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 발표한 환경부…뒤에선 ‘지원금 안 주겠다’ 위협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수거 업체 선별장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일에 이어 2번째로 재활용률이 높은 ‘재활용 선진국’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쓰레기 대란’과 비닐이 적체돼 있는 재활용업체 현장은 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문제의 발단은 무단투기 쓰레기와 중국의 폐자재 수입제한 조치, 높아진 폐기물 처리 비용 등이 있다. 정부가 오래전부터 문제를 인식하고도 9개월째 방치해 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쓰레기 수거를 둘러싼 대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닐류에 가방·노끈·고무장갑 수두룩…갈 곳 잃고 적체
-재활용품 선별장 직접 가보니…말로만 ‘재활용 선진국’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3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비닐, 플라스틱 수거 업체 선별장.

간밤 영등포구, 강북구 등지를 맴돌던 1t 수거 트럭이 들어오자 김찬옥 보은수지 대표가 계량기에 숫자를 기재하며 한 말이다.

이날 수거한 재활용 쓰레기는 모두 100~120t. 굴착기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쓰레기를 올리면 직원들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손으로 건져 낸다.

이들은 불순물이 적게 묻은 비닐을 골라 압축 기계에 넣은 후 환경부 산하 소속 한국자원순환 유통지원센터(이하 ‘유통지원센터’)에 등록돼 있는 재활용 업체로 보낸다.

이 회수선별업체는 보낸 양만큼 유통지원센터에게서 지원금을 받는다.
 

재활용품 중
60%가 ‘쓰레기’

 

수도권에 위치한 49개 회수선별업체 중 48개 업체는 지난 1일부터 비닐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지난 3일에는 약 3m 이상의 비닐이 쌓여 있었다.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무의식적으로 혹은 몰래 내놨기 때문.

김 대표는 “시민들의 반발이 심해 반 정도는 그냥 가져왔다. 그래도 이 정도다”라고 말했다.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분류하는 작업장에선 악취가 풍겼다. 비닐, 페트병, 스티로폼에 남아있는 이물질이 썩으면서 나는 냄새다.

이렇게 불순물이 묻었거나 훼손된 폐비닐, 페트병 등은 쓰레기로 분류돼 처리된다.

분리수거수집운반 업체를 운영하는 양동임 남매자원 대표는 “비닐봉지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나온 경우도 있었고 가방, 기저귀 등은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가방이 분리수거 된 비닐 속에 들어있다

보은수지에서 한 달 동안 처리되는 비닐 250~300t 중에서 실제 깨끗한 비닐로 분류되는 건 40% 정도에 불과하다.

잔재 폐기물로 분류된 나머지는 소각장이나 폐기물 고형연료 제품을 만드는 업체에 폐기물 처리 비용을 내고 처분한다.

폐기물 고형연료 제품은 쓰레기 중 탈 수 있는 것들을 선별·가공해 석탄을 대체할 수 있는 연료로 만든 제품을 말한다.

양 대표에 따르면 비닐 쓰레기가 담긴 봉투는 이물질이 묻은 비닐이 하나만 있더라도 모두 폐기된다.

보은수지는 kg당 약 30~120원의 처분 비용을 지불하고 일반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플라스틱·유리 병도 문제
‘대란’ 불씨 퍼질 수 있어

 

최근 수도권 재활용품 업체들이 폐비닐 수거를 거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폐기물 처리비용은 느는데 폐자재 가격은 국제유가 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폐자재 수입중단까지 보태져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분류된 폐비닐을 받는 재활용 업체도 수거를 꺼리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활용업체 대표는 “이물질 때문에 제품 자체가 좋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생산자책임재활용(EPR)은 많지만 제조 과정은 힘들고 만들어 봐야 나갈 곳이 없다”며 “더욱이 중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판매가 안 되는 실정이라 물건들이 정체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재활용 업체는 회수선별업체와 달리 쿼터제도가 존재한다. 재활용 업체는 유통지원센터와 한 달에 계약한 양만 채우면 그에 대한 지원금을 받고 쿼터가 끝나면 물건을 받지 않는다.

이에 물건을 내보내지 않으면 유통지원센터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회수선별업체는 답답한 심정이다.

김 대표는 “재활용 업체 쿼터가 끝나면 물건이 적체돼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최근엔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안 가져간다”고 호소했다.

 
압축된 플라스틱

빈 병류 가격도 하락세다. 병 값은 지난해 3월 5~10원으로 내렸으며 녹색 병은 1월부터 무상으로 하락했다. 그나마 돈이 됐던 소주, 맥주병은 보증금이 생긴 후 재활용으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 밖에 폐지는 지난해 수도권에서 ㎏당 130원에 거래되던 가격이 현재 90원선으로 곤두박질쳤다. 페트병도 지난해 ㎏당 330에서 250원으로 내렸다.

이에 일각에선 조만간 비닐뿐만 아니라 모든 분리 수거물을 받는 곳이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폐유리 재활용 업체를 운영하는 김찬임 안일자원 대표는 “최근 해외 맥주 수입으로 녹색 병이 증가했다. 병값은 물론 폐지 등은 거의 무상이라 보면 된다”며 “우리는 비영리가 아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 사업자인데 남는 돈이 없다. 곧 모든 분리수거물을 거부할 날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9개월째
수수방관

 

환경부는 지난 2일 “비닐 수거 거부를 통보한 48개 재활용업체와 다시 수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대표에 따르면 48개 업체는 환경부에 제시한 ‘EPR 필름류 반입 기준’에 부합할 시 수거하겠다고 했을 뿐 ‘정상 수거’ 합의는 하지 않았다.

‘EPR 필름류 반입 기준’은 이물질이 묻어있지 않는 경우와 비닐 이외의 것들과 함께 붙어있지 않는 경우, 비닐로 이뤄진 끈이 없을 경우 등이다.

특히 유통지원센터는 환경부의 발표 이후 같은 날 회수선별회원사에게 ‘아파트 필름류 수거중지 관련 회수선별회원사 협조문’이란 명칭의 긴급 공문을 보냈다.

기자가 입수한 긴급 공문에 따르면 유통지원센터는 회수선별업체가 페트병, 단일 재질, 필름류 등 3가지를 함께 수거·선별할 경우에만 회수선별비를 지원한다. 즉 비닐을 걷지 않으면 지원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정부가 예고된 쓰레기 대란을 손 놓고 있다 화를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환경오염을 이유로 폐플라스틱과 분류하지 않은 폐지 등 24종의 수입 중단 조치를 예고했으며 같은 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바 있다.

이에 정부가 오래 전 대처할 수 있었던 문제임에도 방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무능함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환경부가 발표한 대책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담기지 않아 논란은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소각시설에서 쓰레기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은 현실성이 없는 것은 물론 구체적인 보조금 수준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

전문가들은 재활용 쓰레기가 국내에서 순환 이용되는 체계를 정부가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중국의 수입금지도 문제지만 정부가 규제정책을 바꾸면서 고형연료 제조·사용 시설로 폐비닐류가 들어가지 못하면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다”며 “폐비닐의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재활용체계에서 폐비닐만 수거해 처리하게 해준다면 관련 민간업체의 부담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현재 10%밖에 되지 않는 물질 재활용 비율을 높여가고 붕괴된 고형연료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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