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산다는 것에 어떠한 의미를 두고 있는가. ‘나’라는 개인은 이 시대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이 시대에 무언가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요서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다채로운 일상들을 그려낼 예정이다. 첫 인물은 한국재즈를 연구하는 대중음악평론가 박성건 씨다. <편집자주>
 
<사진제공: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재즈’하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세련된 라운지 바? 혹은 핀 조명 아래서 깊은 목소리로 스캣(scat·재즈에서 목소리로 가사 없이 연주하듯 음을 내는 창법) 하는 가수? 

또렷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재즈라는 어감과 재즈음악이 주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재즈 마니아들은 이 ‘설명할 수 없음’에 반한 이들이다. ‘한국재즈100년사’의 작가 박성건도 그렇다.

 
“재즈연구 시작한 이유? 없다. 재즈가 좋아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

재즈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재즈 불모지 한국에서, 그 중에서도 더욱 비주류로 취급받는 한국재즈를 연구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어떻게 한국재즈사(史)를 쓰게 됐을까. 음악이 흐르는 시청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재즈에 대해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가요, 팝, 헤비메탈 듣다가 마지막에 가는 곳이 클래식이나 재즈 음반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재즈로 가게 됐다.
 
-왜 하필 ‘한국’ 재즈인가.
▲보통 재즈는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부터 시작하지 않나. 외국재즈만 몇 년 동안 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재즈 좀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보려 하니 가이드가 없더라.

내가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말하니 (다들) “어떻게 하려 그러냐”고 그랬다. (이런 건) 아무도 할 수 없고, 자료도 없을 거라고 말해주더라.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까 ‘아, 이거 하면 되겠다’ 싶었다.
 
-도전정신이 생긴 건가.
▲그런 거 있지 않나. 원래 이쪽 일(음악연구)을 완전히 할 생각도 없었고, 아예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했다. 그 때는 IT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음악을) 업(業)으로 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내가 음악가도 아니고.

고민하다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고,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걸 한 번 파면 뭐가 되겠다(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하면 아무 가치가 없다. 콘텐츠가 정말 어렵게 구해져야 가치와 의미가 있고 오래 간다. 그래서 그걸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재즈 연구해서 돈이 되나.
▲돈 생각은 안했다. (처음 할 때) ‘일단 해보자, 2년 정도 해보고 그 때가서 생각하자’했다. 연구하면서 쉽지 않았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했다.
 
-재즈에 빠지게 된 계기는.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재즈는 마니아가 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다.

음악 좋아해서 막판까지 가면 기본적인 어떤 패턴, 클래식, 팝, 가요 같은 것들은 너무나 쉽다. 색다른 걸 원하는 경우에 재즈의 텐션(Tension·긴장을 뜻하지만 재즈에서는 온음계적 코드 스케일에서 벗어난 독특한 음)을 듣게 된다. 콘트라베이스, 트럼펫도 일반 음악에선 없다. 이런 특이한 것들(이 재즈엔 있다). 

콘트라베이스의 어쿠스틱(Acoustic·음향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소리)한 소리가 너무 좋았다. 현대 대중음악에서는 다 전자 베이스 기타를 치는데 재즈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참 좋더라. 그렇게 듣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다가 음반 모으고 생활의 일부가 된다. 이유라는 것도 없고 그게 좋아서 자연스럽게. 그 때가 1998년쯤이었던 것 같다.
 
-아티스트 중 누구를 좋아하나.
▲레이 브라운(Ray Brown)의 당차고 힘찬 연주를 좋아한다. 마일즈 데이비스도 밤에 들으면 참 좋다. 누구 한 명 ‘좋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명연주와 명음반이 많다.
 
-코리아재즈밴드는 어떻게 발굴하게 됐나.
▲홍난파 가옥에 사진이 몇 개 있다. 이게 무슨 사진일까를 생각해봤다. 검색을 해보다가 김경옥이 쓴 ‘한국근대풍운사’라는 책을 봤는데 백명곤과 홍난파가 나왔다.

백명곤이 한국 최초의 축구팀 감독이었다. (그가) 축구대표팀을 꾸려 중국에서 참여하고 다녀오는 길에 색소폰이랑 (악기를) 다 사들고 오는 길에 홍난파에게 연락을 해서 연주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연주자) 명단이 나오더라. 그 명단을 우연히 사진하고 비교해보니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래서 사진의 의미를 알게 됐다. 최초로 찾게 된 거다.

한 번 더 검증을 하려고 나운영 선생이 올린 소장 자료를 봤다. 나운영 선생이 홍난파를 인터뷰 한 게 있다. 거기에도 똑같은 사진이 있는데 명단이 나온다. 정확하게 일치하더라. 검증이 된 거다. (재즈연주가 드러난) 최초의 사진은 1926년 3월 2일 YMCA다(라는 게).
 
-홍난파는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것과 그의 업적을 분리해야 할까.
▲음악적 업적과 친일 행적은 분리할 필요가 있다. 외국 재즈 (연주자들도) 다 마약하고 (연주)한 거다. 제정신으로 한 거 하나 없다. 외국은 (인간성과 업적을) 분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도 외국 팝·재즈 다 들을 수 있는 거다. 보관도 잘 되어 있다.

우리는 ‘이 사람 친일이다’하면 모든 행적을 다 없애 버린다. 역사에서 지우고, 파기시키고, 불태워 버린다. 우리 조상이 친일을 했다면 (했다는 사실) 그 자체라도 기록을 남겨놔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 음악이 아닌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작품은 작품대로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한국 재즈만의 특징은.
▲재즈는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음악이다. (유입)과정 속에서 우리 민요, 유행가, 팝 같은 것이 섞인 복합적인 게 한국재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뽕끼’가 블루스(Blues·17세기부터 미국으로 끌려와 남부지방에서 노동하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아프리카 음악 전통을 유럽의 음악과 접목해 탄생시킨 음악장르)음계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블루스를 좋아하려면 깊은 슬픔이 있어야 한다. 우리도 외세의 침략 등 어려웠던 상황을 겪어 슬픔이 존재한다. 음악은 감정의 산물이기 때문에 감정은 어떻게든 전달된다.
 
-한국재즈를 몇곡 추천 한다면.
▲첫 번째는 김상희의 앨범 ‘Sings I Don't Know Why’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My way’가 실렸다. 듣고 있으면 ‘재즈가 이렇게 아름답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재즈를 모르는 사람도 다 감동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최희준·현미의 ‘Top Hit’다. 이봉조 악단이 (곡을) 연주했다. 최희준의 곡으로는 ‘맨발의 청춘’을, 현미의 곡은 ‘총각김치’를 특히 추천한다. ‘총각김치’는 월남전 때 이 노래 들으면서 김치생각을 했다 하더라. 또 너무 야하다고 당시 금지곡이 되기도 했었다.

세 번째는 김상국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다. 김상국이 루이 암스트롱을 똑같이 따라 한다. 심지어 웃음소리조차 똑같다. 또 이 앨범에 영국밴드 애니멀스(animals)가 부른 ‘house of the rising sun’이 최초 수록됐다(앨범에는 ‘해돋는 집’이란 제목으로 실림). 가사 내용 때문에 바로 금지곡이 되긴 하지만...
 
네 번째는 이생강과 신관웅이 함께한 ‘희망가’다. 대금(이생강)과 재즈(신관웅)가 만나 우리나라 국악과 재즈가 어우러졌다.
 
다섯 번째는 이정식의 ‘화두’라는 음반이다. 케니 지(Kenny G) 스타일의 감미로운 음반이다. 우리나라 민요를 재즈와 접목해 연주했다.

음악 이야기로 긴 시간을 메웠지만, 음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아쉬움이 더욱 짙게 남았다. 박 대중음악평론과와의 인터뷰를 통해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시도했고, 도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에서 이뤄진 재즈 관련한 기록들이 “신기하고 재밌다”고 소감을 전하자 박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번에 ‘한국 재즈음반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추천곡도 다 여기에 있던 것들이니 한 번 읽어보라”고 말했다.

봄을 맞아 하나둘씩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이번 봄, 재즈를 들으면서 마음에도 꽃 한 송이 피워보심이 어떨는지.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