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특정 어려워…채용취소자 반발도 극심

강원랜드 행정동 전경<사진=뉴시스>
[일요서울 | 고은별 기자] 대한민국이 채용비리로 어둡게 물들고 있다. 지난해 말 감사원의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을 시작으로 금융감독원, 가스안전공사, 건설관리공사, 강원랜드 등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채용비리 사실이 밝혀진 것. 수사여파는 지방 공기업·공공기관과 시중은행들로 확대돼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사례로 이어졌다. 최근엔 채용비리로 억울하게 탈락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및 후속조치가 진행되고 있으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비리 과정상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채용비리에 연루된 부정합격자마저 퇴출 결정에 불복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채용비리 첫 구제’ 가스안전공사, 피해자 8명 구제키로
대규모 비리사태 강원랜드, 구제 착수했지만…한계 봉착


채용비리 피해자에 대한 구제 조치는 한국가스안전공사에서 처음 실시됐다. 앞서 가스안전공사는 2015~2016년 박기동 전 사장 재임 당시 사원 공채 최종면접에서 점수와 순위 등을 조작해 합격 순위 내 있던 응시자들을 탈락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대체로 여성 응시자였으며 군면제자, 거주지가 먼 응시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3일 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공사는 부정채용으로 탈락한 12명(2015년 4명, 2016년 8명) 중 이미 취업을 해 입사를 포기한 4명 제외, 나머지 8명 전원을 구제하기로 했다. 대상자 8명은 남성 4명·여성 4명이다. 이들은 올 7월부터 인턴교육을 받은 뒤 9월부터 정규직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가스안전공사는 또 채용비리에 연루된 자를 해임 또는 직권 면직 조치했다.

불특정 피해자만 800여명?

아울러 올 초 불거진 강원랜드 채용비리로 인한 피해자 구제도 진행된다.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당국은 강원랜드 채용비리로 인해 특정된 피해자 4명을 오는 13일까지 우선 채용토록 하고 특정되지 않는 피해자 그룹(796명)에 대해선 별도의 응시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5월 말까지 구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강원랜드 정원, 부정합격자 퇴출 상황 등을 고려해 최대 220여 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특정된 피해자 4명은 2013년 하이원 교육생 선발 시 청탁 없이 본인 실력으로 정상 합격했으나 부정합격자 때문에 탈락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적발된 당시 채용비리는 서류전형, 인·적성평가, 면접전형 등 모든 전형에서 점수 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나 정확한 채용비리 피해자를 규정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면접전형이 부정합격자에게 합격 점수를 주고 다른 면접 응시자에게는 불합격 점수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면접탈락자의 순위를 피해자 구제기준으로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이러한 점을 고려해 불이익을 받은 불특정 응시자들에게 별도의 기회를 부여, 5월 말까지 구제를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최종면접 과정에서 합격자가 뒤바뀐 가스안전공사 채용비리 사례의 경우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지만, 강원랜드의 대규모 채용비리 사건은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워 실질적인 구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채용비리가 벌어진 시기가 5년여 전인 만큼 불특정 피해자들의 거취가 제각각일 수 있어 당시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보상 받기란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채용취소자 “퇴출, 억울하다”

앞서 강원랜드는 지난달 27일, 28일, 30일 총 3회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점수 조작으로 부정 합격한 전원에게 소명진술 기회를 부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채용비리 연루자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강원랜드는 인사위원회 마지막 날인 30일 심사 대상자 226명 중 209명을 채용취소하기로 했다. 이중 육아휴직 4명과 의원면직 7명을 제외한 198명에게 채용취소 통보를 했다.

하지만 퇴출 통보를 받은 직원 및 가족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퇴출 직원들로 구성된 강원랜드 채용취소자 연대(가칭)는 지난 2일부터 강원랜드 행정동 앞에서 집회를 열어 회사 측에 항의하고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지난 2월 5일 회사 측의 어떠한 설명도 없이 그저 공소장에 명시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배제가 됐고 3월 말에 직권면직을 채용취소라는 미명하에 일방적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또 “강원랜드는 우리의 청탁이 있었다면 그 증거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증거가 없는 한 우리의 면직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강원랜드 채용취소 직원들과 지역사회는 채용과정에서 비리 혐의가 확인된 직원의 퇴출은 당연하나, 이 또한 소명의 기회가 충분해야 하며 일방적 퇴출이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앞서 산업부는 “점수 조작 부정합격자에 대한 퇴출조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강원랜드 자체 규정,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라는 법률전문가의 자문에 따라 시행한 처분”이라고 밝혔다. 강원랜드 채용취소자들이 퇴출 결정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할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고된다.

채용비리 후속대책 강화

지난해 말까지 정부가 관계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275개 공공기관, 659개 지방공공기관, 256개 기타공직유관단체의 과거 5년간 채용 전반에 대해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전체 1190개 기관·단체 중 946개 기관·단체에서 채용비리와 관련한 4788건의 지적사항이 적발됐다. 이중 공공기관은 2311건, 지방공공기관은 1488건, 기타공직유관단체는 989건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부정청탁·지시 및 서류 조작 등 채용비리 혐의가 짙은 83건을 수사 의뢰했으며, 채용비리 개연성이 있는 과실 255건에 대해서도 징계·문책을 지시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후속대책으로 비리 연루자 등 부정합격자를 엄중 제재토록 할 방침이다. 검찰에 기소된 임직원과 채용비리에 연루된 공공기관장은 즉시 해임하고, 금품수수가 결부돼 유죄판결이 확정된 임원은 인적사항 대외 공개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부정합격자는 업무배제 후 내부 징계위원회를 거쳐 퇴출토록 할 계획이다.

피해 구제와 관련해선 특정할 수 있는 피해자를 원칙적으로 구제하되 사안별로 피해자 특정성·구체성 등을 공공기관이 판단해 구제 조치를 취할 예정. 가스안전공사와 강원랜드를 시작으로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잇따라 채용비리 피해자에 대한 구제 절차를 실행할 전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