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현대그룹, 소액주주 소송에 골머리


현대그룹(회장 현정은) 계열사 현대상선이 ‘회사기회편취’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1월 27일 현대상선 소액주주 42명이 법무법인 한누리를 통해 현대상선 이사진에 경고성 메시지가 담긴 내용증명서를 보내며 문제를 제기한 것. 아직 법정 소송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이같은 논란이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제기된 시점이 좋지 않다. 그룹 총수인 현정은 회장의 아버지 현영원 회장이 타계한지 3일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현재 현대는 계속되는 소액주주들의 ‘태클’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11월 1일에는 소액주주 2명이 현정은 회장에게 420억원 소송을 제기했다. 경영권 분쟁에 소송까지 낙숫물에 바위 패일까,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현대그룹이다.

소액주주, 회사기회편취 의혹제기

지난 11월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비상장 IT업체인 현대유앤아이㈜와 현대상선의 거래 규모가 작년 3/4분기(7~9월)에 30억원에서 올해 3/4분기까지(1~9월) 108억원으로 집계됐다. 한편, 현대상선의 ‘전산비’는 작년 3/4분기 말 63억원에서 올해 3/4분기 말 113억원으로 증가했다. 현대유앤아이와의 거래가 늘어나면서 전산비 지출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두 회사간의 거래가 이처럼 증가했으나 현대상선 입장에서는 손해보는 ‘게임’이었다. 현대상선의 올 3/4분기(7~9월) 실적은 매출액이 1조2,331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7%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은 125억원으로 89.7% 감소했으며 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한 것. 올 들어 3/4분기까지(1~9월) 누적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1,035억원, 1,413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71.6%, 49.3% 감소했다.
현대상선 측은 이같은 순이익감소에 대해 현대유앤아이와의 거래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소액주주들은 현대그룹의 총수 개인이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 정보기술(IT)회사가 계열사의 도움으로 급성장해 결과적으로 총수 일가의 부(富)를 늘리는데 활용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자신들이 주주로 있는 회사에 손해를 입혀가면서 총수 일가의 회사를 밀어줬다는 주장이다. 현대상선 소액주주들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경고서신을 현대상선 측에 보냈다. 이들은 서신을 통해 “회사 이익을 침해하는 이해관계자들 간 거래 등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거래액증가 단순비교 무리”
한누리 법무법인은 현대상선이 현대유앤아이와 거래하는 것이 일종의 ‘밀어주기’행위라며 전형적인 ‘회사기회편취’라고 보고있다.
‘회사기회 편취’란 지배주주가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봉쇄하고 이를 자신이 대신 수행하여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상장사가 할 수 있는 고수익사업을 개인회사에 몰아줘 회사의 이익을 개인(총수)이 빼앗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회사기회편취 의혹을 받았던 곳이 현대차 계열사인 ‘글로비스’와 태광 계열사인 ‘태광시스템즈’다.
글로비스는 현대차의 차량수송을 독점했던 업체로서 정회장 부자가 대주주로 있다. 정회장 부자는 30억원으로 회사를 설립해 현대차의 차량 수송을 몰아주어 자산가치를7,887억원으로 증가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태광시스템즈는 2004년 태광산업 안 사업부에서 이 회장이 100%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로 독립했다. 2004회계연도 매출은 32억원에 불과했으나 계열사인 흥국생명, 한국도서보급, 유선방송사들의 관련 사업을 도맡으며 2005년 회계연도 매출은 9배 늘어난 289억원으로 급성장했다.
현대유앤아이는 각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자체적으로 용역을 줘 처리하던 IT업무를 일괄 처리하고 자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별도로 설립된 회사로, 현 회장(68.2%),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앤아이 기획실장(9.1%), 현대상선(22.7%) 등 현 회장 측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즉 이 회사가 이익을 낼수록 사실상 현 회장 모녀의 이익도 늘어나는 셈이다. 외형적으로만 봤을 때는 출자형식 자체가 글로비스나 태광시스템즈와 비슷하다. 회사기회 편취 의혹을 받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에 대해 현대상선 관계자는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적자폭 증가는 현대유앤아이와의 거래가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해운시황이 둔화됐기 때문”이라며 “현대유앤아이와의 거래로 인해 현대상선이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한 “작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간의 거래액수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거래액을 단순비교해 거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하는 것도 억측”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회사기회편취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를 담당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전영준 변호사는 “현대상선이 분기당 투입하던 전산비용이 현대유앤아이와 거래 이후 2배 이상으로 늘었다”며 “이는 회사기회편취로 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서 회사기회편취가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소액주주들에게 투명하게 경과를 공개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경영권 방어가 원인
현대가 소액주주들의 문제제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번에 제기한 ‘회사기회편취’논란 외에도 지난 11월 1일에는 현대상선 소액주주 2명이 현정은 회장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공 모씨 등 현대상선 주주 2명은 11월 1일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소장을 통해 “현대상선 이사회는 2004년 6월 자사주를 ‘케이프포천’ 펀드에 시가보다 20% 낮은 가격인 주당 7,259원(합계 897억원)에 매각하고, 2006년 7월에는 계열사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가 보유하던 비상장회사 현대택배의 주식 151만주를 장외 거래가격(주당 8,000원 이하로 추정)보다 높은 1만3,580원에 매입해 회사에 총 424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런 행위들은 회사의 경영상 필요에 의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기보다는 현정은 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사로서 부담할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와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충실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회사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소액주주들의 계속되는 문제제기가 현대 측의 과도한 경영권 방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한누리의 김주영 변호사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집해 경영권 위협에 노출된 현정은 회장이 느낄 두려움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최근 현대상선이 보여준 회사의 기업가치나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과도한 경영권 방어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서는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회사기회편취 의혹은 주주들의 손실과 회사의 부실경영을 막기 위한 ‘사전예방’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성장가능성 무궁, 불씨남아
회사기회편취라고 단정짓기에는 회사설립이 1년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이고, 현대그룹 계열분리 이전의 IT회사였던 ‘현대정보기술’직원의 상당수가 현대유앤아이로 흡수돼, 새롭게 설립된 회사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까지는 현대유앤아이와의 거래로 인한 현대상선의 손해가 크지 않다.
소액주주를 대리하는 한누리 측에서도 경고성 서신을 보낸 것이지 당장 소송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영준 변호사는 “이번에 현대상선 측에 보낸 것은 경고성 서신으로 향후 이와 관련한 회사의 손해를 묻는 경우, 이사들의 중과실이 추정될 수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문제되는 부분에 대하여 직접 챙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소액주주 입장에서 유엔아이 부분에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그룹총수의 장녀가 회사의 기획실장으로 배정됐다는 자체가 현대유앤아이를 키워주기 위한 전략적 카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그룹 관계자도 이 회사의 성장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선박산업이 크기나 속도에 치중했다면 앞으로의 선박산업은 IT산업과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현대상선과 현대유앤아이의 ‘무조건적 밀어주기’도 그만큼 늘어날 수가 있다는 얘기다.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도 언론을 통해 현대유앤아이와 함께 IT시스템을 구축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유앤아이도 이에 발맞춰 신입사원을 채용해 규모를 대폭 늘리는 등 사업확장을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현대상선 측이 회사역사나 거래규모 등을 이유로 회사기회편취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현대유앤아이가 성장이 두드러질수록 이곳의 대주주로 있는 현정은 회장 일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현영원 전회장의 타계와 계속되는 경영권 위협으로 인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그룹. 이 현대그룹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현대유앤아이가 ‘제2의 글로비스’가 될지 아니면 현대상선과 ‘윈-윈’게임을 할 수 있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현정은 회장 장녀 정지이는 누구

어머니 도와 현대 ‘정상궤도’에

현대유엔아이 정지이 기획실장(29)은 대표적 ‘재벌가 여성 3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 실장은 고 정몽헌 전현대그룹 회장의 맏딸(1남2녀)로서 아직 미혼이다.
부친의 사망이후 경영일선에 적극적으로 나서 어머니 현정은 회장을 돕고 있다. 지난 2005년 7월에는 현 회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도 동석하기도 했다. 정씨는 지난 4월 현대그룹이 현대중공업 그룹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을 때 현대상선 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주식 4.51%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도왔다. 어머니와 함께 고심했던 그룹의 최대 현안 하나를 덜어낸 셈이다. 부친 사망 이후 2004년 1월에 현대상선에 입사해 2005년 과장으로 승진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정 실장은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 아버지의 타계이후 2004년 1월 현대상선 경력직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대리-과장을 거쳐 입사 2년만에 IT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의 기획실장(임원급)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실장은 성실한 자세와 수수한 이미지 덕분에 그룹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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