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피했지만 상황 불확실…한계기업 퇴출 공포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원은 지난 16일 ‘미중 무역전쟁, 대안은 있는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이 자리에서 권태신 원장은 “미국의 통상압박이 한국의 철강, 태양광 패널 등으로도 이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가 중요하다”며 “갈등이 완화되는 듯 보여도 양국의 통상 기조상 언제든 관계가 다시 냉각될 수 있기 때문에 다자간 무역협정 등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통상압박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의 사례도 알려지고 있다.

삼성·LG전자, 중국 생산 미국 수출용 LCD TV 출하 중지 검토
EU관세 10%P 인상될 경우를 최악의 상황…한국 경제 위기설도


미국은 지난 12일 한국산 냉간압연강관에 대해 48%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현재는 철강, 태양광 패널 등 몇 가지 품목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미국의 통상압력이 주력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외에도 미국은 우주항공, 반도체 등 1300여개 품목,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중국 정부도 그 이튿날 미국산 대두, 항공기, 자동차 등 106개 품목, 50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같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들

이에 따른 국내 산업계의 유·무형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당장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핵심은 오는 2021년부터 면제될 예정이었던 픽업트럭 관세(25%)의 20년 연장.

현대자동차가 관세 면제 시점에 맞춰 미국 시장에 트럭을 출시할 예정이었고 쌍용자동차 역시 2020년 이후부터 픽업트럭을 포함해 미국 시장 진출을 예고했었다. 우선 미국 내 공장이 없는 쌍용차는 사실상 픽업트럭 수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 역시 픽업트럭을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기로 했던 기존 계획을 수정해야 할 처지로 중장기 생산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25%의 관세율은 사실상 시장 진입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라면서 “현대차의 경우에도 미국 현지 판매량이 얼마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지 생산을 결정하는 데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중국에서 만드는 40인치형 LCD(액정표시장치) TV의 중단과 다른 공장으로 생산지 이전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0인치형 LCD TV가 미국의 25% 관세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대부분 제품이 중저가 라인으로 경쟁력의 핵심은 가격”이라며 “만약 25%의 관세를 맞게 될 경우 현지 생산의 장점이 없어 생산지 이전도 하나의 대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도 제동이 걸렸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 분쟁을 핑계로 일본 도시바(東芝)의 반도체 사업 매각에 대한 승인을 지연하는 것으로 관측되면서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나선 SK하이닉스가 미·중 갈등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지난 15일 외신과 반도체업계 등에 따르면 도시바가 SK하이닉스와 미국 베인캐피털이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하는 방안이 1차 시한인 지난달 말까지 중국 반독점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얻지 못하면서 계약 조건에 따라 다음 달 1일이 2차 시한으로 잡혔다.

도시바가 2차 시한을 지키려면 지난 13일까지 중국의 승인을 얻을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지만 아직도 승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시바 메모리 매각안은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브라질, 필리핀, 대만 등 7개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중국 당국의 심사만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미국과 무역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와 퀄컴의 네덜란드 NXP반도체 인수 등 미국 기업이 관련된 수십억 달러 규모 인수·합병(M&A) 거래에 대한 검토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 진출 미국기업 단체인 미중무역전국위원회(USCBC)의 제이컵 파커 중국 사업 부대표는 “합병에 대한 검토와 결정은 시장에 기반한 계산을 토대로 해야 한다”며 “절대 미·중 간 관계의 정치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한계기업의 퇴출 공포도 우려된다. 국내증시가 대외 악재에 휘청이면서 이들 기업이 받은 타격 또한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감사의견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을 받아 비격적 상장사로 낙인 찍힌 기업이 16곳 나왔다. 아직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기업도 22곳이다. 한국거래소는 의견거절을 받은 상장사가 7영업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한다. 미제출 기업 역시 내달 2일까지 감사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10영업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지난 23일 기준 이에스에이가 한정 감사의견을 받았고 C&S자산관리, 트레이스, 에프티이앤이, 스틸플라워, 에임하이글로벌, 지디, 감마누, 넥스지, 우성아이비, 수성 등이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여기에 감사보고서 미제출 기업 중 추가로 비적정 상장사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증권업계의 관측이다.

국내 피해 다를 전망

한편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4일 미국의 대중국 무역제재가 우리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미중 무역전쟁 양상을 협상을 통한 상호 합의, 미국의 대중 제재 시행, 통상 분쟁 확산 등 3개 시나리오로 나눠 제시하며 한국의 수출 피해를 추산했다.

무역협회는 미중무역전쟁이 EU등으로 확산되어 미중의 EU관세가 지금보다 10%P 인상될 경우를 최악의 상황으로 봤다. 이렇게 되면 전세계 무역량이 6%감소하면서 한국 수출이 연 6.4%급감할 것으로 추산했다. 무역협회는 중국은 미국에 비해 제조업 비중과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다는 핸디캡이 있고 미국도 무리한 무역 제재로 리더십 손상 등의 문제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통상분쟁의 전면 확산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만약 갈등이 현재 정도에서 봉합될 경우 한국의 피해가 가장 작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0.9% 줄면서 한국의 총 수출은 0.03%감소할 것으로 봤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통상 마찰이 쉽게 해결되면 오히려 한국의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봤다. 한국의 총 수출이 0.7%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한 관계자는 “한국 교역의 1,2위를 차지하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이 격화되고 있다”면서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 비중이 79%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중 수출의 감소가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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