를 시작으로 일산, 신촌, 이대 등에 ‘천연향초만들기’라는 주제로 출강을 나가는 사업가가 됐다.
 
디자인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평소 지인들에게 직접 만든 향초와 천연 방향제들을 선물로 주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로 창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퇴직 후 상암동의 한 캔들 매장에서 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판매 노하우와 몸에 좋은 천연, 유기농 캔들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으며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는 이 씨. 그러다 천연 캔들 판매와 공방운영이 가능한 ‘캔들라인’이라는 회사를 알게 돼 지금의 매장을 열게 됐다고.
 
워낙 좋아하는 일을 생업으로 결정했기에 매장 운영을 하면서 틈틈이 짬을 내 조향사 자격증과 양초공예지도사범 자격증까지도 따게 됐다는 이 씨. 수개월을 투자해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그녀는 현재 비정기적으로 증권회사에서 VIP 고객들을 위한 문화체험의 일환으로 ‘캔들만들기’ 교육을 맡아 출강을 나가고 있다.
 
최근엔 창업이나 공방을 운영하고 싶은 여성들과 투잡을 생각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매장에서 한 달에 네 번 정도 공방 교실을 열어 교육도 진행, 제품 판매 매출 외 부가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씨 매장의 주 고객은 20~30대 직장인들이다. 향초판매 업종 특성 상 여성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전체 매출의 45%가 남성 고객이다. 특히 증권, 금융기관 등 다양한 기업체들이 모여 있어 창립기념일과 영업선물용으로 단체 주문량이 많은 것도 이 씨 매장의 특징이다.
 
이 씨는 “단체 주문이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기업고객들의 단체주문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해 결재금액의 10% 적립해주는 포인트제를 운영하고 있다. 적립된 포인트는 다음 구매 시 현금처럼 쓸수 있어 구매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라이프스타일이나 삶의 질은 자영업자들에겐 먼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익 못지않게 개인의 삶의 질과 휴식의 조화를 생각해서 업종과 경영 형태를 정하는 창업자가 늘면서 창업 풍속도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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