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라틴 음악과 강렬한 노랑 유니폼으로 뇌리에 남아있던 콜롬비아. 그곳을 향과 맛으로 음미할 수 있는 이름은 커피였다. 커피루트를 따라 콜롬비아에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 씩 발견하던 시간, 결국 내게는 쓰디쓰던 에스프레소마저 달콤하게 입 안을 맴돌고 있었다.

엘도라도의 전설을 품은 땅 콜롬비아는 대한민국과는 지구 정반대 편에 위치해 물리적으로 너무나먼 곳이다.

사고라고 할 정도의 큰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차마 여행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 쉽지 않은 나라지만 요즘 우리는 부쩍 그 이름을 자주 듣는 것 같다.

그렇게 머나먼 거리를 좁혀주는 고마운 이름은 바로 커피. 최근 대한민국은 전 세계 커피 소비량 10위권에 진입했고, 커피에 대한 취향은 점점 고급화되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트렌드와 함께 세계 최대의 커피생산지 중 하나인 콜롬비아가 커피와 함께 자연스럽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 최근 한 유명커피 프랜차이즈에서 맛볼 수 있게 된 콜롬비아 커피, 그 맛과 향의 고향을 찾아 먼길을 떠났다.
 
      ‘커피루트’, 커피 초보도 커피 맛을
이야기하게 되는 여행
 

마시는 것 외에 아무런 지식도, 맛에 대한 미각이나 철학도 없는 커피 초보가 국내 커피전문가들과 함께 콜롬비아 커피여행을 떠났다.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를 거쳐 ‘커피삼각지대’로 일컬어지는 매니 잘레스, 아르메니아, 페레이라 일대를 둘러봤다.

커피를 재배하는 현장을 찾아 커피를 맛보는 것 외에도 커피가 자라는 모습에서부터 하나의 제품으로 생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직접 들여다보고 체험했다.

또 커피와 관련된 여러 시설을 둘러보고, 커피가 만들어놓은 콜롬비아의 문화를 엿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이 남겨준 것은 결국 내 입맛과 취향에 맞는 질 좋은 ‘커피맛’ 그것이었다.
 
커피문화경관
 
콜롬비아가 자랑하는 ‘커피문화경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커피 생산지인 킨디오, 리사랄다 그리고 칼다스 지역에 걸쳐 이루어져 있다.

안데스 산맥의 중심에 위치한 이 지역은 콜롬비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덕과 산으로 이루어져 커피 재배가 어려운 지리적 조건 속에서 인간의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는 곳이다.

또 자연, 경제, 문화적 요소가 고도의 통일성을 띠며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라 안팎으로 커피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국내외 홍보 캠페인을 통해 ‘커피루트’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첫 커피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오후로 접어드는 햇살이 단정한 도시 풍경에 내려앉은 시간, 테이블 위에 차분하게 놓인 커피 한 잔. 첫 커피는 한국에서 늘 마시던 아메리카노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함 위에 그 잔잔한 풍경을 얹어 반짝 빛을 내고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커피 한 잔을 입안에 머금고 맛을 느껴보는 시간. 콜롬비아 커피여행이 시작됐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확실히 다른 것 같은, 그렇지만 어떻게, 어떤 점이 다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커피 맛, 그 이유는 뭘까. 첫 커피는 그렇게 나의 무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콜로 커피
 
보고타의 현지 커피 전문가가 추천한 콜로 카페와 부르본 카페는 같은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Colo Coffee’라는 이름의 라벨이 선명한 커피 봉지들로 선반 위를 무척이나 콜롬비아스럽게 장식해 놓은 부르본 카페는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카페다.

카페 내부의 커피 제조 기계를 그려 놓은 벽화가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카페 안에는 커피를 볶는 로스팅 기계와 몇몇 기구들도 놓여 있어 호기심과 함께 맹목적인 신뢰가 일어난다. 함께 커피여행에 나선 한국의 커피 전문가들이 부르본 카페의 바리스타와 함께 콜로 커피를 내리고 맛을 보며 의견을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환하게 웃기도 하는 그 과정들을 관찰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모든 것이 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들이다.

한국의 수많은 카페에서도 늘 벌어지는 풍경이겠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는 손님이었기에 알 수 없었던 모습들. 커피 맛은 여전히 ‘그저 다름’이지만 ‘신선함’이라는 단어 하나가 불현듯 떠올랐다.
 
    리베라 커피농장
 
보고타에서 비행기를 타고 30분을 날아 페레이라로 향했다. 다시 차를 타고 약 1시간가량 찾아간 곳은 유명 커피 산지 중 하나인 산타 로사 데 까발 지역에 위치한 리베라 커피농장이다.
    커피가 재배되는 현장을 처음으로 찾아간다는 들뜬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안데스 산맥의 울창한 삼림 속으로 들어가며 맞이하는 풍경은 여행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참을 달리던 차량이 멈춰선 곳은 답답하던 시야가 시원하게 열린 산 속의 평원 같은 곳.

안개가 유유히 떠다니는 그곳에서 초록 커피 밭과 야자수 등이 가득 펼쳐진 생경한 풍경이 가장 먼저 가슴에 닿는다. 뒤이어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고 촉촉하게 젖어버린 산속 커피밭의 싱그러움이 또다시 맹목적인 믿음을 심어 놓는다.
    산속에 머물고 있는 그 풍경들을 찬찬히 바라보는 동안 지금 막 내린 커피 향이 날아들고, 이미 그 모든 것들이 커피 맛을 좌우해 버린다.

신선함과 싱싱함, 향보다 맛에서 느껴지는 그 감각들이 맛을 보기 이전부터 작은 전율을 일으켜 이곳 커피에 대한 특별한 환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 한 모금 물고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가며 음미하는 커피 맛은 뜻밖의 맛을 내어 놓았다.
    신맛, 그럼에도 자극적이지 않고 거부감이 생기지 않아서 다시 한 모금을 마시게 되는 그런 맛. ‘과연 커피는 그 속에 몇 가지의 맛들을 품고 있을까’. 어느새 커피에 대한 조금은 더 진지한 질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리베라 농장이 위치한 지역은 춥고 구름이 많이 끼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농장주는 그런 지역적 특성이 리베라 커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되는 일반적인 품종이 아닌, 스페셜티 커피를 만들고 싶었던 그의 바람에 가장 적합한 곳인셈. 그의 희망과 의지에 맞춰 고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 리베라 농장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나무에서 자라나 빨갛게 익은 원두가 되고, 그 원두를 따서 말리고 가공하고 볶아서 하나의 제품이 되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다시 초록 커피 밭을 바라보며 맛보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는 비로소 쓴맛을 잃은 채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카페 드 콜롬비아
 
커피의 맛과 품질을 직접 체험을 통해 확인하는 여행은 콜롬비아의 커피 산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콜롬비아에서 커피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줄임말로 ‘FNC’라고 부르는 콜롬비아 커피생산자 연합회, 카페 드 콜롬비아.

1927년 콜롬비아의 커피생산자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해 지금은 무려 56만에 이르는 커피생산자들이 가입돼 있는 거대한 조직이지만 커피 판매 등으로 발생한 수익금을 커피생산자에 대한 기술지원이나 사회 인프라 정비 등에 사용하는 비영리 조직이기도 하다.
   또 커피생산자들이 수확한 커피를 공정하고 평등한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보증해 커피생산자들의 권익을 지키고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노력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활동은 결국 콜롬비아 커피가 세계 최고의 깊은 맛을 내는 커피로 발전하고 또 인식될 수 있는 지름길이 되어주었다.
   결국 품종의 다양화와 고급화, 재배 환경의 개선과 질병 예방 등과 같은 커피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콜롬비아의 이름은 더욱 크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
 
  라 모렐리아 카페
 
최근 국내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본격적인 봄 시즌을 겨냥해 새롭게 콜롬비아 커피를 선보였다. 메이플 시럽의 달콤함과 커피의 부드러운 상큼함이 매력적인 ‘콜롬비아라 모렐리아’가 그 주인공으로 킨디오 주의 주도인 아르메니아에 위치한 라 모렐리아 커피농장이 바로 ‘콜롬비아 라 모렐리아’가 태어난 곳이다.
  푸른 잔디밭에 서 있는 커피자루를 가득 실은 지프의 모습이 또 다른 커피투어를 상상하게 끔 하는 라 모렐리아 카페에서 역시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가장 먼저 여행자를 맞이한다.
  먼저 방문했던 리베라 커피농장과는 달리 공식적인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라 모렐리아 카페이기에 보다 전문적인 커피에 대한 소개를 듣고 경험할 수 있다. 리베라 농장이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면 라 모렐리아 카페는 평지에 위치하고 있어 조금 더 편안한 투어를 즐길 수 있다 .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커피나무가 늘어선 농장으로 산택을 나서면 주렁주렁 열려있는 커피 열매들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습이 기다린다.

초보자에게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다른 품종의 커피들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재배된 원두를 가공하는 공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진다. 커피 맛을 좌우하는 수많은 요인들이 농장 사람들의 세심한 손길에 의해 결정되고 그 거피들이 한국의 카페로 들어와 한 잔의 커피가 된다는 사실 때문인지 커피 맛은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지지만 숨어있는 과일의 발랄함이 전해진 순간 야릇한 흥분이 일기도 한다.
  하나의 제품이 되기 위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마지막 과정, 커핑은 마치 커피의 신비를 발견하는 시간 같다. 각각의 잔에 담간 서로 다른 품종의 커피들, 같은 품종이지만 생산자가 다르기도 하고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다르기도 한 커피들, 모두 다른 색과 향 그리고 맛을 지니고 있다.
  천의 얼굴을 지닌 커피, 그 중 내가 원하는 커피를 하나 발견하는 일, 콜롬비아를 여행한다면 꼭 해야 할 기분 좋은 숙제이다.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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