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이 내 꿈, 나보다 나은 제자 만들고 싶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역도산’ ‘김일’은 이미 고인이 된 추억 속의 스타다. 이들은 당대를 호령했던 최고의 프로레슬러로 국민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미국까지 명성을 떨쳤던 이들이야 말로 한류 원조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떠났고 프로레슬링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격투기가 인기를 끌었지만 쇠락의 길을 걷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프로레슬링 인기 재건에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김일의 후계자 이왕표다.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 돌려주고 싶다”
“청소년들 겸손·배려·용기·꿈 가져야” 


‘슈퍼 드래곤’ ‘영원한 챔피언’ ‘김일 후계자’ 등 이왕표를 따라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모두 인기의 결과다. 이왕표는 지난 2015년 공식 은퇴식을 치뤘다. 이후 그가 링에 오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랬던 그가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링에 선 모습은 아니었다. 일요서울은 지난 1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 이왕표를 만났다.

암치료 후 제2의 인생
식이요법 책 내기도


이왕표를 처음 본 기자는 순간 움찔했다. 기골이 장대한 그의 풍채가 과거 그의 모든 경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마주잡은 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포효하며 링을 휘젓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했다.   

기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몸 상태부터 물었다. 이왕표는 은퇴 전인 2013년 담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했다. 그는 조심스레 “5년 되면 완쾌라고 하는데 8월이 5년이다. 암이라는 건 완쾌가 없다. 꾸준히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담도암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암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10대암 중 하나일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걸리는 암이다. 담도는 담즙(쓸개즙)이 간에서 십이지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로인데 이곳에 종양이 생기면서 암이 되기도 한다. 

이왕표는 수술 당시 담낭, 십이지장을 제거하고 췌장의 1/3을 제거했다. 그는 수술 이후 꾸준히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해 왔다. 

은퇴 시기 이왕표가 앞치마를 둘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담도암 수술 이후 식이요법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앞치마 두른 세계 챔피언’이라는 책을 내면서다. 

이왕표는 당시 책을 내게 된 계기에 대해 “식이요법을 하다 보니 그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책에는 이왕표가 아내와 직접 요리해 먹었던 다양한 음식들의 레시피가 담겼다. 책을 내고 여기저기서 방송 출연요청이 많았다. 하지만 아내의 한마디로 그만뒀다.       

기자가 조심스레 어떤 말이었는지 묻자 이왕표는 “아내가 카리스마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학교폭력 등 청소년
다문화 가정 문제 관심


은퇴 이후에도 이왕표는 쉴 날이 없다. 여기저기서 강연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방송 출연도 시작했다. 그는 평소 청소년, 다문화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다. 이를 위해 울타리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학교폭력 관련 강의에는 만사 제쳐두고 나간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그의 강연은 어떨까. 기자가 강의 방식을 묻자 이왕표는 “강연 시작할 때 내 경기 영상을 5~10분 정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의 중 학생들에게 ‘제일 힘 쎈 친구 나와’ ‘교장 선생님, 체육 선생님 불러’ 이러면 아이들이 좋아한다. 나오면 내가 헤드 락을 건다. 그러면 아주 좋아한다. 대리만족이다”라면 학생들 반응을 설명했다.

이왕표가 청소년들에게 애정을 쏟는 이유는 뭘까. 그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덕에 내가 있는 게 아니냐. 이제는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한테 가면 나도 기를 받는다. 초롱초롱하게 보는 눈빛이 너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청소년들과 취업준비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김일 선생님이 내게 했던 말이다”라며  ‘겸손할 것’ ‘배려할 것’을 말했다. 여기에 ‘용기를 가질 것’과 ‘꿈을 가질 것’ 두 가지를 추가했다. 겸손과 배려는 김일 선생이 생전에 후배들에게 특히 강조했던 말이란다. 

용기와 꿈을 추가한 이유에 대해서 이왕표는 학교폭력을 예로 들며 “용기가 있으면 (학교 폭력을) 당하지 않는다. (피해 사실을) 엄마, 선생님한테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다”라며 “반대로 가해 학생들의 경우 다시 일반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용기가 없어 못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들이 날 어떻게 볼까 두려운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꿈을 가져야 한다. 자기 꿈이 있으면 모든 것을 이겨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남은 인생
프로레슬링 활성화 매진


이왕표를 인터뷰를 하면서 “갈 길은 먼데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왕표는 남은 인생을 프로레슬링 활성화를 위해 매진 할 계획이다. 프로레슬링에서 멀어진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후배를 육성하고 다양한 대회가 치러질 수 있도록 기본 인프라를 갖춰 놓는 일들을 하고 있다.

현재 이왕표는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 대한종합격투기협회 총재를 맡고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격투기와 레슬링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종합격투기와 레슬링이 성공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이왕표는 “레슬링은 레슬링대로 키우고 격투기는 격투기대로 키워서 2002년에 준비했다 불발된 울트라FC를 부활시킨 후 레슬링 선수와 격투기 선수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장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빠르면 금년 하반기쯤 시작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공중파의 정기적인 중계방송과 함께 국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왕표는 조만간 후계자를 지정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지금의 꿈은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운동으로 봤을 때는 나보다 나은 제자를 만드는 게 꿈이다. 나보다 월등한 그런 제자를 키우는 게 꿈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이왕표는 오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KBS스포츠월드(구 88체육관)에서 레슬링경기를 개최한다. 이날 경기에서는 WWA 경기를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