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여론 조작 가능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민주당원들에 의한 여론조작’ 이른바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으로 청와대와 여당이 궁지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찰은 포털사이트 등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성격의 댓글을 추천해 여론을 조작하려 한 혐의(업무방해)로 김모(48), 우모(32)씨, 양모(35)씨 등 민주당원 3명을 긴급체포했다. 당초 경찰은 압수수색 과정이었으나 이들이 증거인멸을 시도해 현장에서 긴급체포했다. 이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기사 댓글에 달리는 ‘공감’ 수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등의 여론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드루킹… 휴대전화 170여 대, 포털사이트 아이디 614개 사용
프로그램 원천 차단 가능성 “불가능”…사정당국 경각심 가져야


댓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은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다. 김씨는 ‘드루킹’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등에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김 씨는 네이버에서 시사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를 운영하며 주식과 경제 분야와 관련해 인지도를 높여 왔다. 이 블로그는 2009년과 2010년 시사·인문·경제 분야 ‘파워블로그’로 선정됐다. 

김 씨는 2010년 초반부터 한 커뮤니티에서 ‘뽀띠’라는 필명으로 경제 관련 글을 써오다 필명을 드루킹으로 바꾸고 본격 블로그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 2009년 시작된 이 블로그는 2006년 ‘뽀띠의 자료창고’로 제목이 한 차례 변경됐다가 2009년 ‘드루킹의 자료창고’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이 블로그 소개란에는 자신을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매니저’로 소개하고 있다. 경공모는 김씨가 2014년 소액주주 운동을 목표로 연 인터넷 카페다. 회원 수는 2500여 명이다.

김 씨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2010년 ‘드루킹의 차트혁명’이라는 주식 전문서를 펴내기도 했다. 주가 흐름에 관한 기술적 분석 기법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에는 블로그와 같은 제목으로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팟캐스트는 “경제민주화운동, 공동체를 통한 경제적 자유의 달성을 추구하는 드루킹의 자료창고”라고 소개하고 있다. 

프로그램 종류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


김 씨는 여론조작(댓글조작)을 위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크로 프로그램의 정식용어는 ‘매크로 인스트럭션(Macro instruction)’으로 일명 자동명령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하나의 명령어로 여러 개의 명령을 동시 처리가 가능하다. 

김 씨가 주 타깃으로 작업한 댓글을 예로 들면 어떤 기사에 댓글이 달리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공감’ ‘추천’ ‘찬성’ ‘반대’ 수를 인위적으로 늘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공감’ 이나 ‘추천’ 수가 늘어나면 해당 댓글을 상단으로 올라가 손쉽게 눈에 띄게 된다. 김 씨는 이런 작업을 위해 휴대전화 170여대, 포털사이트 아이디 614개 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여론 조작을 위해 사용한 매크로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마케팅을 주 업무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도구다.

지난 19일 기자와 만난 한 온라인 마케팅 전문업체 관계자 A씨는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한 건 10년도 넘는 일이다”라며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관련 프로그램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매크로 프로그램 구매를 요청하는 메일이 직접 오기도 한다”며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온라인이 활성화 되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화되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매크로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럽게 기업 등에서 SNS 홍보가 늘어나게 됐고 전략적으로 홍보 방법을 찾다 보니 등장한 것이 바로 매크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마케팅 업체들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드루킹 사건처럼 댓글 공감 수 늘리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 상위 노출, 검색창 자동 완성 등에 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카페, 지식인 댓글을 다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매크로 프로그램은 불법이다. 네이버, 다음 등의 포털도 이들 프로그램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원천 차단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포털사이트의 매크로 프로그램 원천차단 가능성을 묻자 “불가능 하다고 본다”며 “시간이 걸릴 뿐 새로운 매크로 프로그램이 등장한다. 프로그램들은 전문 프로그래머들이 만드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 측에서 새로운 보안책으로 매크로 프로그램을 막으면 그 보안책을 뚫을 수 있는 또 다른 매크로 프로그램들이 등장한다는 게 A씨의 얘기다. 

청와대 국민청원 조작도?
전문가 “가능할 것”


매크로 프로그램은 사실상 온라인 세상의 무법자다. 온라인상에서 암암리에 퍼지는 음란물처럼 발본색원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매크로 프로그램이 국민 여론을 조작하는 데 계속 사용된다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포털사이트 측과 사정당국이 지금보다 더 큰 경계심을 갖아야 하는 이유다.

기자는 조심스레 A씨에게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매크로 프로그램이 사용될 수 있냐는 질문을 던졌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를 하기 위해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등의 로그인을 거치면 된다. 

A씨는 “가능할 거라고 본다”며 신중한 답변을 내놨다. 동의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가 SNS 계정 로그인뿐인 만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드루킹은 이미 여론조작을 위해 휴대전화와 포털사이트 아이디 수백 개를 확보하고 있었다. 실제 각종 범죄에 사용되는 대포폰 등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대포폰을 활용하면 포털사이트의 아이디도 만들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밖에 해킹 아이디의 경우 단 몇 백원 몇천 원이면 구할 수 있다. 

매크로 프로그램과 아이디 또는 이를 만들 수 있는 대포폰 그리고 아이피만 있다면 사실상 누구나 온라인상에서 여론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 대법원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연루된 원세훈(67) 전 국정원장 혐의를 모두 유죄로 선고했다. 

대법원의 원 전 원장 선고에 따르면 전원합의체는 국정원 사이버팀 직원들의 온라인 댓글 및 트위터 활동 등을 정치 관여 행위와 선거 운동으로 판단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정치 활동과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공무원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은 아직까지 실체가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순히 일부 지지자들 또는 디지털 브로커의 일탈로 끝날지 아니면 정치인까지 연루된 커다란 사건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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