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들은 세련됐고 편안하고 용이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제된 공간에서 일말의 허전함을 느낀다. 작지만 아늑했고 종이내음 넘치던 지난날의 ‘책방’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 아쉬움을 달래줄 동네서점들이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저마다의 콘셉트를 가지고 꾸며 알차다. 이에 일요서울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네서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서점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다시서점이다. <편집자주>
청록색의 벽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독특한 다시서점의 인테리어.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이태원은 언제나 사람이 넘쳐 분주하다. 하지만 이태원역 3번 출구로 나와 쭉 직진하다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소음이 잦아든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가게들 사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보인다. 그곳을 내려가면 다시서점이 있다.

따뜻한 조명, 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감각적인 음악들, ‘나의 계획이 무엇인지 묻지 마시오. 숨 쉬는 것도 하나의 계획입니다’라고 써놓은 포스터가 맞물려 얼핏 보면 예쁜 카페에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이내 책상 위와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메운 서가에 눈이 닿자 서점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독서인구가 줄고 서점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동네책방’을 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궁금한 마음에 운영자를 직접 만나 물어봤다. “동네서점 운영, 할 만 하신가요?” 다음은 다시서점 김경현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한 켠에는 책들을 책상 위에 진열해뒀다. 종류는 대부분 독립출판물이다.
      -다시서점에 대해 소개해 달라.
▲다시서점은 2014년 5월 18일에 개업했다. 처음에 독립출판물 위주로 시작했다. 한남동과 신방화 두 곳에 매장이 있는데 한남점은 독립출판 중에서도 시집 위주로 다루고, 방화점은 다른 독립출판물들도 받는다.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작은 외삼촌이 서점을 10년 넘게 하셔서 자라면서 옆에서 많이 봐왔다. (외삼촌이) ‘이제 사람들이 책을 안 사기 시작했고 전반적인 독서인구가 많이 줄었는데 서점을 하면 먹고 살 수 있겠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냥 했다.
 
-다시서점이라는 이름이 궁금하다. 시 관련 서적을 많이 다루기 때문인가? 다 ‘시’라서 다시서점인가.
▲(개인적으로) 중의적인 표현을 좋아한다. (개업) 당시 서점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서점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 서점을 해보잔 의미도 있고, 시가 많은 서점을 해보고도 싶었다. 윤선애의 ‘다시 만날 날이 있겠죠’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제목의) 앞글자만 따서 ‘다시서점’이라고 지었다.
 
-서점을 열기까지 준비과정은 어땠나.
▲돈 하나도 없이 시작해서 준비 과정이라 말할 게 딱히 없다. 10년 보고 했다. 5년, 10년 동안에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서점의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10년 안에 내가 완벽하게 그린 서점을 만들어야지’ 하고 처음 시작했는데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았다.
 
-인테리어 등에서 정성이 많이 엿보인다. 하나의 ‘콘셉트’가 있는 것 같은데,
▲(다시서점 한남점은) 낮에는 서점으로, 저녁에는 ‘초능력’이라는 바(Bar)로 운영한다. 이 공간이 다시서점, 초능력 모두 세 번째 공간이다. 두 번째 공간 때부터 같이 해왔다. 원래 가정집이었는데 이사 와서 (우리가) 다 뜯어 고쳤다. 디테일한 건 바 초능력 사장님 솜씨다. 그 분이 미학과 출신이고, 예전에 갤러리 (운영을) 하셨다.
 
-바 ‘초능력’ 운영도 함께 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공간을 함께 쓰는 거다.
 
-창업 전과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읽고 싶은 책을 많이 못 읽는다. (책이) 입고되면 조금이라도 봐야 손님들에게 소개해드릴 수 있으니까.
 
크게 자리잡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감각적인 노래들이 서점을 메운다.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출판사에 먼저 돈을 주고 구입하는 선매입 방식이어서 책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책을 열심히 팔고, 소개하고 싶어도 작은 서점에는 기본적인 제약이 있다. (대형 서점들과) 출발선이 다른 거다.

또 다른 하나는 이 공간이 많이 알려지다 보니 오셔서 사진만 찍고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 책 안 사셔도 된다. 그런데 (책을 보러 온)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가는 경우가 있어서 조심해 달라 얘기하면 ‘왜 나한테 이러지?’ 정도로 기분 나쁘게만 받아들인다.
사진 찍어가는 건 좋은데 감정을 소비하는 행동을 잘 모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밥집에 가서는 밥이 나온 다음에 ‘인증샷(물건을 구입하거나 어떤 행위를 한 것을 증명하거나 자랑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 혹은 그런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을 찍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는 책을 안 사고 인증샷을 찍는 거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북 마스터들도 계속 제재를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 우리나라는 정보나 기술 발달이 빠른 편인데 사람들은 그걸 잘 못 느끼고 소비도 빨리 한다. (인식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형서점들이 (일본서점) 츠타야 모델처럼 하려고 벤치마킹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은 츠타야 서점 보면서 외형이 어떻고, ‘세상 힙(hip·새로운 것을 지향하고 개성이 강한 것을 의미)하다’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책을 대하는 방법이 어떠한가’라는 거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책이나 음악처럼 저작권 있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이건 다 공짜 아니야?’ 라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 한글 축제에 참가했는데 그 때 행사에 4,5만 명이 왔다. 행사는 성공했는데 책 파는 부스들은 다 망했다. 손님들이 오면 이게 다 공짜인 줄 안다. 와서 달라고 하거나 ‘이거 가져가도 돼요?’라고 묻는다.

(책을) 사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문화가 다른 걸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10, 15년 전에 힙합이 TV에 나오면 아무도 안 봤다. ‘이게 무슨 음악이야?’ 이랬는데 지금은 ‘쇼 미 더 머니’ 다 본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빠르게 바뀌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와라’가 아니다. 점점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생기니 이걸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자신과 다르면) ‘너는 내 적’이라고 말해버리니까.
 
벽 한 쪽에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담담하게 적은 문구가 눈에 띈다.
     -운영하면서 보람찼던 경험은?
▲1000원 짜리 (몇 장) 들고 절절매고 있는 고등학생 친구들 보면 (내) 옛날 모습이 보인다. 내 가게니까 (그런 친구들에게 책 가격을) 조금이라도 깎아준다던지, 엽서라도 한 장 챙겨줄 수 있다. 그럴 때 기분 좋고 보람차다.

군대 가기 전부터 계속 오던 친구가 있는데 군대 가서도 휴가 때마다 (서점에) 와주더라. (다시서점)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오셨던 손님들이 지나가던 길에 들른다던지. 그럴 때 고맙고 (기분이) 좋다.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책 뒤에 껌 붙여 놓고 가거나 (판매하는) 책을 찢어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독립출판물을 다루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제는 어느 정도 독립출판물들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이런 독립서점만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렵다’ 이런 건 없다.
 
-예비 (독립서점)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책방 운영) 20, 30년 차 사장님들도 나에게 ‘돈 있어야 이거 하지. 돈 없이 시작하면 하루하루가 죽을 맛일 거다’라고 똑같이 말한다. 다 그렇다. 

그래도 재밌다. 재밌을 거 같으면 (도전) 해보라. 재미는 분명히 있다. 다른 서점이 ‘이거 하니까’ (하면서) 따라하지 말고, 나만의 서점을 운영하셨으면 좋겠다.
 
-독립서점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기성서점이 아닌 다른 시장을 만들어 가는 게 즐겁고 재밌다.
 
-‘서점’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나?
▲어렸을 때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글이 있다. “몸에 입는 옷보다 마음에 입는 옷이 중요하다.” 서점은 마음의 옷을 파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별빛들’에서 나온 이학준 작가의 ‘그 시절 나는 강물이었다’라는 책이다. 수필집인데 굉장히 담담하게 써 놓은 책이다. (글에) 멋 부리지 않고 점을 찍거나 문장부호 쓰는 것 하나하나 고민을 해서 쓴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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