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신입사원 종합상사맨 만들기


지금은 ‘삼성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약 30여년간 삼성물산이 대한민국 ‘수출산업화’에서 차지해온 비중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한때는 국내 유일의 ‘무역사관학교’로 통하기도 했으며, 대한민국 수출신화의 배후에는 항상 ‘삼성물산맨’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삼성물산에는 매우 독특한 ‘신입사원 교육방식’이 존재했다.
복사-팩스-문서수발-커피 심부름이라는 대졸 신입사원의 4대 기본업무가 바로 그것이다. ‘무역사관학교’로 통했던 만큼 한창 때는 국내 굴지의 명문대 출신들도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고, 그렇게 어렵게 합격의 영광을 차지한 ‘수재’에게 복사와 커피 심부름이 웬 말일까? 이처럼 불합리하게 조직을 운용하는 회사가 어떻게 ‘사관학교’로 통했을까?


우선 삼성그룹에는 6~8주짜리 신입사원 ‘지옥훈련’이 있으며, 대략 10~20%가 중도 탈락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깡’으로 연수과정을 버텨내기는 했지만 ‘오직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끝난 직후 떠나는 자들까지 합치면 입사 후 3개월 내에 대략 30% 가까이가 회사를 떠나간다.
그런 지옥훈련을 겨우 이겨내고 현업부서에 배치를 받았는데 또다시 복사와 커피 심부름을 하게 될 때의 기분은 아마도 당해본 사람이 아니고는 잘 모를 것이다. 특히 그룹 입사 동기들이 해외 업무출장이나 공장에 업무협의차 가는 모습들을 보면 스스로의 처지가 한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복사와 커피 심부름을 하는지를 깨닫는 자는 ‘종합상사맨’으로 승승장구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고, 끝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자연 도태된다는 사실이다.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지만 팀워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 때문에 삼성물산은 이처럼 철저하게 ‘적자생존’ 방식의 교육방식을 오랜 기간 채택해왔다. 그리고 그것만이 시간과 효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방식이라는 확신을 갖고 제도를 계속 유지해왔다.
기본적으로 ‘종합 상사맨’은 멀티태스킹에 능해야만 한다. 관장하는 업무범위가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스스로 시간과 효율에 대해 엄격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자신이 관장하고 있는 아이템이나 거래선에 대해 통제해야 할뿐 아니라 24시간 옥석을 가려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다시 말해 돈이 되지 않거나, 혹 돈이 되더라도 조직적 차원의 접근이 불가능한 아이템이나 거래선에 대해서는 즉각 손떼야하며, 비록 손을 떼더라도 후일을 위해 최소한의 연결고리는 계속 유지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항상 최선의 팀을 짜도록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이번 해외공사 입찰을 위해 시공은 누구에게 맡기고, 자금은 누구에게 맡기고, 대관업무는 누구에게 맡기고, 현지조율은 누구에게 맡기고, 비서실과 사장단 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해야만 한다. 혹, 팀내에서 한명이라도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나올 경우 팀원 전체가 ‘헛수고’를 하게되고, 함께 문책당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삼성물산이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고 ‘적자생존’ 방식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교육프로그램 속에 담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조금 영리한 사람은 6개월쯤 지났을 때에 이를 터득하며, 대부분은 1년쯤 지났을 때에 이를 터득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0~40%는 끝내 터득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복사-팩스-문서수발-커피 심부름을 놓고 볼 때 그저 ‘잡일’ 정도로만 보이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찾을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정보’다. 결국, ‘삼성물산맨’으로 살아남을 것이냐 아니냐를 좌우하는 것은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느냐 아니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사를 하면서 계속 딴생각을 하거나 딴짓하는 사람은 신입사원으로는 접할 엄두도 안나는 고급정보를 돌을 보듯이 하고 있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똑똑한 사원이라면 몇 가지라도 확인하려고 할 것이다. 즉, 이것의 제목이 무엇이며, 그것을 작성한 담당자가 누구이며, 작성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이 좀 더 습관화되면 그 후에 복사된 내용이 한장 한장 나올 때에 속독으로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된다. 그런 마인드를 갖고 6개월쯤 지나면 해당 부서 내에서 돌아가는 업무의 상당부분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야근시간을 이용해 공부할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복사 6개월에 풍월을 읊는’ 셈이다.
팩스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해당 정보가 누구에게 가느냐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스스로 인적네트워크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초기에는 바로 위 직급의 주무사원이나 대리가 팩스 표지를 작성하고 있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그 일이 ‘잘 준비된’ 신입사원에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잘 준비되지 못하면 1년이 지나고도 결코 팩스 표지를 작성하는 일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팩스의 의미를 못 깨달은 이상 계속 팩스기계 앞에서 대기하는 일만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커피 심부름이야말로 ‘나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다. 신입사원에게 커피 심부름을 지시할 정도면 최소한 과장급 이상이다. 그리고 과장이 커피를 대접할 정도의 인물 역시 최소한 과장급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커피 심부름은 회사 내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책임자들의 이름, 부서, 직책 및 얼굴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혹, 커피를 건네주면서 “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무척 바쁘셨나봐요”, “과장님이 들어오시니까 분위기가 환해지네요. 좀 더 자주 오세요” 등의 멘트를 날린다면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게 된다.
문서수발은 그야말로 ‘꽃 중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내에서 어떠한 정보가 어떻게 흘러 다니는지를 파악하면 이제 ‘삼성물산맨’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할 준비는 모두 끝났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처럼 복사-팩스-문서수발-커피 심부름의 진정한 의미를 모두 파악하여 그 목적에 맞게 열심히 일했다면 1년쯤 지난 시점에 해당 신입사원은 부서는 물론, 회사 전체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해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성공의 사다리’를 걸어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왜 똑같이 명문대를 나왔고, 머리가 똑똑한데 이같은 이치를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엇갈리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긍정’과 ‘부정’의 차이 때문이다.
긍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제도이건 항상 ‘존재하게 된 이유’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수많은 선배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깔려있다. 비록 지금 자신에게는 그것이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으로 다가오더라도 수많은 선배들이 거쳐 가고도 그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확실하게 믿는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이에 반해 부정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첫인상과 선입관에 사로잡혀 ‘불평불만’과 ‘핑계거리’만을 쏟아놓게 된다. “명문대 나오면 뭘해, 날이면 날마다 복사기와 팩스기를 전전하고 있는데, 이러기 위해서 내가 그 고생을 했나”하면서 말이다. 그 중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인사부나 상위 직급 간부에게 대들다가 눈 밖에 나게되고, 그나마 그러한 용기도 없는 사람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하며 조용히 떠나가게 된다. 단 1시간만이라도 그것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을텐데….
이와같은 ‘옥석 가리기’ 과정을 통해 삼성물산은 ‘똑똑하면서도 선배를 존중하고 센스감 넘치는’ 인재들만 남는 전통을 자랑해왔다. 그러면서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똑똑한 것은 선택이지만, 선배를 존중하고 센스감 넘치는 것은 필수”라고 말이다. 산업사회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무역의 ‘사관학교’를 오랜기간 자처해온 삼성물산의 강점이 바로 여기에 숨어있다.
<이진우 인터넷 칼럼니스트>



# 연말연시 재계 빅5 인사가 주목받는 이유

재벌 2세들 “날개 달 수 있을까”

연말연시를 앞두고 재계 인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인사의 주요 평가 잣대는 역시 실적 위주가 되겠지만, 외부 환경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계 ‘빅5’ 2세들의 승진 여부가 관건이다.
우선 삼성그룹의 인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X-파일’ 사태로 조직의 안정과 유지를 선택했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올해는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재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경영 성적표로 보면 전자 계열사보다 삼성의 독립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심적으로 부담이 적을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 제일모직 제진훈 사장, 삼성엔지니어링 정연주 사장 등은 올해 뛰어난 성과를 올려 ‘인사 칼날’을 비켜갈 것으로 점쳐진다. 전자 계열사에선 삼성테크윈 이중구 사장과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 최지성 사장 등 몇몇 CEO만이 ‘안정권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아직 인사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연말연시에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 최대 변수는 ‘비자금 사건’에 따른 후속인사. 정몽구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체제 정비 및 문책 성격의 인사를 이미 큰 폭으로 단행해 이번 여진(餘震)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충격요법을 썼던 LG그룹은 이번엔 큰 폭의 문책성 인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LG필립스LCD를 비롯한 전자 계열사의 실적이 미진해 이에 따른 ‘신상필벌’은 어느 정도 예상된다.
SK그룹은 재계 ‘빅4’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는 점에서 계열사별 대규모 승진 인사가 점쳐진다. 롯데그룹은 롯데쇼핑이 ‘인사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에선 이인원 백화점부문 대표와 이철우 마트부문 대표의 문책성 인사를 점치고 있는 분위기.
현재 재계에서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삼성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승진 연차가 됐음에도 주변 여건 때문에 올 초 승진인사에서 제외됐지만 내년 인사에선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승진이 예상된다.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도 6년째 부사장 자리를 지켜 부회장 승진 시기가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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