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장이었던 피의자, 도대체 왜?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주민 130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어촌 마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마을 축제를 위해 만든 고등어추어탕에 한 여성이 농약을 살포한 것.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한 주민이 이 음식을 축제장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맛을 보다가 농약이 투입된 것을 조기에 발견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축제에는 90여 명가량의 주민이 모이기로 예정돼 있어 이를 모르고 먹었다면 마을 대다수 주민이 큰 화를 입을 뻔했다. 피의자 A씨는 3년 동안 이 마을의 부녀회장을 할 정도로 주민들의 신임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왜 농약을 살포했을까.

90여 명 모일 예정이던 축제···노인이 대다수, 큰 피해 입을 뻔
주민들 충격, 피해자 불면 시달려···농약에 악취 성분 첨가돼 인명 피해 막았다


지난 22일 포항남부경찰서는 마을 공동취사장에 조리해 둔 고등어추어탕에 농약을 투입한 이 마을 전 부녀회장 A(68)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았다. 또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 받아 다음 날인 23일 A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1일 오전 4시경 포항시에 위치한 한 마을공동취사장에 몰래 들어가 미리 조리해 둔 고등어추어탕에 ‘엘산’이라는 농약을 투입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엘산 약 30ml를 넣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벼멸구 방지 등에 쓰이는 엘산은 보통 독성으로 약효 보증기간이 2년이지만 사람이 먹을 경우 사망률이 12%이상 되는 독성 물질이다.

해당 고등어추어탕은 매년 이 지역 10여 개 마을이 공동으로 여는 돌문어 수산물축제를 맞아 지역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전날 끓여 둔 것.

농약 투입 사실은 지난 21일 오전 5시경 부녀회장과 회원 등이 음식을 행사장으로 가져가기 위해 작업장에 들어섰다가 준비해 둔 고등어추어탕을 맛본 피해자 B씨가 구토와 함께 어지럼증을 느끼면서 밝혀졌다.

B씨는 곧바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다행히 이상 증상이 없어 귀가 조치했다.
 
현장 인근서
드링크병 발견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인근 CCTV와 차량 블랙박스 분석, 주변 탐문수사 등을 통해 A씨가 새벽에 혼자 몰래 마을공동취사장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 사건 발생 14시간 만에 A씨를 붙잡았다.

경찰은 또 작업장 인근 밭에서 농약 냄새가 나는 드링크병을 수거해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A씨가 집에 보관 중이던 잔여 농약, 현장에서 수거한 드링크병, 고등어추어탕에 투입된 농약 성분이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포항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서울에 “(드링크병이) 박카스병인데 요즘에 나오는 길쭉한 병과 예전에 나온 동그란 병이 있는데 이번에 수거한 것은 동그란 병이다. 이 병에 약 3분의 1 정도 되니까 (엘산이 투입이) 약 33ml 정도가 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는) 본인 진술이라 국과수에 얼마나 투입했는지는 정확한 감정을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수거한) 드링크 병하고 고등어추어탕하고 (A씨) 집에서 발견한 종이컵에 담긴 (농약) 성분이 일치했고 (A씨의) 유전자가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축제에는 마을 주민 80~90여 명이 모일 예정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축제에서 음식을) 고등어탕만 먹는 게 아니지 않느냐. 회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음식이 있는데 이 고등어탕이 냄비로 보면 4말(약 72L) 72ml 정도였다. 제법 많은 양이다. (축제에서) 탕만 먹는 게 아니니까 (조금씩 나눴다면) 더 많은 사람이 먹을 뻔했다”면서 “엘산이 보통 독성이지만 이 마을에는 노인들이 많다. 60대 후반부터 80대까지 있으니까 사람마다 (먹을 경우 치명률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주민과의 알력
A씨 “무시당했다”

 
A씨는 3년간 이 마을에서 부녀회장직을 맡을 정도로 주민들의 신임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왜 농약을 살포한 것일까.

A씨는 최근 부녀회장 교체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알력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부녀회장 임기를 마치고 올해 초 재선됐으나 지난달 돌연 사퇴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3년간 이 마을 부녀회장직을 맡아 왔지만 새로 선출된 부녀회장과 사이가 벌어졌고 마을 행사를 앞두고도 음식을 준비하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자 화를 참지 못해 (농약을) 넣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전 부녀회장인데 부녀회 회원이 43~44여 명 된다고 한다. A씨가 2년 정도 회장직을 맡았을 때는 괜찮았는데 3년 차 정도 접어들면서 (회원들이) 자기를 잘 안 따라주고 보고도 안 해서 자기를 ‘왕따’시킨다는 기분이 들었던 모양”이라며 “(재선 당시 회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A씨가 3개월 하다가 그만 둬 버렸다. (이번) 축제가 있으니까 회장을 다시 뽑아야 하지 않느냐. 회장을 뽑고 나면 (회원들과 신임 회장이) 자기도 찾아오고 화해도 할 것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어 감정이 폭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마을은 한적한 어촌마을로 모두가 한 가족같이 지내왔는데 어쩌다 이리됐는지 시류가 한탄스럽다.” 주민들은 이 같이 말하며 충격에 빠졌다.

사건 이후 보건소에서는 이 마을에 심리치료사를 보내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고등어추어탕의 맛을 보고 병원에 이송됐던 B씨는 이후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씨의 남편도 충격을 받아 집 안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 경찰은 조사를 마무리하고 지난 25일 A씨를 검찰에 구속송치했다.

한편 지난 2015년 7월 경북 상주지역에서는 80대 여성이 마을회관 냉장고 안의 사이다에 맹독성 농약을 투입해 같은 마을 할머니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지난 2016년 8월 경북 청송군에서도 마을회관에서 맹독성 농약이 든 소주를 나눠 마신 주민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등 농약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상주 농약사이다와 청송 농약소주 사건 이후 농약제조업체에서 무색무취한 농약에도 악취 성분을 첨가하고 있어 이번에 대형 인명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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