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기업들, 정권교체 맞물린 회장 사퇴 ‘흑역사’

왼쪽부터 권오준 포스코 회장, 황창규 KT 회장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포스코그룹과 KT그룹 등은 ‘민영화된 공기업’ 혹은 ‘주인 없는 기업’ 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업체다. 더불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의 입맛에 맞는’ 수장이 등용되는 관례 때문에 ‘관치의 온상’ 이라는 지적도 받는다. 특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해당 그룹의 수장들이 연임을 하면 갑자기 여러 고발이 이어진다.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결국 전임 수장이 자리를 내놓게 되는 형세를 목격해 왔다.

두 기업 모두 역대 회장 불명예 퇴진 사례 잇달아
정부 출범→비위 의혹→사임 선언 굴레 무한반복


지난 18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의 새로운 100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열정적이고 젊고 능력 있는 분에게 회사 경영을 넘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사임을 선언했다.

또 같은 날 오전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긴급 임시이사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거취에 대한 답변에서 “(사임에 관한) 부분들을 이사회에 말씀드렸고 이사회에서 흔쾌히 승낙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황창규 KT 회장 역시 지난 18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약 20시간의 경찰 조사를 받은 후 귀가했다. 앞서 2002년 KT가 민영화된 이후 처음으로 KT 현직 최고경영인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한 것이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포스코 회장이 먼저 사임했으니, KT 회장 역시 그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영기업인 포스코와 KT 회장 교체와 정권 교체기와 맞물리는 상황을 두고서는 “언제까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것이냐”는 비판도 쏟아진다.

실제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10여 년이 넘도록 최고경영자의 운명은 정권 교체와 항상 운명을 같이했다. 이른바 포스코 잔혹사는 고(故) 박태준 초대회장이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다툼 끝에 퇴진하면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박태준 회장 이후로도 황경로 회장, 정명식 회장도 김영삼 정권 때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정명식 회장 차기로 회장직에 오른 김만제 회장은 김영삼 정권에서는 임기를 채웠지만 김대중 정부 때 중도 사퇴했다.

유상부 회장은 1996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중도 사퇴를 했으며 이구택 회장은 2003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중도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정준양 회장이 2009년 중도 사퇴했다.

권오준 회장 체제는 2014년부터 시작됐으며 올해 3월 연임에 성공, 권오준 2기 체제를 가동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후 줄곧 사퇴설에 시달리다 결국 자리에서 물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일부 포스코 역대 회장들은 불법 로비, 배임, 횡령, 일감몰아주기 등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다. 권오준 회장은 “외압은 없었다”고 일축하고 있지만 새로 출범한 정부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아 일어난 ‘외압’ 이라는 해석도 많다.

또 다른 민영기업, KT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황창규 KT 회장도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정권이 교체되면 당연하다는 듯 수장 교체가 이어졌고 비슷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다.

황창규 회장은 2014년 3월 KT 회장으로 취임, 지난해 연임에도 성공했지만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단체 등은 황창규 회장이 박근혜 전 정권의 요구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18억 원을 출연한 사실이 드러난 직후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 KT 이용경 사장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연임을 포기했다. 노무현 정부 때 선임된 남중수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 납품 혐의로 수사를 받고 사임했다. 이석채 회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퇴진했다.

우연이라고 해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을 때 정경유착 의혹에 시달리고 그동안의 비리가 드러나 수장이 중도 하차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관치’ 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다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경영인의 비위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고 진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정권 초마다 조사가 진행되고 수장의 퇴임이 반복되는 것이 절대 우연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상식적으로 정부가 바뀔 때마다 회장이 물러나면 기업 활동의 연속성이 보장되겠는가”라며 “좋은 낙하산, 나쁜 낙하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 입김’이라는 오해 자체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권오준 회장의 사임으로 인해 포스코 이사회는 차기 경영인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포스코 이사회는 승계 카운슬을 운영하기로 결정했으며, 승계 카운슬 1차 회의 후 선임 절차와 구체적 방법 등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승계 카운슬은 이사회 의장과 전문위원회 위원장 등 사외이사 5명과 현직 경영인들로 구성된다. 기존 내부 핵심 인재 시스템을 통해 육성된 내부 인재와 함께 외부 서치 펌(Search Firm) 등에서 발굴된 외부 인재를 이사회에 제안한다. 

후임 회장이 선임될 때까지 권오준 회장이 당분간 회장직을 유지한. 차기 후보군으로는 오인환·장인화 포스코 대표이사, 포스코켐텍 최정우 사장 등 4~5명이 거론되고 있다. 포스코 인재창조원 황은연 전 원장도 하마평이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 정부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문재인 정부가 직접 나서 소문의 근원을 명백히 해명하지 못하면 정부 외압설은 기정사실화될 모양새다. 현재로서는 차기 회장 선임 과정을 최대한 투명하게 진행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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