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3세 경영 시대 임박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의 맏아들 세창씨가 입사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게 됐다. 재계 일각에선 세창씨의 승진이 지나치게 빠르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세창씨의 경영자로서의 자질은 우수해 보이나 경험에 비해 직급이 너무 높다는 의견이다. 또 이번 세창씨의 인사는 금호그룹에 작은 파장을 낳고 있어 주목된다. 형제경영으로 우애를 다져온 금호그룹이 3대에 접어들면서 회장 서열이 뒤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한 세창씨는 미국 MIT대학교 MBA 코스를 밟아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AT커니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금호타이어 부장으로 입사했다. 부친의 권유로 입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세창씨 자신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년만에 초고속 승진
입사 후 1년간 남다른 활약을 보여온 세창씨는 지난 12월 1일 금호그룹의 정기 인사에서 이사로 발탁됐다. 그가 맡은 직함은 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 이 자리는 그룹의 경영전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위치라 경영수업을 받기엔 제격이다. 재계에선 부친 박삼구 회장이 지근거리에서 아들의 경영수업을 돕기 위해 이같은 인사를 냈다는 후문이 나온다.
금호그룹도 세창씨의 승진에 대해 경영수업을 위한 인사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 나이 때부터 그룹 경영의 실무를 익힐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반면 능력에 비해 승진이 지나치게 빨라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전략경영본부 업무에 적응할지도 향후 관심사가 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재직 10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대한항공 등 국내 재벌 기업에서는 일반 사원으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승진해 업무를 익히는 것에 비해 세창씨의 승진은 빠른 편이다. 이에 대해 금호그룹은 “단순한 경영수업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며 “본격적인 3세 경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창씨의 초고속 승진은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인사로 금호그룹 박씨 일가 3세 중 세창씨가 가장 선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세창씨의 다른 사촌들은 아직 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2대 회장 박성용 회장의 맏아들 재영씨는 미국에서 영화관련 공부를 하고 있고, 3대 회장 박정구 회장의 맏아들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 몸담고 있다. 이들 3세들이 그룹에서 일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입사가 미뤄지고 있는 것으로 볼 때 당사자들의 거부 의사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세창씨가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게 됨에 따라 세창씨는 사촌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것은 분명해 보인다.
금호그룹은 그동안 형제경영으로 큰 분쟁없이 남다른 우애를 재계에 과시해왔다. 일부 재벌기업에는 경영권을 둘러싸고 형제나 부자간의 갈등이 있어왔다. 금호그룹처럼 형제경영으로 재계의 찬사를 받아온 두산그룹은 지난해 ‘형제의 난’로 불릴 만큼 갈등을 겪다 서로 돌아선 경험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창씨의 빠른 승진, 즉 급부상은 형제간 경영이라는 박씨 가문의 오랜 전통이 자칫 허물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같은 해석은 소수로 ‘오버’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경영능력이 순서보다는 능력으로 좌우된다는 점에서 그다지 설득력이 떨어지지는 않고 있다.

세창씨 3세 중 선두주자
금호그룹의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의 경영원칙을 2세들이 충실히 따른 결과다. 박 창업주는 2세들에게 지분을 남자들에게 상속하고 형제간 합의 경영을 강조했다. 형제간 합의 아래 회장을 세우고, 주요사안에 대해서도 4자 합의를 최우선으로 했으며, 합의가 안 될 경우 다수결 원칙에 따르되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을 때는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창업주의 가르침을 받은 박성용 명예회장 등 4형제는 이를 충실히 따라 왔다. 금호그룹의 대권은 창업주 박인천 회장에서 맏아들 박성용 회장으로 이어졌다. 박성용 회장은 입버릇처럼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부친의 원칙을 지켰고, 대권을 받은 박정구 회장이 지난 2002년 갑자기 별세하자 3남 박정구 회장에게 대권이 넘어갔다. 예정된 수순대로라면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이 맡을 차례이다. 그 다음은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씨가 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창씨의 급부상으로 금호그룹이 예정된 수순을 밟게 될지 우려된다는 시각이다. 경영권 이양이야 형제간 회의에서 결정하게 될 사항이지만 3세 경영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세창씨가 대권을 거머쥘 공산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형제경영 전통 이어질까
금호그룹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룹의 지배력을 가늠해주는 그룹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율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금호그룹은 금호석유화학을 필두로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금호그룹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금호석유화학의 지배권 확보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의 지배구조는 박삼구 회장의 4형제 일가가 나눠 가진 상태다. 금호석유화학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이 회사의 지분율은 박삼구 현회장 5.3%, 박찬구 부회장 5.3% 박재영 10.01%, 박철완 10.01% 등이다. 재영씨와 철완씨는 각각 부친 박성용 명예회장과 부친 박정구 회장의 몫을 물려 받았다. 박삼구 회장일가는 아들 세창씨 지분 4.71%를 합쳐 이들과 동등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찬구 부회장 일가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분율대로 보자면 박씨 형제 일가는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형제간 균등한 지분율 분포는 금호그룹의 형제공동 경영이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됐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금호측의 설명이다.
재계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세창씨의 고속승진은 형제간 합의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어 이들 금호그룹의 형제 경영전통이 3대까지 순조롭게 이어질지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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