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식 땜질 처방”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군 지휘관의 이른바 ‘갑질’ 논란으로 폐지된 ‘공관병’ 제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군이 공관병 자리 일부를 공관 부사관으로 대체 운영 중인 사실이 드러난 것. 특히 공관 부사관을 선발하면서 조리시험까지 치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9월 30일부로 공관병 제도 폐지
조리시험 논란 왜?···해군, 명칭만 바꿔 운영하나


최근 김학용 국방위원장(자유한국당)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육‧해‧공군 공관병 대체인력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육군은 지난해 9월 30일부로 공관병 제도를 폐지하고, 육군 4성 장군(대장) 5명의 공관에만 1명씩 대체인력을 배치해 운영 중이다.

육군참모총장과 제2작전사령관, 제3군사령관의 공관에는 대체인력으로 부사관이 3명 선발돼 배치됐으며 제1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부사령관 공관에는 군무원(2명)이 채용돼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육군의 경우 육군참모총장과 제2작전사령관, 제3군작전사령관 등 공관에 부사관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조리시험까지 치른 것으로 드러난 상황.

이는 지난해 국방부가 박찬주 전 육군대장 부부의 공관병 갑질 의혹을 조사할 당시, 박 대장의 부인이 공관병 요리 실력을 탓한 것을 염두에 둔 조치가 아니냐는 말까지 항간에 떠돌고 있다.

앞서 군 지휘관의 공관병 갑질 의혹은 지난해 7월 군인권센터의 문제제기와 고발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군인권센터는 “박 전 대장이 관사에서 근무한 공관병에게 빨래와 다림질 같은 집안일부터 텃밭 가꾸기 등 각종 허드렛일을 시키고, 폭언을 했다”면서 “박 전 대장의 부인도 공관병을 지극히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등 노예처럼 부렸다”고 폭로하고 군 검찰에 고발장을 냈다.

군인권센터가 피해자들의 제보를 종합해 발표한 폭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공관병들은 박 전 대장이 새벽 기도를 가는 오전 6시부터 취침하는 오후 10시까지 총 16시간가량 근무하며 물 떠오기, 안방 블라인드 치기, 소파와 바닥에 떨어진 발톱 치우기 등과 같은 잡일을 한 것은 물론 이를 위해 호출용 전자발찌도 착용했다. 제때 충전을 하지 못해 부름에 늦으면 “느려터진 굼벵이”라는 폭언과 “한번만 더 늦으면 영창 보내겠다”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공관병들은 당시 인근 부대에서 복무하는 박 전 대장의 아들이 휴가를 나오면 더 큰 모욕감을 느꼈다고 한다. 아들의 속옷 빨래와 간식까지 챙겨야 했던 것이다. 간식을 깜빡한 공관병이 부침개를 늦게 해오자 박 전 대장의 부인은 그 부침개를 얼굴에 집어던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리병의 사정은 더 심각했다. 박 전 대장의 부인은 칼을 휘두르며 조리병에게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부모에 대한 욕까지 했다고 한다.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창 파문이 일고 수사에 나선 군 검찰은 “공관병에게 한 갑질 등은 법적 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혐의 처분을 예고했다가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최종 처분을 하지 않은 채 그를 뇌물 수수 등 혐의만 적용해 기소한 바 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9월 30일 공관병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국방부는 이번 공관 부사관 논란에 “지휘관의 부대지휘 여건 보장과 공식행사 등을 고려, 4성 장군 8명 및 해병대 사령관 공관에 대해 총 9명의 공관 조리담당으로 군무원 또는 부사관을 편성했다”면서 “일부 공관 조리담당 인력을 부사관으로 보직한 것은 군무원 채용선발 시 적합한 인원이 부족한 데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군무원을 선발하여 보직해 나갈 예정”이라며 “육군의 조리부사관 선발 시 조리시험을 실시한 것은 조리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선발과정”이라고 덧붙였다.

해군은 공관병 폐지 후 상황·시설 관리병 제도를 신설하고, 해군참모총장, 해군참모차장, 해군작전사령관 공관에 1명씩 배치했다.

그러나 공관에 상주시키지 않고 출퇴근을 시키고 있다는 점만 바뀌었을 뿐 역할은 기존 공관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해군의 상황·시설 관리병은 출퇴근 식으로 일과 중에만 운영한다”며 “공관 기능 유지를 위해 시설관리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공군은 공관병 폐지 이후 대체인력을 선발하지 않고 있다.

김학용 국방위원장은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식 땜질처방”이라며 “송영무 국방장관은 모든 지휘관 공관에 근무하는 병력을 철수하고 민간 인력으로 대체하라고 했지만, 실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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