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구 청년주택 예정지…주민·서울시 갈등 조정 난항

청년임대주택 용지(왼쪽)와 반대 주민 아파트(오른쪽)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서울시가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영등포 인근 주민의 반발에 부딪혔다. ‘5평형 빈민아파트가 신축되면 아파트 가격 폭락’, ‘독신 청년 많이 오면 슬럼화’ 등이 신설 반대 이유다. 청년 주택 신규 사업지가 확정될 때마다 주민의 반발은 매번 반복되는 모양새를 보인다. 이 같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생존원리가 심화되면 결국 모두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일요서울은 최근 청년 주택 신설을 두고 주민 반발이 거센 영등포구 당산동 일대를 찾아가 봤다.


-‘청년 주거 빈곤’, 1인 청년가구의 또 다른 얼굴
-‘각자도생’에 내몰린 청년층…해당 정책 정확히 인식해야



기자는 서울 영등포구청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을 들렀다.

 
영등포구 청년임대주택 용지

서울시는 여기에 청년(19~39세)에게 주변 시세의 68~80% 이하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역세권 2030 청년 주택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청년임대주택은 626채 규모로 올해 말 착공해 202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지하 6층~지상 19층의 2개 동이며 실 면적은 17, 26, 33, 37, 41㎡로 나뉜다. 내부에는 에어컨, 붙박이 세탁기, 화장실, 싱크대 등이 비치된다.

하지만 최근 당산동 일부 주민은 청년 주택 신축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 주민은 지난 4일 ‘하이마트 부지 기업형 임대아파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려 단지 내에 ‘5평짜리 빈민 아파트’라고 명시된 안내문을 붙였다.

안내문에는 “청년주택이란 미명하에 5평짜리 주택이 신축되면 우리 아파트는 소음, 집값 하락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집값 하락·소음
청년주택 기피

 

기자가 지난 10일 찾은 청년임대주택 용지는 ㄱ아파트와 약 10m 간격을 두고 위치해 있다.

 
청년임대주택 용지와 ㄱ아파트의 거리는 약 10m

용지에는 현재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을 비롯해 할인마트, 식당 등이 들어서 있는 종합상가건물이 있다.

상인 대부분은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자제품 전문 쇼핑몰 직원은 “ㄱ아파트 주민이 청년임대주택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는 내용을 뉴스를 통해 알았다. 그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라고 전했다.

1994년 설립된 ㄱ아파트는 젊은층보다 오랫동안 거주한 중장년층이 다수 입주해 있다.

현장에서 만난 비대위 대표는 최근 불거진 ‘빈민아파트’ 건축 반대 해명부터 했다.

그는 “인권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려 했다”면서 “건축 예정지는 영등포의 중심상가 지역이다. 5평 주택이 들어오면 인근이 슬럼화할 우려가 크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날 오후 주민 30여 명과 서울시청을 방문해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에 반발하는 민원 서류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청년임대주택 건축에 따른 교통 혼잡, 일조권 훼손 등 6가지 문제의 대책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이에 서울시 측은 “민원 내용 중 납득할 만한 부분에서는 최대한 해법을 마련하겠다”라고 답했다고 비대위 대표는 전했다.

기자는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해 단지 중앙으로 향했다.

주민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집값 하락이다.

7년째 해당 아파트에 거주 중인 주민 A씨는 “이 아파트는 모두 35평이다. 주변에 5평짜리 소형 아파트가 들어서면 집값이 안 떨어지겠느냐”며 “더욱이 청년들이 입주하면 조용한 환경이 유지될 것 같지 않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주민은 지하 6층 깊이까지 굴착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

10년 넘게 해당 아파트에 거주 중이라고 소개한 노부부는 “아파트가 건축된 지 24년이 지났다. 여기에 공사가 진행되면 지반이 버틸 수 없음은 물론 아파트 벽에도 금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택부지와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106동으로 향하자 어린이집이 눈에 띄었다.

 
청년임대주택 용지 옆에 붙어있는 어린이집

손자와 함께 이 동에 거주 중인 주민 B씨는 “건설이 시작되면 적어도 2년간은 진행될 텐데 아이들은 먼지와 소음으로 야외활동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단지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은 뭔 죄냐”라고 호소했다.

다만 모든 주민이 이 같은 반대 움직임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15년째 거주 중인 주민 C씨는 “없는 사람도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나. 집값 하락을 이유로 반대만 주장하면 집 없는 청년들은 어떻게 사나”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원주민 반발
쳇바퀴

 

서울시는 이 같은 주민 반대에 대응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했다.

‘역세권 2030 청년 주택’ 사업을 담당하는 조성국 서울시 임대주택과 역세권 계획팀 주무관은 “구체적인 피해 상황이 있어야 보상을 한다. 기획단계인 현재로서는 면담이나 협의를 거쳐 관련 쟁점사항을 조정해 나가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교통 혼잡 발생 우려 대책으로 “청년 주택 입주 대상은 차량 미소유·미운행자로 제한한다”며 “입주자가 사용하지 않는 주차장은 공영주차장으로 용도를 변경해 지역주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주차장 이용료 수익은 다시 청년입주자에게 일정 부분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같은 역세권 청년 주택 건립을 둘러싼 지역 주민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신규 사업지가 확정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양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2020년까지 8만 채를 공급하겠다는 청년임대주택은 영등포구청역 인근, 신림역, 마포구 창전동, 강동구 성내동 등 추진되는 지역마다 인근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앞서 강동구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반대 위원회’ 50여 명은 지난 6일 재산권 침해 등을 이유로 ‘청년 역세권 주택 건립 무산’을 촉구한 바 있다.

신림역 역세권 청년 주택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은 지난해 9월 25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막아서며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공생의 길
걸어야

 

이런 갈등은 ‘각자도생’의 생존원리가 심화된 결과라는 시각이 있다.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청년을 공존해야 할 동등한 구성원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주거난은 집값과 전·월세 가격 급등으로 사회 전반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시 1인 청년가구(전체 52만 가구) 중 부엌이나 화장실 등이 없는 등 최저주거 기준에 미달하거나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RIR)이 30%가 넘는 청년주거 빈곤율은 전체 청년 1인 가구의 40.4%다.

최 위원장은 “공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설이 혐오시설화되는 점은 안타까운 사회 현상”이라며 “각자도생이 결국 모두의 생존을 더 어렵게 만든다. 왜곡과 편견이 아닌 해당 정책이 가져오는 효과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사전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땅값이 비싼 도심지역일수록 ‘님비현상’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며 “애초에 지역 인센티브 제도나 충분한 공청회를 거친 후 사업을 시행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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