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당 지도부가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불러들였다. 옛 한나라당, 새누리당 시절 활약했던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전략으로 비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말 이들이 ‘소방수’ 역할로 최선이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 2004년과 2011년, 자유한국당(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처리 후폭풍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당의 존립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당 지도부는 ‘천막당사’와 ‘경제민주화’라는 과감한 ‘혁신’을 시도했고 결국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런데 지금 홍 대표의 전략에는 그 어떤 혁신도 외연 확대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소방수로 등판한 이들도 과거 찬란했던 보수 정당을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다만 2004년과 2011년의 ‘혁신’에 비추어 봤을 때 2018년 홍준표식 ‘혁신’이 가벼워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 한국당의 ‘혁신’ 2004년 ‘천막당사’ 2011년 ‘경제민주화’… 2018년 ‘구관이 명관’??
- “‘리더’ 아닌 ‘보스’ 되려는 洪” 김문수 카드 ‘진짜’ 속내 따로 있나

 
자유한국당이 6.13 지방선거 ‘필승전략’으로 ‘구관이 명관 전략’을 들고 나왔다. 한국당은 지난 6일 서울시장 후보로 김문수 전 경기지사, 충남지사 후보로 이인제 전 최고위원, 경남지사 후보로는 김태호 전 최고위원을 전략 공천했다.
 
한국당은 이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걸어나갈 최적의 후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들 세 명은 이미 이전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지방자치단체장 직을 맡아본 경험이 있고 정치적으로 경험과 경륜이 풍부하다는 이유에서다. 당 지도부는 이들이 과거 보수 진영에서 활약했던 인사들이기에 잘만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판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와 맞물려 보수 지지층의 결집까지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기대도 내비친다.
 
보수 결집 이끌어 낼 카드?
중도보수 표심이 관건
 

그러나 지도부의 이 같은 기대감과는 달리 정작 정치권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인재 영입에 사활을 걸던 한국당이 이들을 기용한 것은 그만큼 당에 인물이 없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그만큼 후보들을 구하기 힘들다는 한국당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이들의 경쟁력 자체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국당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마땅한 후보가 없기 때문”이라며 “성공 여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후보들이 경쟁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충남지사 선거에 출마한 이인제 전 최고위원은 대선주자였던 1997년 대선이 벌써 21년 전 일이라는 점에서 이미 전성기가 지났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전 최고위원이 오세훈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보수층 내에서 평가가 극명히 엇갈리는 인사라는 점도 큰 변수다.

이 전 최고위원은 97년 대선 당시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게 패하자 불복하고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이후 이 전 최고위원은 국민신당을 창당, 대선에 출마해 492만여 표를 획득하며 선전했다.
 
그러나 이는 이회창 전 총리가 집권당인 신한국당 후보로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 최고위원이 보수 분열을 야기해 진보 정당 후보에 어부지리 승리를 안겨주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이에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보수 유권자들이 이 전 최고위원에 선뜻 표를 던지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이 전 최고위원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탄핵은 원천무효”라고 발언한 탓에 중도보수층의 표심을 얻기 힘들 게 된 점도 본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권순정 리얼미터(여론조사기관) 실장은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이인제 전 위원으로 핵심 지지층을 흡수할 수는 있겠지만 중도 성향의 보수층까지 모을 힘은 미약하다고 본다”며 “TK(대구경북)을 제외하고는 보통 이념성향이 4(중도):3(진보):2(보수)로 분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충남도 여기서 큰 예외는 아니다. 자유한국당 후보가 당선되려면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의 표를 가져와야 하는데 중도층까지 확산이 가능한 후보일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도보수층의 표심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이 출마를 선언한 경남에서도 결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경남은 보수세가 견고한 지역임에도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합산 20%를 득표했다. 정치권은 이 20%를 중도 보수층으로 분석한다.
 
이런 점에서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바른미래당이 경남지사 후보 물색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은 김 전 최고위원에게 큰 호재다. 이대로 민주당과 한국당 양강 구도가 형성됐을 때 중도보수층이 태생적인 거부감이 있는 민주당보다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마음으로 한국당의 손을 들어줄 공산이 더 높기 때문이다.
 
김 전 최고위원이 과거 새누리당 당시 ‘친박’으로 알려졌던 점에서 확장성이 크지 않음에도 정치권이 충남보다는 경남에서 한국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유다.
 
‘극우’ 김문수 공천,
洪의 진짜 속내는 무엇?

 
문제는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인 서울 시장 선거다. 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로 낙점된 김문수 전 지사는 ‘극우’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며 ‘태극기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석했다.
 
그 후 김 전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친박 보수층 결집을 노리기도 했다. 이는 다른 지역에 비해 중도층이 풍부한 서울시장 선거에선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한국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김문수 전 지사를 최종 낙점한 과정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악재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내내 서울시장 후보 발굴을 장담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홍정욱 전 의원, 오세훈 전 시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등이 영입 대상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출마를 거부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출마를 준비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영입 제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문수 전 지사의 출마는 마치 나간다는 사람이 없으니 너라도 나가라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에서도 자신하지 못하는 인물을 믿어줄 유권자는 사실상 없다는 관측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당의 김 전 지사 공천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유일한 돌파구로 여겨졌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에 대한 불씨마저 꺼뜨렸다는 지적이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는 ‘극우’ 인사인 김 전 지사와의 후보 단일화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2위만 기록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비록 민주당에는 패했지만 한국당을 꺾을 경우 자신들이 한국당을 대신하는 보수의 대안으로 인정받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무리한 단일화를 시도해 민주당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한국당과 같은 ‘적폐 세력’ 프레임에 가둘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쯤 되자 위기감이 고조된 한국당 내부에선 김 전 지사가 자진 사퇴하면서 묵시적인 선거연대가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 역시도 김 전 지사가 대권을 꿈꾸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총선 낙선 이후 정치적 존재감을 잃었던 김 전 지사에게 이번 서울시장 출마는 인지도 상승과 정치적 존재감 제고 등을 감안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패배한다 하더라도 30% 이상의 득표를 할 경우 김 전 지사 입장에선 이번 선거가 대권을 향한 지름길이 되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한국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서울에서는 어떤 이유라도 우리 당의 지지층이 35%는 있다”고 내다봤다.
 
인재 영입 실패는 예견된 일
“洪, 될 만한 인물 꺼려...”
 

한편 한국당의 이같은 전략에도 지방선거 판세가 오히려 더 악화되자 일각에선 홍준표 대표가 참신한 인재가 아닌 ‘구관’들을 공천한 데는 다른 속내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홍 대표가 지방선거 후 당권 장악을 위해 ‘될 만한 인물’의 영입 자체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즉 연이은 ‘인재 영입’의 실패는 홍 대표가 지방선거 이후에도 당권을 유지하고 2020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해 당 장악을 끝마친 후 2022년 대선으로 직행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탓에 자칫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거물’ 영입을 원하지 않는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리더’가 아닌 ‘보스’가 되려고 하는 홍 대표 입장에선 서울시장 후보가 강하면 강할수록, 득표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이 가진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홍 대표의 행보는 당이 처한 위기를 과감한 혁신과 외연 확대, 보수 통합 노력 등으로 타개했던 지난 2004년과 2011년과 극명히 대비된다고 정치권은 말한다. 2004년 3월 25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여의도 맞은편 천막당사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총선을 20일 앞두고 있던 때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2003년 10월 불법 대선자금 실체가 밝혀지고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 처리 후폭풍으로 당의 존립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당시 당 지지율은 8%대까지 추락했다. 그러자 당 지도부는 한나라당 간판을 내리고 천막당사로 옮겨 당 개혁을 주도했다.
 
천안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한 것도 이때였다. 공천에서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시도했다. 16대 의원 가운데 60명이 불출마 또는 공천 탈락해 40.5%의 물갈이가 이뤄졌다. 비례대표 후보는 전원 신인으로 공천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당이 위기에 몰렸을 때도 한나라당은 혁신으로 다시 살아났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당의 상징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변화를 주도했고 김종인·이종석·이상돈 당시 비대위원을 영입하며 진보 진영이 독점해 온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다도 받아들였다. 이러한 승부수들은 적중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과반인 152석을 확보한 데 이어,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을 꺾고 승리했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자유한국당에선 당시의 과감한 혁신과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특단의 변화 없이는 이번 선거에서 참패를 피하기 어렵다”며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는 온고지신이란 사자성어처럼 자신들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과거 혁신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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