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不死鳥)는 영원히 죽지 않는 신화 속 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다시 부활하는 새이다. 이집트 나일강가의 헬리오폴리스라는 도시의 신관(神官)들은 500년마다 다시 찾아오는 불사조를 위해 제단에 나무와 향으로 불을 피워 놓았다.
 
동방에 살다 수명을 다한 불사조는 이 제단을 다시 찾아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는데, 다음 날 재 속에서 불사조가 다시 살아 나온다. 부활조(復活鳥)라는 말이 더 적절해 보인다.
 
우리나라에도 불사조로 불리는 정치인이 있다. 이인제 전 국회의원이다. 여러 정당과 여야를 넘나들며 기적 같은 부활을 선보이다가 지난 20대 총선에서 자신이 터줏대감이었던 논산·금산·계룡선거구에서 낙선하며 정계를 물러나는 듯 보였다. 다만 낙선 당시에도 1038표 차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치권 원로 정도로 물러앉았을 것으로 생각한 이인제 전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충남도지사 후보로 다시 등장했다. 그러고는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판단에 따라 별다른 절차 없이 후보로 확정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지리멸렬했던 자유한국당을 대선에서 살려 놓았다. 아마 이인제 전 의원에게도 별명에 어울리는 역할을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불사조를 위해 제단에 불을 피워놓았던 신관처럼, 이 전 의원에게 불을 지펴준 자들이 있다. 사실 충남도지사 선거전의 불은 더불어민주당에서 먼저 지폈다. 사퇴한 박수현 예비후보를 비롯해, 양승조 의원과 복기왕 전 아산시장이 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하며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모든 선거전의 최종결론은 같은 당 후보들 간 공천 경쟁이 아니라, 타당 후보와 선거에서의 가상대결이다. 여론은 여당인 민주당 후보들이 야당의 후보들을 맞이하여 얼마나 득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야당의 뚜렷한 후보가 없었다. 언론은 뚜렷한 인물이 없으면 상징적인 인물을 가상대결의 후보로 상정하곤 한다.
 
경력이나 인지도 측면에서도 야당의 충남도지사 후보로 이인제 전 의원을 능가할 인물은 없었다. 이 전 의원 측에서도 출마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여론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자 출마를 고민하는 쪽으로 발언의 내용이 바뀌었다.
 
결국 불사조 부활제단에 숯불을 피워준 신관들은 지금의 언론이라고 볼 수 있다.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홍준표 당대표의 생각과 마땅한 다른 인물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치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하마평은 적당한 명분들 중 하나다.
 
고대 신관은 예언과 신탁(神託)으로 정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역할은 조언자에 불과했고 권력의 발휘는 결국 왕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예언자 역할을 자처하는 여론과 별개로 당선은 결국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충청지역은 여론조사가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지역적 편견일 수도 있으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라 한다. 최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미투 운동의 진원지도 충청남도였다. 관망적인 충청권 중도보수층의 속내를 밝혀내기가 어렵다. 이 전 의원의 지지도가 낮게나마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바람대로 보수층이 숨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유권자들의 의견 반영이 없는 일방적인 공천에 대해 반발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이러한 표심의 향방은 가늠해 내기 매우 어렵다. 보수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일방향적 정치의 모순에 대해 이미 학습했다. 침묵하는 유권자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불은 제단의 신관들이 지필 수 있지만, 부활시키는 것은 오직 유권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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