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지키려는 선거구 ‘반띵’ 작태에 ‘부글부글’

왼쪽부터 윤소하 원내수석부대표, 노회찬 원내대표, 이정미 대표, 김종대 원내대변인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정의당이 ‘우군(友軍)’ 민주당에 제대로 뿔났다. 그간 사안마다 ‘적폐 청산’을 부르짖던 더불어민주당이 ‘선거구 쪼개기’에 앞장서며 ‘기득권 지키기’에 나선 탓이다. 민주당은 오는 지방선거에서 구·시·군의원(기초의원) 선출과 관련해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도록 하는 4인 선거구를 쪼개, 2인 선거구로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상황이다.
 
2인 선거구는 사실상 거대 정당의 의회 독점을 강화하는 핵심 기득권 장치로 꼽힌다. 민주당이 ‘정치 개혁’을 외치면서 오히려 지역에서는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자 소수 정당인 정의당이 강하게 문제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 등 군소 정당들도 가세한 상태다. 민주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민주당은 묵묵부답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 기초의원 ‘4인 선거구→2인’ 쪼개기 ‘거대 정당’ 유리
민주당, 중앙선 ‘적폐청산’ 지역선 ‘야합’ 비판에 연일 ‘침묵’

 
현재 국회의원 선거와 시·도의원(광역의원) 선거는 한 선거구에서 의원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구·시·군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를 따른다.
 
2002년 제3회 지방선거까지 소선거구제였다가 2005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06년 제4회 지방선거부터 중선거구제를 택했다. 한 선거구에서 1등뿐 아니라 2~4명까지 당선되도록 해 거대 양당 중심의 지역주의 구도를 완화하고, 다양한 세력이 의회에 진출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전국의 각 시·도 산하에 공정한 선거구 획정을 위한 독립 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두게 됐다. 선거구획정위엔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모여 기초의원들을 뽑는 선거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정하게 된다. 해당 전문가들은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와 시의회 등의 추천을 받아 구성되며 시·도지사가 위촉한다.
 
선거구획정위는 지방선거 전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 시·도지사에게 전달하고, 시·도지사는 해당 선거구획정안을 조례로 만들어 달라고 시·도의회에 제출한다. 그러나 전국의 각 시·도 의회에서 거대 양당이 현재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쪼갠 획장안을 의결하는 실정이다. 선거구를 잘게 쪼개 소수의 인원을 뽑으면 인지도가 높은 거대 정당 후보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쪼개기’ 가능… 왜
 
이러한 2인 선거구로 쪼개기가 가능한 것은 당시 공직선거법 개정 때 기초의원 4명 이상을 선출할 때에 2개 이상의 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는 조항(공직선거법 제26조4항)도 함께 신설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는 이 조항이 중선거구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고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마련한 안이 시·도의회에 제출되더라도 시·도의회에서 해당 안을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직선거법 24조 3항은 시·도의회가 시·군·구의원 선거구역에 관한 조례를 개정할 때는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제성이 없는 ‘존중 수준’이기 때문에 지방 의회를 장악한 거대 정당이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을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기초의원 선거구획정 기한일인 지난 21일까지 전국 대다수 시·도 의회에서는 3~4인 선거구 확대를 제안한 선거구획정위원회 안이 대폭 후퇴하고, 2인 선거구가 증가한 안이 수정 의결됐다.
 
서울과 부산, 경기, 인천, 대전, 경남 등 주요 도시에서 4인 선거구가 대폭 줄었다. 특히 서울, 경기, 대전 지역 등은 단 한 개의 4인 선거구도 없었는데 이들 지역은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선거구획정위의 3~4인 선거구 확대안을 관철시킬 수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앞장서 모두 2인 선거구로 쪼갠 것이다. 정의당 등이 특히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다.
 
정의당 서울시당, 경기도당, 대전시당은 최근 각 시·도 의회에서 4인 선거구가 쪼개진 안이 의결되자 민주당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촛불민심을 어기는 배신의 정치에 다름 아니다”, “촛불민심 계승 운운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 스스로 우리 사회 적폐의 일부라고 자인했다”며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시도당뿐만 아니라 지도부도 맹공에 나섰다. 이들은 한국당을 비판하면서도, 중앙에선 ‘적폐 청산’ 지방에선 ‘적폐 야합’을 민주당이 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미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시의회에서 고성과 몸싸움 끝에 4인 선거구 7개가 모두 쪼개지며 4인 선거구 ‘0개’ 안이 통과되자, “다양한 정치세력의 진출을 보장해 지방의회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를 걷어차고, 죽어가는 한국당에게 지방의회의 절반을 내어준 것이 민주당이라는 사실은 정치사에 분명하게 기록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헌정특위(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자 당 헌정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은 21일 ‘분노의 논평’을 냈다. 심 의원은 “촛불의 뜻으로 과감한 정치개혁을 이뤄내자던 여당 정치인분들 다 어디 가셨냐”며 “추미애 대표는 언제까지 이 사안에 대해 침묵하실 거냐”고 추 대표를 압박했다.
 
심 의원은 그러면서 “이런 식의 날치기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민주당 지도부의 분명한 대국민 사과와 시정 방안 제시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이러한 사태와 관련해 “이번 일은 민주당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변인은 “어떤 리더의 잘못된 리더십, 잘못된 지도 등 누구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조직의 원래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며 “당장 본인들 이익 앞에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원래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 본다”고 일침을 날렸다.
 
가장 최근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4인 선거구는 총 1034개 선거구 중 29개(2.8%)에 불과했고, 당시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7개 지역에선 4인 선거구가 단 한 개도 없었다.
 
군소 정당, ‘단일대오’
 
정의당뿐 아니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도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하고 나섰으나, 현재 민주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 핵심 요직에 있는 여러 의원들에게 입장을 물었지만, 질문을 회피하거나 시도당 등에 물어보라는 등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답변을 했다.
 
정의당 노회찬·바른미래당 김동철·평화당 장병완 각 3당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4인 선거구 확대 추진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청와대는 지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개헌안을 내놓고, 민주당은 그 지방정부를 독식하는 선거제도를 고집하고 있는 이 현실은 무엇을 위한 지방자치 강화인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라며 민주당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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