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도서관·전시관에서 작품·인물정보 등 다 뺀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화·교육계 등에서 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는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 시인 고은 등의 흔적이 하나둘 지워지고 있다. 이들에 대해 제기됐던 성추행 등 성폭력이 하나둘 사실로 확인되면서 경찰 수사와 함께 퇴출되는 분위기다. 이들의 성폭력은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동시에 이들과 관련해 사업, 전시 등을 진행해 왔던 지자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금전적인 손실에 대해서는 하소연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상적인 연극공동체였던 밀양연극촌 ‘성폭력 본거지’ 오명 
“시인은 시로써, 연출가는 연출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여론도


교육부는 지난 8일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고은, 이윤택, 오태석의 작품과 인물소개가 실린 교과서를 발행한 출판사별로 교과서 수정 계획을 전수조사하고 2018학년도 검정교과서에 수록된 총 40건 모두를 이달부터 5월까지 수정할 계획으로 밝혔다.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검정교과서 11종에 실려 있는 고은 시인의 시·수필 등 저작물과 인물소개는 총 26건이다. 시 ‘그 꽃’, ‘순간의 꽃’, ‘머슴 대길이’, ‘선제리 아낙네들’, ‘성묘’, 수필 ‘내 인생의 책들’, 이육사 ‘광야’에 대한 고은의 감상평 등 작품과 인물소개가 모두 빠진다. 

검정교과서 7종에 실린 이윤택의 작품과 인물소개는 총 7건으로 연극 ‘길 떠나는 가족’, 희곡 ‘오구-죽음의 형식’ 등의 작품과 인물소개가 모두 삭제된다. 

검정교과서 3종에 수록된 오태석 역시 희곡 ‘춘풍의 처’ 등 작품과 인물소개 7건 모두 교과서에서 사라진다. 

검정교과서는 편찬과 배포, 저작권을 모두 정부가 갖는 국정교과서와 달리 민간 출판사가 펴낸 뒤 검정 심사를 거쳐 확정되기 때문에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권한은 발행사와 저자들에게 있다. 교육부는 승인 권한만 있다.

출판사가 고은, 이윤택, 오태석의 작품과 인물소개를 교과서에서 모두 퇴출키로 결정한 것은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난 인사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시물·조형물 다 철거
전시공간 재활용에 한 달


고은 시인의 집필 공간을 재현한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은 이미 지난 12일 철거됐다.
‘만인의 방’은 고은이 25년간 집필한 연작시집 ‘만인보’에서 딴 이름으로 시인이 직접 명명했다. 경기도 안성시 공도면 마정리 소재 시인 서재인 ‘안성서재’를 재현한 공간에 육필 원고, 좌식탁자, 도서, 필기구 등을 전시했다.

하지만 후배 문인들이 잇따라 고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데 이어 교육부가 교과서에 실린 고은의 시와 수필 등을 지우기로 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서울도서관은 지난달 28일 가림막을 치고 ‘만인의 방’을 폐쇄해 왔다.

결국 지난해 11월 21일 80㎡ 규모로 조성된 ‘만인의 방’은 4개월도 채 안 된 112일 만에 사라지게 됐다. 서울도서관은 책을 포함해 책상, 서가, 작품 등을 모두 고은에게 돌려줄 예정이다.

이정수 서울도서관장은 “고은 시인이나 재단 측과 연락은 아직 닿지 않았으나 기증받은 물품은 전부 시인에게 반환할 계획”이라며 “반환 전까지 도서관에서 보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만인의 방’이 철거된 서울기록문화관 내 공간은 기존에 설치돼 있던 서울광장 관련 전시로 채워진다. 시청 앞 광장의 역사와 의의를 담은 전시에는 2002년 월드컵, 2016년 겨울 촛불집회 등이 다뤄질 전망이다.

이 관장은 “기존 전시공간을 재활용하더라도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3·15 의거 민주 현장에서도 고은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국립 3·15 민주묘지 기념관 1층 벽면에 실려 있던 고은 시인의 전시물은 가려져 있었다.

마산에서도 흔적이 지워지고 있다. 3·15의거 김주열 열사기념사업회는 지난 12일 ‘추모의 벽’ 좌측에 걸려 있던 고은 시인의 게시물을 치우고 이동재 시인의 시 ‘김주열 그는 역사의 눈이다’를 실었다.

전남 목포에서도 법정 스님과 고은의 만남을 표현한 조형물 철거 여부를 두고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 조형물은 법정 스님이 한국전쟁 이후 정광 정혜원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 불교에 귀의한 사실 등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6월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설치됐다. 현재 철거보다는 조형물 수정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문학평론가 A씨는 "고은은 시인이고, 이윤택과 오태석은 연극 연출가다. 시인은 시로써, 연출가는 연출력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옹호했다.

실제로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진 서정주 시인의 작품도 국정교과서에서 빠졌다가 이후 검정교과서에 다시 실렸다.  

밀양연극촌 운영
밀양시가 맡기로


이윤택 성폭력 사태로 밀양은 충격에 빠졌다. 

밀양시는 1999년 밀양연극촌을 설립했다. 밀양연극촌은 이상적인 ‘연극공동체’로 알려졌었다. 이윤택의 명성과 함께 만들어진 곳으로 2000년부터 매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열어 공연하고 젊은 연출가, 배우들을 발굴해 왔다. 

하지만 현재는 이 씨의 성폭력의 본거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공간이 됐다. 배우들은 일정 기간 이곳에서 합숙을 하면서 생활했는데 이 점이 성폭력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됐다. 

밀양시는 그동안 (사)밀양연극촌에 위탁 관리해 온 시설물에 대해 앞으로 연극촌 시설물 관리를 밀양시에서 직접 맡아 관리하기로 했다고 지난 19일 본지에 알려왔다. 이에 따라 밀양시는 연극촌 시설물 관리 종합계획을 수립해 대대적인 시설물 개수,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연극촌 주변 환경정비 및 성벽극장 무대 보수, 본관 외벽 보수, 무인경비시스템 운영, 기타 노후 시설물에 대한 보수를 오는 4월 중으로 마무리하고,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설 개선은 연차적으로 사업 예산을 확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연극촌 중앙광장에 녹지공간과 쉼터 조성을 위해 올해 계획된 조경수 식재와 수경시설 공사를 4억 13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3월에 착공, 5월 중으로 완공할 계획이다.

밀양시 관계자는 “그동안 시설물을 위탁관리해 오면서 수목관리와 시설물관리가 소홀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면서 “연극촌을 단순한 연극작품 공간을 초월하여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공연장과 연계한 다양한 목적으로 손색이 없도록 점진적으로 개선하여 연극촌의 기능이 최대한 활성화되도록 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밀양시는 연극촌 운영 방식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며, 4월 중 결정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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