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 앞두고 한국 길들이는 트럼프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 국무부는 지난달 29일(이하 현지시각) 남북 정상회담 날짜가 오는 27일로 잡힌 것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은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이 한국과 중국에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면서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미국은 미북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하지만 북한이 진지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북한 태도를 지켜보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어트 대변인은 CNN 방송에 출연해 “중국은 북한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한의 대북 압박 캠페인에 도움을 줬다”고 지적했다. 한편,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하이오 주 리치필드에서 한미 양국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대해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그것을 미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대북 비핵화 협상과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연계하고, 북한과의 협상타결 이후로 한미 FTA 개정의 공식 완료를 연기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압박 전선(戰線)에서 한국이 이탈할 가능성 등을 차단하려 한미 FTA를 지렛대로 삼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협상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4월의 남북한 정상회담과 5월의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존의 대(對)북한 최대 압박에 이어 이제는 한국을 상대로 한미 통상관계를 무기로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전달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을 그 자리에서 대뜸 수락한 것을 놓고 미국 정치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미북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달성하기를 추구 또는 희망하느냐를 놓고 설이 분분했다. 미 국무부를 위해 30년 이상 군축 관련 법률 조언을 해 온 뉴월 하이스미스 하버드 법과대학 교수는 지난달 28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주창해 온 마이크 폼페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국무장관에, 역시 군사행동을 옹호해온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백악관 안보보좌관에 각각 지명된 것을 고려할 때 트럼프-김정은 회동의 성사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하이스미스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김정은 회동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있거나, 미국과 북한 양측의 지나친 요구 확인 후 신속하게 교착될 수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볼튼의 조언에 따라, 협상이 실패했으므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트럼프가 한반도 비핵화에서 진정으로 진전을 이루려 한다면 그는 강경 발언을 삼가고 1994년 제네바 미북합의와 2015년 이란과의 핵 합의 때 있었던 협상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라고 하이스미스 교수는 말한다. 미국이 북한 및 이란과 벌였던 협상에서 법률 자문역으로 참여했던 하이스미스 교수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끌어낸 교훈을 이렇게 소개한다.

첫째, 북미 대화의 목표가 북한을 선량한 세계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기대는 보나마나 실패를 부른다. 그보다는 미국과 미 동맹국들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시간을 두고 줄어들도록 증대되는 과정을 미국은 수립할 수 있다. 북한은 합의의 한계를 시험하려 들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어떤 합의가 도출되면 그것을 북한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해야지 그것을 징벌의 빌미 문서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볼튼은 북한의 1994년 합의 위반 사례를 합의 파기의 명분이라며 반겼다고 그의 회고록에 썼다. 

둘째, 세부사항이 중요하다. 100쪽짜리 이란 핵합의는 7쪽 짜리 제네바 합의보다 훨씬 세부적인 준수사항을 담고 있다. 이란 핵 합의가 상세하기 때문에 이란과 협상을 진행했던 6개국(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독일)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리라 믿고 있다. 만약 북한이 구체적인 방법론에 전념하지 않으면서 6자회담(2003~2007년) 때처럼 공허한 성명으로 일관한다면 북한은 단지 시간을 벌고 있을 따름임을 노출하게 될 것이다. 

셋째, 아예 처음부터 검증 및 분쟁해결 절차가 확립될 필요가 있다. 이란 핵합의 달성의 요체는 이란이 부속의정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상대로 이행하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IAEA는 이란 내 핵 관련 장소들에 훨씬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합의의 한계를 시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란을 대상으로 했던 그런 조처들을 처음부터 포함하는 것은, 합의가 협상된 해법들이 결코 작동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한 함정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관리하는 도구라는 개념을 역설하게 될 것이다. 하이스미스 교수의 이런 주장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 협상을 진행할 때, 여차하면 북한과의 판을 깨기보다는 북한을 꼼짝달싹 못하게 문서를 통해 묶어 합의가 이행되게끔 강제해야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북한의 술수를 징벌의 빌미로 삼지 말라는 권고이다. 하이스미스 교수가 보기에 김정은과의 만남을 코앞에 둔 시점에 폼페오와 볼튼을 외교·안보 사령탑으로 기용한 것은 핵 외교를 본격적으로 펼침과 관련해 좋지 않은 조짐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트럼프 정부가 북한 핵 위협과 관련해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합의를 도출해 낸다면 그것은 미래 정부들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편 김정은이 남북·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중국 주석을 찾은 것을 놓고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해스 연구위원은 이 연구소 블로그에 실은 글에서, 미국 입장에서 좋건 싫건 중국은 동북아시아 사안들의 재정(裁定)에 있어 중심적 역할자로 남기로 결심을 굳혔다며, 미국 입장에서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미국의 가장 화급한 외교적 과제로 보는 이슈에서 뒤쫓아 가고 있다는 인상을 외부에 던졌다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중국 정부가 김정은의 방문을 사전이 아니라 사후에 통보했음을 시인했다. 중국이 일부러 그랬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것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발표한 뒤에야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그것을 알린 것에 대한 주고받기식 대응이라고 해스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중국·일본·한국·러시아와 북한 다루기를 위한 공동 접근에서 더 많이 협력할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만남에서 더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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