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오기로 산다”…그가 다시 일어날 수 있던 이유

<사진:오두환 기자>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일상에 젖어 살다가도 문득 ‘이 사람 지금 뭐하고 살까’하면서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어린 시절 짝꿍, 옆집 누나, 아니면 동경했던 교생 선생님일 수도 있다. 일요서울이 한때 우리와 함께 호흡했으나 지금은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첫 번째는 우리의 영원한 영구이자 ‘용가리’ 아빠인 심형래 씨를 만났다. 청담동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희극인 제왕에서 테마파크까지…럭비공처럼 튀는 그의 행보
개인파산 신청 등 고된 시간 “긍정적 사고방식 있다면 실패 없다”




코미디계 대부, 레전드. 희극인 심형래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현재 30대 이상인 사람들은 빨간 내복을 입고 외계인을 쓰러뜨리던 ‘우뢰매’에 관한 추억을 품고 있을 것이다. 우뢰매를 몰라도 좋다. “영구 없다”라는 유행어 하나면 웬만큼 다 통한다.

그는 희극인으로 최정상을 달리다 돌연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1994년 ‘핑크빛 깡통’,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등의 전적이 있지만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1999년에 발표한 ‘용가리’다. 그가 출연하고 제작한 영화가 총 89편,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무려 118편이나 된다.

이후 SF ‘디 워(D-WAR)’, 코미디 ‘라스트 갓파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영화들을 제작했다. 현재 디 워는 ‘디 워Ⅱ:미스테리즈 오브 더 드래곤’이라는 가제의 후속을 준비 중이다. 7월까지 펀딩(funding·자금 제공)을 마치고 촬영에 임할 계획이다.

영화감독으로서의 행보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디 워의 경우 2007년 개봉했을 당시 해외에서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며 호응을 얻었지만 국내 반응은 냉랭했다. 심지어 “‘디 워’ 과연 한국영화의 희망인가”라는 제목으로 100분 토론까지 진행됐다.

이처럼 극과 극의 반응이 서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심형래는 “기득권층에게 ‘심형래는 안 된다’는 선입견이 너무 많았다. 첫째로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출신이 영화(감독)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고 아쉬움을 표한 뒤 “테마파크로 승부를 보려 한다”면서 새로운 포부를 드러냈다.
 
‘심시네파크’ 완공은
“내 꿈이 이뤄지는 것”
 

‘심시네파크’라는 이름으로 개장될 테마파크는 심 감독 인생의 총체다. 그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이 담길 예정이다.

심 감독은 “외국에 갔을 때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를 가보니 너무 환상적이더라. 우리나라엔 그런 게 없어서 아쉬웠다"고 설립동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내 영화는 전부 SF영화다. 용가리(1999), 디 워(2007), 드래곤 투카(1996), 영구와 땡칠이(1989). 이런 장르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만든 이유는 (테마파크에 적용할) 콘텐츠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그간의 영화 제작 배경을 밝혔다. 영화 제작이 곧 콘텐츠 생산이었다는 말이다.

자체 콘텐츠로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도전에 가깝다. 이러한 목표를 갖게 된 계기를 묻자 심 감독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고용 창출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꺼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지브리 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에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는데 그런 공간이 한국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는 것이다.

또한 “후세들에게 일자리와 놀거리를 만들어 주고 가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밝히면서 “억지로 관광객들을 유치할 게 아니라 세계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관광객을 우리나라에 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는 청룡열차 같은 것은 굳이 우리나라에 와서 탈 이유가 없으니 ‘대한민국’에서만 즐길 수 있는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상력에서 출발한
‘심형래 스타일’

 
테마파크라니, 짐작할 수도 없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가 지나온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언제나 파격적인 시도를 해 왔기 때문이다.

심 감독 역시 “나는 항상 새로운 걸 원한다”면서 지난 이야기들을 예로 들려줬다. 그는 “‘영구와 땡칠이’는 상영 전 아이들이 ‘영구야’하고 부르면 ‘영구 없다’로 시작한다. 이게 ‘관객과 대화하는 영화’로 기네스북에 최초 등재된 영화”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럴도 노래 먼저 부르고 반주가 뒤이은 특이 케이스다. 편곡을 다 해 왔는데 ‘이렇게 안 하겠다. 심형래 스타일로 하겠다’하니 거절하더라. ‘잘 부르는 사람을 원하면 일반 가수 쓰지 왜 날 쓰냐’고 반문했다. 진행해 보니 결과물이 잘돼 전국이 ‘달릴까 말까’ 이렇게 불렀다”고 회상했다.

희대의 캐릭터 영구와 펭귄은 어땠을까. 이제는 심형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시작할 땐 다들 만류했다고 한다.

그는 “영구는 옛날 ‘여로’라는 드라마에서 따온 캐릭터다. 이것을 해보겠다 하니 방송사 측에서 안 된다 하더라. 그래서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정규 편성에 앞서 1~2편을 미리 내보내 향후 고정적으로 방송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으로 진행해보자 했더니 이게 대박이 났다”고 얘기했다.

또한 “펭귄은 ‘동물의 왕국’을 보고 만든 캐릭터다. 그러자 ‘여기가 ‘TV유치원’이냐, ‘뽀뽀뽀’냐’ 하면서 (희극인) 선배들한테 욕 엄청 먹었다”고 탄생 비화를 전했다.

영구, 펭귄, 파리 캐릭터가 일상 속에서 발견됐다면 용가리 등 SF영화 속 괴수는 그의 상상 속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비행기, 탱크, 날아가는 오토바이 등을 만드는 상상을 했다. 내 소망을 영화에 접목시킨 거다”라면서 “영화란 장르가 이게 좋더라. 내가 용이 보고 싶으면 (영화에서) 용을 만들면 된다. (캐릭터들은) 전부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웃음 많아야 사회도 잘돼”
“인생 고락(苦樂)은 본인 마음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그는 2013년 개인파산 신청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고초를 딛고 슬랩스틱·콩트와 성인가요 등을 접목한 ‘심형래의 유랑극단’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시 코미디에 도전하는 이유에 관해 질문하자 “후배들을 리드해 주는 선배가 있어야 한다”고 책임감을 드러내면서 “지금 코미디가 자꾸 쇠락하고 (다들) MC 위주로 나간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어 “웃음이 많아야 사회도 잘된다”면서 코미디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그는 “나는 인생에 정해진 성공과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방식만 가지고 있다면 실패는 없다”고 말했다.

그에겐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오기’다. 심 감독은 “처음에는 별 생각 다 들었다”라고 입을 열면서 “자기 스스로 오기를 한 번 더 부리면 된다. ‘내가 어려운 환경한테 왜 져야 하나, 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끊이지 않는 열정으로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심형래. 그가 실현해 갈 ‘상상력의 세계’에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