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 만나려면 사전신고”…현·퇴직 공무원 ‘당혹’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관가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공무원이 민간이나 부하 직원에게 청탁과 갑질을 못 하도록 개정된 ‘공무원의 청렴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이하 ‘공무원 행동강령’)이 17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도덕에 맡겨도 될 문제를 지나치게 규제해 민간과 단절시킨다”고 반발하는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강화된 윤리규정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다. 새 공무원 행동강령이 공직 사회 비리 척결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 위반 땐 최고 파면…관가, ‘청렴 교육’ 실시에 바빠
- “‘청탁’ 차단할 수 있지만 민간과 소통 창구 막히면”



공무원 행동강령은 2003년 2월 부패방지법 제 8조에 근거해 대통령령으로 제정됐다.

법적 구속력을 갖춘 공무원 윤리규범으로 각급 기관의 공무원은 이를 준수해야 한다.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관병 갑질’ 논란 등 공직자 비리 여파로 공무원 윤리규정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다. 국민권익위원회의가 주도해 입안했으며 지난 1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총 21개의 구체적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공정한 직무수행(11개), 부당이득 수수 금지(7개), 건전한 공직풍토 조성(3개) 등이다.

새로 시행되는 공무원 행동강령에 따르면 앞으로 공무원은 민간에 금전 출연을 요구하거나 인사·계약 등의 부정청탁을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직무 관련자나 부하직원 등에게 사적인 업무를 요구하는 것도 금지된다.

또 신규 임용되는 차관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는 민간분야에서의 3년 이내 업무활동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고위공직자 등이 그 가족을 자신의 소속기관이나 산하기관에 채용토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행동강령 위반은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견책 등 경징계부터 파면 등 중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이에 공무원들은 청탁을 금지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2016년 시행된 데 이어 행동 기준까지 엄격해지자 잔뜩 움츠린 분위기라고 전해진다.
 

퇴직 공무원 만남 규제
긴장감 높아진 관가

 

특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퇴직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선배 공무원과 골프, 여행 등 사적으로 만날 경우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다만 직무와 관련이 있는 퇴직 공무원만 신고 대상이다.

이를 놓고 공직 사회의 평가는 엇갈린다.

충남도청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퇴직 후 2년까지 적용하는 것은 삶을 경직되게 만들 것”이라며 “‘근무 시’까지만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좀 더 나은 국민적 생활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과도 규제라는 우려도 나온다.

송치영 대전도시철도공사 국장은 “퇴직자와 재직자 간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정부 의지는 그간의 행태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하지만 공무원 행동강령이 아니더라도 각종 법규로 이미 규제를 하고 있는 만큼 이중 삼중 규제를 만든 셈이다. 특히 ‘적발하면 기관장에게 신고를 하라’는 점 때문에 일하는 분위기가 소극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모든 공무원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키우는 공무원도 있다.

영등포경찰서 소속 양평2동 치안센터에서 퇴직한 지 2~3년 지난 B씨는 “3년 이내 직무 관련성이 있는 부서 근무자와 직무 관련성이 없는 부서 근무자로 나눠야 한다. 또 허가 권한이 없는 하위직 근무자와 허가 권한이 있는 상위직 근무자로 나눠야 더욱 효율성 있는 규정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깨끗한 공직자를 예우하면서 부정부패의 가능성을 막는,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며 “아울러 관련직 근무자는 신고 의무와 책임 등을 명확히 구분하는 명확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퇴직한 지 2년도 안 된 공무원이 상사라는 이유로 ‘청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무원 행동강령이 이를 차단해 줄 것이라며 반기는 이들도 있다.

30년 이상 경찰에 재직하다 총경으로 퇴직한 주모씨는 “퇴직한 선배들이 취직 자리 등을 부탁하려고 만나자고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살 부딪치며 일한 사이에 매몰차게 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법적 규정이 생겨 아예 막으면 서로 어색할 일이 줄어들 것 같다”라고 했다.

직업군인 성모씨는 “선·후배 간 친목을 위해 모이는 시대는 끝났다”며 “앞으로는 거절하기 어려운 선배의 부탁에 핑계를 댈 수 있겠다. 전관예우의 불신을 없애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 평균 접대비 감소

 

실제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의 평균 접대비가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정석윤 한양대 경영대 교수와 최성진 교수의 ‘김영란법 전후 기업의 접대비 지출 비교: 상장 기업의 회계 자료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후 표본기업의 분기당 평균 접대비 지출은 2억9300만 원에서 2억7200만 원으로 감소했으며 분기당 접대비 증가를 보고한 기업도 김영란법 시행 전 53%에서 38%로 감소했다.

특히 기업의 접대비 감소는 규제가 심한 산업일수록,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를 두고 연구진은 “기업은 합법적·비합법적 정치 전략을 모두 구사하는데 전자에 해당하는 비시장행위를 줄이는 방식으로 반부패 법안에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기업이 김영란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중소기업 대표 2명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업체 관계자들은 “김영란법 덕분에 공무원에 대한 심리적인 종속이 줄었으며 효과가 의심스러운 상당한 교제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업무 효율이 늘어났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지만 일부에서는 “업무상 필요한 교제비를 합법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제한돼 영업에서 손실도 있다”라고 불만을 보이기도 해 새로 시행된 공무원 행동강령으로 청렴 행정을 구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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