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노조 조합원들 7년째 인사 불이익 당해”

전국금속노조 KEC지회와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는 지난 2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EC 여성근로자에 대한 승진·승격 성차별 실태를 고발했다.<사진=KEC지회>
[일요서울 | 고은별 기자]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반도체 전문기업 KEC가 복수 노조 간 승진 차별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KEC엔 현재 3개의 복수 노조가 있다. 1노조로 분류되는 전국금속노조 KEC지회는 수년간 승진·승격에서 차별을 받아 왔다며 최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지회에 따르면 이 같은 차별은 2012년부터 무려 7년째 자행되고 있다. 또 KEC 소속 여성노동자들은 승격을 비롯, 직급에서 심각한 성차별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금속노조 KEC지회 “승진·승격 차별” 지노위에 구제 신청
여성은 관리직도 못 한다?…성차별 논란에 社 “사실무근”


전국금속노조 소속 KEC지회(이하 지회)는 1988년 설립된 산별노조다. 조합원 수는 113명이며 설립시기순에 따라 KEC의 1노조로 분류된다. KEC에는 2011년 설립된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KEC노조(조합원 270여명, 2노조)와 소수노조인 3노조(조합원 10여명) 등 총 3개의 복수노조가 존재한다.

앞서 지회는 지난달 30일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지회는 기업노조인 2노조 설립 후 현재까지 누적된 승진·승격차별을 자체 확인한 후 지난 2월 구미고용노동지청에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진척이 없어 지노위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회 관계자는 “분명 승진할 수 있는 경우인데도 그간 지회 소속 조합원은 차별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며 “필요한 데이터를 취합한 뒤 구제신청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2노조 중심 승진·승격?

KEC는 근로자의 등급을 ‘J-S-M-L’로 구분하고, 직책을 사원-대리-매니저로 분류하고 있다. 매년 1월 1일 등급을 상향조정하는 ‘승격’과 직책을 상향조정하는 ‘승진’을 시행 중이다. 지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7년째 KEC는 매년 2노조 조합원들만 차별적으로 승진·승격시켰다.

 
전국금속노조 KEC지회가 지난 2일 노무법인 참터 구미지사를 통해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이유서
   대리인인 노무법인 참터를 통해 지난 2일 지회가 지노위에 제출한 이유서를 보면, 7년 동안 J1~S5 등급 중 승진·승격된 자는 287명이다. 그중 281명(중복 포함)이 2노조 조합원이고 그 비율은 전체 승진·승격 인원의 97.9%에 해당한다. 나머지 6명 중 5명은 지회 조합원, 1명은 3노조 소속이다. 조합원 수 대비 2노조는 106%가, 지회는 1.7%의 조합원이 승진·승격했다.

지회는 또 ‘2010년 이후 입사자 중 각 노조별 승진·승격 내역’을 공개하며 신규입사자 중 승진대상자 171명 전원이 2노조 조합원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2010년 이후 입사한 남성근로자 65명 중 유일하게 승진·승격이 안 된 4명 전원은 지회 소속 또는 지회 가입 전력이 있는 자라고 했다. 대리인 측은 “이 기간 동안 신규 입사한 남성근로자 65명 중 61명이 승진·승격됐다”며 “이 61명 전원이 2노조 조합원”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2노조에서 지회로 옮겨 가입한 조합원들의 인사고과가 이후 현저히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회 측이 제시한 ‘2노조에서 1노조로 소속을 변경한 조합원의 고과 및 승진·승격 내역’을 보면 1노조인 지회로 소속을 변경한 조합원들이 그 후 고과에서 ‘C’ 등급을 받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대리인 측은 “KEC는 등급별로 호봉테이블이 달라 승진·승격이 되지 않을 경우 기본급과 직책수당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며 “그 결과 통상임금에도 영향을 미쳐 그에 연동되는 가산수당, 상여금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KEC 소속 여성근로자들은 승격을 비롯해 직급에서 성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남녀 임금격차로도 이어지는 문제다.

지회를 포함한 여성·시민단체는 지난 2월 기자회견을 열고 “KEC는 40년 넘게 승격 등 직급에서 심각한 성차별을 지속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이들은 “공고를 졸업한 여성이 KEC에 입사하면 J1, 남성은 J2로 시작한다”며 “지회 조합원 중 올해로 30년을 일한 여사원이 있는데 J3다. 그러나 입사한 지 7년 만에 남사원은 S4로 승격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J등급으로 입사한 남성은 S등급을 넘어 M등급으로까지 승진이 가능하지만, S등급조차 넘기 힘든 여성에게 M등급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

지회에서 공개한 ‘제조2부 Test과 남녀 직급 비교’ 자료를 보면 입사 후 부여받은 J1 등급 여성근로자 2명은 근속연수가 15~16년 차임에도 승격에서 재차 누락되고, 동일한 업무를 하던 남성근로자 3명은 근속연수가 8년 차인데도 2013~2015년 사이 J3로 승격됐다.

또 올해 1월 기준 ‘KEC 전체 직급별 남녀 인원’ 통계에서도 여성근로자들은 J등급에 치중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간등급인 M등급의 경우 여성은 6명, 남성은 95명이 존재한다. 관리자급인 L등급의 여성은 1명뿐이지만 남성은 102명에 달한다. 임원은 100%(24명) 남성으로 구성돼 있다. KEC 여성근로자들은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조 와해 정황 포착

지회를 중심으로 KEC 여성근로자들이 불만을 제기한 승진·승격차별 문제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임금단체협약 교섭이 결렬된 뒤 지회가 파업에 돌입하자 회사는 곧바로 직장폐쇄를 했다. 또 당시 여성기숙사에 용역을 투입해 마찰을 빚기도 했다.

문제는 금속노조의 고발로 고용노동부가 2011년 말 KEC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지회 집행부를 퇴진시키고 친(親)기업 성향의 노조 설립을 구상한 정황이 담긴 ‘노조대응전략’, ‘직장폐쇄 대응방안’, ‘인력구조조정로드맵’ 등 노조파괴 문건이 발견된 것. 문건에는 KEC가 새 노조 집행부 구성에 필요한 예산으로 보상금 및 활동비 7억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KEC는 당시 파업에 참여한 지회 조합원 전원을 정리해고했으나, 2012년 대법원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확정 판결하면서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회는 KEC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 당시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회 관계자는 “경영진의 마인드가 문제”라며 “하물며 간단한 청소조차도 여성근로자에게만 시키는 분위기가 여전하다”고 꼬집었다.

대리인 측은 “이번 KEC의 사건은 합리적 이유 없이 노조 소속을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된다”고 밝히며 “7년 동안의 승진·승격 결과를 노조별로 비교한 결과 각 노조 조합원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가 있고 그 격차는 2노조에 비해 1노조에 현저히 불리함이 확인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지회는 지노위를 상대로 “2010년부터 현재까지 KEC에서 어떤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졌는지 엄정하게 심판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지회 측 주장에 대해 KEC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KEC 관계자는 “노조 간에 승진·승격을 차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고과에 따라 정당하게 인사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친 기업 성향의 노조 설립을 회사가 주도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여성근로자 대부분이 단순 작업자이고 고과나 근로 특성상 승격 기회가 적었을 뿐 성차별 의혹도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KEC는 여러 의혹을 소명하기 위해 반박자료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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