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사회적 죽음 막아 달라”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6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복지대책 마련을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어머니인 A씨가 빈곤 문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난 2014년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등 반복되고 있는 죽음을 막아 달라는 취지다.

A씨, 남편 사별 후 어머니 숨져···경찰에 사기 혐의로 피소돼
시민단체 “땜질 처방 그만”···복지부, 후속 대책 추진


최근 충북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배기 딸과 4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 A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경찰에 사기 혐의로 피소되면서 신변을 비관한 것과 채무와 빈곤 생활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방안에서 수면제가 다량 발견됨에 따라 A씨가 평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A씨는 침대 옆 바닥에 누운 상태로, 딸은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운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목과 가슴, 배 부위 등 6곳에 흉기로 자해를 시도한 ‘주저흔’이 발견됐다. 침대 위에는 흉기와 수면제 1통, 극약이 함께 발견됐다.

수면제는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없다. 이 때문에 A씨가 평소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은 A씨가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약물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1차 소견 결과를 통보했다.

A씨가 남긴 유서에는 “남편이 그립고, 아이도 내가 데리고 가겠다. 동생을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에 나선 경찰은 부패 상태를 고려했을 때 모녀가 3개월 전에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의 죽음은 아파트 관리비가 수개월째 연체된 점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1월 중고차 판매 사기 등 혐의로 괴산경찰서에 두 차례 피소된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에 출석하지 않아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A씨의 남편 B씨는 지난해 9월 19일(변사사건 내사종결 10월 17일) 증평의 한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B씨도 “미안하다. 생활이 어렵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에 거주하던 A씨의 친정 어머니도 A씨의 집에서 몇 개월 생활하다 남편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숨지면서 A씨가 심각한 우울감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차 사기 사건에 A씨가 연루된 것은 남편 소유의 차량을 중고차 업체에 처분하는 과정에서 캐피탈 업체 압류 사실을 모르고 매매했던 것이 원인으로 전해진다.

증평군이 A씨의 부채 등을 조사한 결과 은행 여러 곳에서 1억5000만 원 상당의 빚을 진 것으로 확인됐다.

증평군 관계자는 “A씨는 아파트 임대보증금 등이 재산으로 잡혀 사회복지 대상자로 선정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며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체납이 없었기 때문에 복지지원 대상자로도 분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의 아파트 우편함 등에 카드‧대부업체 등의 채무 변제 독촉 고지‧청구서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A씨가 채무와 생활, 남편‧어머니의 잇따른 죽음에 정신적 고통 등으로 고민하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증평 모녀 사망 사건으로 홍성열 충북 증평군수는 사과의 입장을 표명했다. 홍 군수는 지난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 “저의 양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을 때처럼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고 썼다.

그는 “아파트 공간을 촘촘히 살피지 못했고, 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되지 않았다”며 “복지 안전망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상을 발견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유관기관, 아파트 관리사무소 협조로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며 “인기척이 없거나 장기간 우편물이 방치된 가정이 있으면 주의 깊게 살펴보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근본적 대책을 주문하며 “공적지원체계의 진입장벽을 낮추라”고 촉구했다.

기본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빈곤사회연대 등 4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땜질식 처방이 아닌 장기적 대안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의 죽음 이후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조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같은 직접 발굴 프로그램들도 개발됐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사회적 죽음을 막지 못했다”라며 “대상자들을 발굴해도 대부분 복지제도의 까다로운 선정기준 앞에 뒤돌아서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에서는 증평 모녀의 자산과 부채 내역을 근거로 생활고가 아닌 처지를 비관한 죽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는 공적 지원체계가 경직된 만큼 공공부조 수급자가 될 자격, 즉 ‘진짜’ 가난에 대한 인식 수준 또한 경직돼 있음을 시사한다”라며 “가계부채가 최고점에 달한 현재, 자산 내역만으로는 그들의 실제 생활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빈곤 양상에 맞는 유연한 공적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죽음을 멈출 유일한 방법”이라며 “일시적 전수조사와 발굴체계 개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빈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통한 중장기적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위기가구 범위 확대에 나섰다. 이번 사건처럼 가구주 사망으로 소득이 없는 가구까지 발굴하겠다는 것.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9일 “이번 모녀 사건은 복지부와 관계기관 등에서 생활실태를 미리 파악했더라면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라며 이 같은 방안을 발표했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 위기가구 발굴 대상을 기존 ‘저소득 생계곤란 가구’를 포함해 가구주 사망 및 주소득자 소득상실로 ‘급격히 생활여건이 악화된 가구’로 확대한다.

박 장관은 “현재 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및 전달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고 복지 사각지대 개념을 저소득 취약가구 뿐만 아니라 급격히 생활이 어려워진 가구까지 확대해 가구주가 사망한 유가족 등 위기가구에 대해서는 선제적으로 복지지원이 찾아갈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자체 및 지역사회의 복지담당 공무원,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마을 이장, 아파트 통․반장 등께도 이웃에 취약가구 또는 위기가구 징후가 보이는 경우 가까운 주민센터나 보건복지부에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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