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확인 어렵다” 일부 대학 성폭력 내용 SNS 게재 철회 방침 논란

사진=한양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캡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일부 대학교에서 성폭력 제보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 게재하지 않겠다고 밝혀 큰 논란이 예상된다. 일종의 ‘눈치 주기’ 현상이 피해자들의 미투(Me Too) 고발 운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눈치 주기’ 현상으로 피해자들 미투 고발 위축 우려
전문가 “대학 당국 자체의 성범죄 처리 시스템 점검해야”


최근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은 공지 게시글을 통해 “더 이상의 미투 관련 제보는 업로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나무숲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특정 집단 구성원들끼리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SNS 계정이다.

한양대 대나무숲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지만 대나무숲의 특성상 사실 확인이 어렵다”면서 “또 원칙적으로 특정 개인을 저격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제보는 지양하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SNS 관리자들이 몇몇 (미투) 게시글로 인해 협박과 욕을 듣고 허위 제보가 아니었음에도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는 등 많은 일들을 겪었다”고 밝혔다.
 
학생들 ‘갑론을박’
관리자 “대책 강구”

 
이 같은 글이 게재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학생들은 대나무숲이 가진 파급력과 익명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반대 의견으로는 “억울한 마녀사냥을 멈춰야 한다” “애꿎은 관리자들이 고초를 겪을 필요는 없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양대 대나무숲 측은 입장을 철회하지 않고 일반적인 대학 생활 고충과 연애 등에 관한 글만 올리고 있다.

한양대 대나무숲은 다만 “최대한 빨리 미투 제보와 관련해 다른 대책을 강구해 보도록 노력하겠다. 다른 대책이 불가피할 경우, 미투 운동 제보의 게시 또한 신중히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정 제보를 단순히 저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필터링을 하지 않는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최대한 모든 제보를 올리고 있다”면서 “무조건적인 비난과 욕설이 담긴 게시글의 경우 지기 간 회의를 통해 올릴 것인지 필터링할 것인지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투 운동
농담 소재되기도

 
지난달 23일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이곳은 사회 이슈에 대해 논쟁이 일어날 만한 글은 필터링하는 게 원칙이냐. 토론이 있을 법한 글 자체를 거의 올리지 않는 것 같다”는 문제 제기성 글이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일이 많아질수록 성폭력 피해자들이 선뜻 고발할 용기를 내기가 어려워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지기 쉬운 대학가에서 소통의 창구가 제한되면 앞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A씨는 “부정확한 정보는 공론화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대세가 되면 누가 자신 있게 나서서 미투를 하겠는가”라며 “성추행, 성희롱이 증거를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대학가에서는 미투 운동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농담의 소재가 되는 분위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달 22일 성균관대학교 대나무숲에는 한 제보자가 “제 주변에서 미투 운동을 장난식으로 언급하는 상황이 많아져 불편하다”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의 눈물을 개그화시키는 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줬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대학 당국 자체에서 성폭력에 대해 올바르게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창구를 점검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신혜정 활동가는 “대나무숲의 관리자 입장에서는 고소 등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학교 자체와 상담기관 등에서 제대로 된 성범죄 창구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익명 폭로가 이어지는 만큼 자체적 점검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내부서
성폭력 전수조사 나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가운데 국회 내부에서 성폭력 전수조사를 벌여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과연 사회에서처럼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국회의원 및 보좌진을 대상으로 성폭력 관련 전수조사를 벌였다.

이번 실태조사는 국회가 나서서 국회 내 성폭력 실상을 파악하고 법제도 개선 등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공모를 거쳐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가 조사 및 분석기관으로 선정됐다.

윤리특위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국회 특유의 폐쇄적 조직문화 영향으로 미투 고발이 어렵다는 우려에 따라 익명성을 보장한 설문조사 형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 설문 조사지를 밀봉해 회수함은 물론 각 의원실별로 회수 여부를 점검해 응답률도 높였다고 설명했다.

실태조사 결과는 이달 말경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워낙 폐쇄적인 조직 문화이면서 이해관계가 얽힌 조직 문화이기 때문. 그럼에도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진전된 결과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희 윤리특위 위원장은 “한국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미투 운동’에서 정치권이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설문조사 실시 자체로도 예방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조사를 통해 실태파악은 물론, 국회 내 성폭력 근절방안을 수립하고 건강한 성평등 문화 정착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