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우리금융지주 전회장 향후 거취
금융권의 ‘이슈 메이커’였던 황영기 우리금융그룹 전회장이 지난달 30일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임식을 끝으로 우리금융그룹과 실질적 작별인사를 한 가운데 벌써부터 그의 향후 거취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재계가 전망한 황 전회장의 거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재계에서는 우선 황 전회장이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갈 것이란 얘기가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이외에 황 전회장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고 다시 친정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삼성 복귀설’과 함께, ‘정계 진출설’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계 진출설’의 경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황 전회장이 정치권으로 발길을 돌리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원래 적을 뒀던 삼성으로의 복귀와 ‘법무법인 세종행’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황영기 우리금융그룹 전회장의 향후 거취에 대해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추적해봤다.



법무법인 세종행
지난달 30일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임식을 끝으로 우리금융그룹의 품을 떠난 황영기 전회장이 최근 ‘법무법인 세종’의 관계자를 만나 자신의 거취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집중된다. 특히 황 전회장은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현대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등의 대규모 M&A에 참여,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 황 전회장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 “삼성으로의 복귀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던 터라 그의 ‘법무법인 세종행’에 무게를 실었다.

이와 관련, 우리금융그룹 측 관계자는 “오늘(지난달 30일) 황 회장님이 퇴임식을 갖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셨다”며 “공식적으로 (법무법인 세종행에 대한) 아무런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세종으로 가시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시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세종 측은 “회사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해, 황 전회장이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올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삼성 복귀설
황영기 전회장의 법무법인 세종행이 유력한 가운데 ‘삼성 복귀설’도 금융계를 중심으로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황 전회장이 그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온 데다 삼성그룹 내에서는 보기 드문 금융전문가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황 전회장을 둘러싼 ‘삼성 복귀설’은 그가 구조조정본부장으로 내정됐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어 신빙성을 더한다.

1952년 경북 영덕 출생인 황영기 전회장은 서울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잡화무역 업무를 담당하다 그룹내 영어경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77년 10월,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당시 이병철 회장 비서실 국제금융팀에 배치된 황 전회장은 전문 금융인으로서 첫 발을 딛게 된다.

그룹 핵심에서 해외 투자은행들과 활발히 접촉하며 국제금융 전문가로서 차츰 인정을 받게 된 그는 돌연 전문적 지식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 삼성그룹에 첫 번째 사표를 제출하며 영국 런던 정경대학원(LSE)으로 유학길을 떠난다.

런던에서 재무관리를 전공하며 국제금융을 집중적으로 익힌 황 전회장은 81년 귀국해 파리바은행과 BT(뱅커스트러스트)은행, BT증권 등에서 대기업을 상대로한 기업금융 영업을 하게 된다. 86년부터는 BT은행 도쿄지점 국제자본시장 아시아담당 부사장으로 일하며 선물 옵션 스왑 등 파생상품 마케팅을 주로 했다.

외국계 투자은행 ‘외도’를 마친 뒤 삼성에 복귀한 것은 89년 5월. 그는 친정인 회장 비서실의 국제금융팀장을 맡아 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한 뒤 삼성증권을 발족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신경영 원년이었던 93년에 회장 비서실 인사팀장으로 발령된 것만 보더라도 황 전회장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얼마나 두터운 신망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이후 황 전회장은 94년 삼성전자 자금팀장, 97년 삼성생명 전략기획팀장(전무)을 역임한 뒤 99년 8월 삼성투신운용 사장에 취임되는 ‘훈장’을 달게 된다.

삼성그룹 복귀 15년 만인 2004년, 그는 삼성그룹에 두 번째 사표를 제출했다. 삼성증권 사장으로 재임중이던 황 전회장은 돌연 삼성을 나와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 지원, 막판까지 치열하게 경합하던 전광우 우리금융지주 부회장을 제치고 우리금융지주 회장 및 우리은행장에 오른다.

황영기 전회장이 갑자기 삼성증권 사장직을 박차고 우리금융지주로 ‘외도’한 것에 대해 당시 재계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건희 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온 황 전회장이 굳이 삼성을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 전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국제행사 통역을 13년간이나 도맡아 할 정도로 이 회장의 신임을 받아왔던 터였다. 또 삼성그룹 최고 의사결
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 7인의 멤버이기도 해 그가 외도를 한 진짜 이유에 대해 의혹이 증폭됐다.

이와 관련, 황 전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금융지주의 중요한 미션(임무)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다. 이에 재계 일각에선 삼성이 은행업을 하기 위해 황 회장을 파견(?)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스타일로 봐서는 황 전회장의 삼성 복귀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 상 튀는 CEO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한 번 삼성을 떠났다가 다시 불러들인 경우는 있어도 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다시 불러들인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전회장과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전무의 관계로 봐선 이 회장이 양보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과거 황 전회장은 이 전무의 금융 개인가정교사로서 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전무는 금융에 대해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가장 먼저 황 전회장을 찾기도 했다.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황 전회장의 삼성 복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와중에 황 전회장이 ‘삼성 복귀설’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이학수 부회장 빙부상 빈소를 찾은 황 전회장은 이 부회장에게 “조만간 이재용 전무를 만나 인사를 하겠다”고 말한 바 있으며, 같은 날 삼성 복귀설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도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긍정도 부정도 아닌 여운을 남겼다.


정계 진출설
그동안 황영기 전회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한 루머는 금융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준수한 외모에 웬만한 정치인들은 명함도 못 내밀 논리 정연한 언변은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실제로 황 전회장의 논리정연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유려한 화법은 그의 강점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난해 상반기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황 행장 영입에 공을 들였던 기억은 황 행장의 정계 진출 가능성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실제 ‘국회의원 황영기’, ‘정치인 황영기’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황 전회장은 이 같은 루머에 대해 “지난해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 추천의사를 밝혔을 때도 곧장 관심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전문 경영인은 경영인으로 남고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남는 게 옳지 전문 경영인이 자꾸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것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못 된다”고 못 박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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