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간 ‘혼선’에 국민 걱정 늘어난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정부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지난 3일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한국인 탑승 어선이 피랍됐기 때문. 연이어 엠바고(보도유예) 해제 논란도 휩싸였다. 처음에는 현지 언론이 보도했기 때문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으나 이후에는 납치 선원 가족들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힌 것. 일각에서는 ‘말바꾸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1년 발생한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 당시 선장이었던 석해균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안보교육담당관은 이번 피랍 사건과 관련해 “그들(해적)을 자극해서 좋을 게 없을 텐데”라고 우려했다. 일요서울은 가나 피랍 사건의 전말을 살펴봤다.

관례 깨고 엠바고(보도유예) 해제···‘말바꾸기’ 지적 잇따라
석해균 “해적 자극하면 인질 사살 후 도주할 수 있다” 우려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오후 5시 30분경(현지시간) 아프리카 가나 해역에서 한국인 3명이 탑승한 어선 마린 711호가 피랍됐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마린 711호는 500t 규모의 참치잡이 어선으로 한국 국적의 사람이 대표를 맡고 있는 선사가 운영하고 있다. 납치 당시 40여 명의 선원이 탑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납치세력은 아크라 연안에서 선박을 납치한 후 나이지리아 해역으로 이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인 3명만 고속정에 태워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선원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은 대부분 가나 국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한국인 3명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으며 청해부대(문무대왕함)가 지난달 28일 오전 9시경 인근 해역으로 긴급 이동을 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엠바고 푼 까닭은?
 
정부는 피랍 사건 이후 곧바로 엠바고(보도유예)를 걸었다. 관련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납치세력에게 우리 국민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통상적으로 정부는 해외에서 납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하고 물밑 접촉을 통한 사건 해결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31일 오후 갑작스럽게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관례를 깨고 피랍 사실을 공개한 것. 또한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이 보도자료 배포에 앞서 같은 달 28일 오전 9시경 인근 해역으로 긴급 이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현지 언론에서 보도가 나왔기 때문에 엠바고 해지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었다. 가나 현지 일부 얼론이 관련 사건을 보도하고, 그중 일부에서 한국인 관련 이야기가 언급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외교부는 이후 엠바고 해제 결정이 내려진 것과 관련해 “정부가 직접 협상 주체로 나서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가나 피랍 사태와 관련해 인질납치 및 테러 세력과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원칙이 변경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와 안전 확보를 최우선시하면서 납치 사건의 협상 과정에서 측면지원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변인은 “물론 이전에도 정부는 선박 피랍 사건 등에 있어서 외교채널을 통한 안전한 석방 노력, 제반 정보 제공, 협상전략 조언 등을 통해서 측면지원을 해 왔다”며 “동시에 선사와 해적세력 간 대화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들에 대해서도 고민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이러한 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납치세력에게 최대한 압박을 주고 상황을 유리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이 된다”며 “다만 정부는 테러단체, 해적 등의 범죄 집단과 직접 협상하지 않는다는 기본원칙을 유지한 채로 협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우리 국민의 피랍 사건과 관련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매뉴얼 개정을 검토할 방침이다. 기존 피랍 사건들을 검토해 본 결과 피해 당사자와 납치 세력간 협상으로만 문제를 풀다보니 사태가 필요 이상으로 장기화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엠바고 해제를 두고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지속적으로 현지 언론이 보도했기 때문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으나 이후에는 납치 선원 가족들의 의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기 때문. 청와대와 외교부 간 설명이 엇갈리자 일각에서는 ‘말바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뉴시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엠바고를 해제하고 일방적인 공개수사로 전환한 데 대한 정부 입장을 지난 4일 밝혔다.
 
강 장관은 “엠바고를 풂으로 해서 앞으로 있을 (납치세력과의) 협상에 압력이 더 취해질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판단 하에 청와대와의 협의해 (엠바고를) 풀기로 결정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약간의 흠결이 있었다는 점은 유감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어 관련 매뉴얼을 정부가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과 관련해 “매뉴얼에서도 ‘협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판단해서 한다’하는 그런 토도 달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전한 석방을 위해 어떤 판단을 내리고 결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청와대와의,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아울러 “매뉴얼 부분에 있어서는 다시 꼼꼼히 점검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정할 부분이 있고, 강화할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석해균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안보교육담당관(전 삼호주얼리호 선장) <뉴시스>
   석해균 전 삼호주얼리호 선장의 생각은?
 
지난 2011년 발생한 삼호주얼리호 피랍 사건 당시 선장이었던 석해균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안보교육담당관(이하 담당관)은 일요서울에 이번 피랍 사건을 두고 “정보가 많이 흘러가면(자극을 하면) 좋지 않은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석 담당관은 “해적들은 조직폭력배와 같다고 보면 된다. 상대하기도 어렵다. 내가 납치됐을 (당시) 상황에서도 헬기가 우리 본선 주위로 오면 해적들이 우리 선원들을 밖으로 다 불러낸다. (그리고) 총을 겨눈다. 헬기에서 보라는 것”이라며 “(우리는) 총을 겨누고 있다. 또 (피랍자들은) 현재 생존해 있다. 이런 식으로 위협을 한다. 거기서 걔네(해적)들이 (정부의 강경 대응 등으로) 마음을 바꿔버리면 (피랍자들을) 바로 사살하고 도망갈 수도 있지 않느냐.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이 걱정된다. 사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걔네(해적)들이 완전히 계획적으로 (납치를) 실행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연찮게 우리 선박이 운이 나빠서 걸려든 것 같은데 해적들이 안 좋은 쪽으로 비추게 되면(자극하게 되면) 우리에게 보복할 것이다. 아프리카 쪽에서는 보복, 공격 등을 많이 하지 않느냐”면서 “이번에는 아무 사고 없이 잘 처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번 피랍 사건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긴밀히 협조하기로 한 것으로 지난 5일 확인됐다.
 
합참에 따르면 정경두 합참의장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은 지난 3일 오후 8시부터 30여 분간 통화하며 이 같은 사항을 논의했다.
 
이날 통화에서 정 의장은 던포드 의장에게 가나 인근 해역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 3명 구조에 필요한 정보 지원과 청해부대 작전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에 던포드 의장은 필요한 정보 교환, 군수지원 등 미 아프리카사령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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