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엇갈린 재벌 3세


반재벌론자로 알려진 권오승 공정위원장이 재계 경영권 세습에 우려를 표시한 가운데 일부 재벌그룹들이 후계구도를 가시화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최근 서른여덟 두 동갑내기 재벌 2세의 표정에 명암이 엇갈려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1월 29일 신세계는 정기임원인사 51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구학서 사장과 정용진 부사장을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 발령냈다. 같은 날 대림산업은 12월 1일자로 이용구 대표이사 부회장을 대표이사 회장에, 건축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하지만 대림산업의 임원인사 명단에 이준용 전회장의 아들 이해욱 부사장의 이름은 빠졌다.


재계는 정용진 부회장의 승진에 대해 모친 이명희 회장이 2선 후퇴를 기정사실화하고 3세 정용진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대세다. 대림산업도 이해욱 부사장이 승진대열에는 끼이지 못했지만 대림산업을 끌고 왔던 이준용 회장의 일선후퇴로 이번 인사를 평가하는 분위기다. 재계 일각에서는 두 재벌 3세의 경영권 승계 준비 작업에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권오승 경영권 세습 비판
그러나 이같은 재계 경영권 세습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바로 현정부의 반재벌론자로 알려진 권오승 공정위원장이 그 주인공. 권 위원장은 재벌 경영승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권 위원장의 주장을 요약하면, 제 아무리 재벌가 자제라고 해도 경영권은 그 능력에 따라 넘겨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27일 권 위원장은 서울대에서 열린 ‘세계경제 최고전략과정’강연에서 재벌 3~4세들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다. 권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창업주들은 탁월한 능력을 갖췄으나, 2세 체제로 가면서 잘하는 기업들만 살아남았다”라고 지적하며 “재벌 3~4세의 경영능력에 대한 걱정을 국민들이 왜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권 위원장의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작동된다면 주주들이 경영을 못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며 합리적인 기준에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재벌 2세의 승진인사는 비록 결과를 달리 하고 있지만, 후계자의 경영능력을 반영한다는 공통점에서 권 위원장의 발언과도 일부 맥을 같이 한다.

이해욱, 승진은 잠시 보류
이해욱 부사장이 이번 승진명단에 빠져있지만, 경영승계 자체에 차질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이준용 전회장은 평소 40세에 경영을 맡고 70세에 이르면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다는 지론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재계는 이 전회장이 최소 2008년까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 부사장의 경영 승계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 이준용 전회장도 만 40세에 이르러 사장에 취임했다.

정용진, 오너체제 구축
한편으론 이 부사장이 2005년 8월부터 맡은 유화부문의 실적이 부진했던 것이 이번 인사에 반영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문책성 인사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시기가 연장이 될 수는 있어도 경영승계 자체에 큰 지장을 주진 못한다.
정용진 부회장의 승진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인 양상을 보인다. 여론에서도 이번 인사결과를 단순한 승진으로만 보지 않고 있다.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된 후계작업이 본격화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회장은 지난 9월 부친인 정재은 명예회장에게 지분 4.46%를 증여받아 지분율이 9.32%로 상승했다. 어머니 이명희 회장에 이어 2대주주가 된 것이다. 정 부회장은 역대 최대 규모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하는 것으로 재벌들의 편법 경영권 승계논란을 돌파했다. 구학서 부회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승계로 재벌들의 편법 승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신세계의 경영체제에 당장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정 부회장은 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이 맡았던 그룹의 총괄업무를 배우고, 실제 경영 일선은 예전처럼 구학서 부회장 등의 전문경영인이 책임지는 구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진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지원하는 유력한 핵심은 바로 중국진출사업이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중국관련 업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재 신세계는 중국 상하이에 이마트 3호점까지 오픈한데 이어 2008년 8월 베이징 1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마트의 중국확장사업은 정 부회장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정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입증될 만큼 확실한 성과가 중요하다.
현재 이마트는 먼저 중국에 진출해있던 까르푸와 월마트의 공세에 밀려 치열한 영업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중국진출사업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해욱 부사장은 동갑내기인 정용진 부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다. 이 부사장은 1989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을 전공했다. 1995년 대림산업 유화부문에 입사한 뒤, 2000년 건설부문 상무로 승진했다. 2003년 건설무문 기획실장, 전무를 거쳐 2005년부터 현재까지 유화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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