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경련 회장 하마평


전경련 강신호 회장의 임기가 내년 1월 말로 끝남에 따라 차기 전경련 회장이 누가 될 것인가가 연말 재계에 최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애초에 거론되던 회장 후보군은 김승연 한화 회장, 효성 조석래 회장,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 등이었다. 그러나 지난 23일 강신호 회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나 차기 전경련 회장 선임에 대해 상의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양상이다.

▶ 전경련 위상 높일 주인공 누구?

재계에서는 새로 선출될 전경련 회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반세기 동안 재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들어 내외상황의 변화로 그 영향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전경련 회장직은 재계 총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탐내던 자리였다. 이병철 전삼성회장을 비롯해 정주영 전현대회장, 구자경 전LG회장, 최종현 전SK회장 등이 모두 이 자리를 거쳐갔다. 한 마디로 전경련 회장 자리는 ‘알아주는 자리’였던 것.
그러나 ‘반기업정서’나 ‘출총제’등으로 재벌기업에 대한 견제가 심해지면서 더불어 전경련 회장의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약해져갔다. 그렇다보니 지난 2005년 강신호 현회장이 2선 회장에 당선될 당시에도 재계 일각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이른바 ‘빅3 기업인’중 한 명이 회장을 맡아 실추된 전경련의 위상을 재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었다. 재계에서부터 ‘전경련 위상 높이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지난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이들 ‘빅3기업인’보다는 재계 순위에서 한 두 단계 낮은 기업회장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특히 한화의 김승연 회장이나 효성의 조석래 회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김 회장은 지난 9월 14일, 3년만에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전경련 노조위원장 한번 해보려고 한다”며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차기 회장직에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게 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추대 가능성도 높았다. 재계 총수 중 비교적 연장자인 데다 오랜 기간 다른 총수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효성그룹이 비자금 조성이나 정치자금 제공 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혀왔다. 여기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도 자천타천으로 전경련 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본인들은 맡을 뜻이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지난 11월 23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에이, 강 회장이 잘하시고 있는데…”라며 손사래를 쳤다. 효성 관계자도 “여러가지 면에서 조 회장님이 적합한 후보인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회장님은 그룹사업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해 본인 스스로는 회장직에 큰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잘하고 계신데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했다. 김승연 회장은 회의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 삼성 이건희 회장 거취 주목
이런 가운데 주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다시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강신호 회장이 “이건희 삼성 회장을 만나 차기 전경련 회장 선임에 대해 상의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이건희 추대론’의 시발점이 됐다. 강회장은 “(재계의) 제일 어른이니까 지난번에 그랬던 것처럼 (차기 회장 문제를) 의논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 강회장은 지난 2005년에도 이회장의 의도를 알아봤으나 이회장이 고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회장의 거취문제가 먼저 결정되고 이후 수순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건희 회장은 이번에도 회장직을 맡을 뜻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유는 ‘삼성의 일만으로도 해야할 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 이 회장은 “삼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만드는 데 전념하는 것도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이 회장은 1년의 절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국내에 있다고 해도 대부분 사업차 외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설사 혼자 있다하더라도 새로운 사업구상에 여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회장 직에 에너지를 소모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말고 진짜 고사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말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소송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건희 회장의 검찰 소환이 임박했다는 설에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법처리까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재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그룹 내 난제들이 우선 해결돼야 외부활동도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을 때, 삼성에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재계 대표로서 앞장서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리에 있다보면 아무래도 언론에 노출이 잦아질 것이고 그렇다보면 시민단체나 정치인들의 집중 포화를 맞을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건희 회장뿐만이 아니라 재계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자리를 선뜻 수락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내년에 있을 대선이다. 차기 회장은 재계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한 때는 내로라하는 재벌총수만이 맡을 수 있던 전경련 회장자리가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과연 누가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지를 지켜보는 것도 내년 이후 재계판도를 엿보는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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