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장법인 주총에서는 외국투자자들의 입김이 어느 해보다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외국계 펀드가 잇따라 상장법인에 대한 투자목적을 ‘경영 참가’로 공공연히 밝히고 상장법인의 이사 선임ㆍ해임 등의 주요 경영에 참여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외국계 펀드가 5% 이상 지분을 취득, 투자목적을 ‘경영참가’로 공시한 회사가 모두 60개사. 오는 13일 넥센타이어를 시작으로 상장·등록사들이 본격적인 주총 시즌에 들어간다. 지난해에는 참여연대의 활동과 SK㈜-소버린자산운용의 주총 표 대결이 눈길을 끌었지만 올해는 KT&G와 세계적 기업사냥꾼인 칼 아이칸의 경영참가에 대한 주총 승부가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일부 기관 투자가들은 이번 주총에서 거수기 역할 대신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주총 시즌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기업은 단연 KT&G. 지분 6.59%를 확보한 세계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 칼 아이칸이 KT&G에 한국인삼공사 상장, 보유 부동산 매각, 사외이사 후보 3명 추천 등을 요구했다.이에대해 곽영균 KT&G사장은 “칼 아이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 상태에서 인삼공사를 상장하는 것보다 수익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기업공개 요구는 무리”라고 밝혔다. 아이칸 한국대리인측은 KT&G의 이 같은 설명회 내용을 분석 정리해 미국 뉴욕 맨해튼에 머물고 있는 아이칸측에 보고했다.

아울러 조만간 이에 대한 아이칸측 입장을 정리해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아이칸측이 사실상 자신의 요구가 묵살된 것으로 판단하고 표 모으기나 법적인 소송절차에 들어간다면 아이칸과 KT&G 간에는 경영권을 둘러싼 본격적인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곽 사장은 “현재까지는 국내 기관에 지원 요청 등과 관련해 접촉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국내 자본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라고 말해 올해 주총에서 KT&G와 아이칸의 표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KT&G는 다음주 이사회를 개최하고 주총 안건 등을 확정할 계획이다. 주총은 KT&G 내부적으로 다음달 중순께 개최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 주총 전까지 아이칸과 KT&G가 어느 정도의 우호세력을 확보하느냐가 KT&G 경영권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호세력에 자사주 매각 속출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대거 사들이거나, 이미 사들인 자사주를 잇따라 우호세력에 넘기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외국계 주주는 상장법인에 대해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소각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자회사 기업공개(IPO), 고수익사업 전략 등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경영자문에까지 적극 나서고 있어 주총을 앞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아이칸 등 외국계펀드들이 KT&G 지분을 매집, 이사선임 등 경영참여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에따라 경영권안정이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은 급증하는 추세다. 외국계 주주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이유는 최대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쥐꼬리’ 수준인데 비해 세(勢)규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외국인 지분율은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

외국인의 경영참여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주주가치 제고를 통한 기업가치 상승이란 점에선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상적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지, 외국계가 단기적 주가 상승을 노린 치고 빠지기 식 이익 챙기기나 과도한 지분경쟁을 통한 경영권 압박에 나설 경우 장기적으로 기업은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현재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20개 종목(우선주 포함) 외국인지분율은 평균 52.26%에 달한다.KCC는 최근 자사주 52만600주(지분율 5%)를 현대중공업 계열인 현대미포조선과 현대삼호중공업에 매각, 서로 지분을 교차보유하면서 우호관계를 한층 강화했다. KCC는 현대중공업 지분을 8.15%, 현대중공업은 계열사를 통해 지분 6.44%를 갖게 됐다. KCC 관계자는 “유동성 확보 및 재무구조 개선이 자사주 매각의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이 지분을 갖게 해 경영권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주 장내 매입도 줄이어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들이 자사주를 매입한 금액은 모두 4조8,392억원에 달한다. 지난 2004년 5조9,791억원에 비해 19%가량 줄었지만 지난해 주가가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상장자들의 자사주 매입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삼성전자가 2조1,119억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한 것을 비롯, 포스코 1조1,061억원, 현대자동차6,602억원, KT&G 1,149억원 등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자사주 매수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서도 SK(주)가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증대를 목적으로 5,121억원을 들여 자사주 900만주(7.0%)를 취득키로 공시한 것을 비롯 상장자들의 자사주 취득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다. 한편 넥센타이어는 정기주총 시간을 앞당기며 7년 연속 주총 1위를 사수했다.

넥센타이어는 오는 13일 오전 9시30분에 개최 예정이던 주총을 30분 앞당겨 9시에 연다고 이날 정정 공시했다. 이유는 넥센타이어보다 30분 앞서 주총을 열겠다는 기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까지 6년 연속으로 상장·등록된 1,000여개 12월 결산법인들 가운데 가장 먼저 주총을 개최했다.김화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우리증시의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넘은 만큼 거의 모든 상장사들이 외국 펀드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한 경영권 안정 움직임은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