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출제 오류는 빙산의 일각?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1984년부터 실시된 한국정보올림피아드(KO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주최하고 그 산하기관인 한국정보화진흥원(NIA) 및 14개 시·도 교육청이 주관한다. 국내 과학 올림피아드 중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는 대회는 한국정보올림피아드가 유일하다.

하지만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에서 출제 문제 오류가 발생했다. 지난 14일 제35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지역대회에서다. 그 후 민원이 빗발치듯 쏟아졌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과기정통부는 출제 오류로 인한 불이익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원 구제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국내 유일 정부 주관 과학 올림피아드 대회 7문제 출제 오류 망신
2016년 제도 개편 이후 IT 영재 발굴 보다 ‘스펙’ 쌓기 변질 우려도



한국정보올림피아드(이하 정보올림피아드)는 경시부문과 공모부문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공모부문은 학생이 스스로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작품성을 평가하는 대회로, 2016년도까지는 각 시·도에서 지역예선을 치렀으나 작년부터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서류 심사를 통해 본선 진출자를 선발한다. 우수 시상자에게는 국제과학기술경진대회(ISEF)의 컴퓨터 공학 부문 참가 후보 자격이 주어진다.

경시부문에서는 수학적 지식과 논리적 사고 능력을 바탕으로 한 알고리즘과 프로그램 작성 능력을 평가하는데, 참가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제와 시간제한을 준 뒤 컴퓨터를 이용해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는 형식이다. 이번 논란 해당 부문이기도 하다.

현재 정보올림피아드 경시부문은 지역대회와 전국대회라는 2단계로 치러진다. 지역대회가 ‘예선’이라면 전국대회는 ‘본선’에 속한다. 먼저 시행되는 지역대회에 참여한 이들 중 순위권 안에 든 사람들만이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 전국대회에서 대표 학생으로 뽑히면 국제정보올림피아드(IOI)에 나갈 수 있게 된다.

전국대회, 나아가서는 국제대회의 출전권을 놓고 겨루는 이 지역대회에서 복수답안과 정답 없음 등의 출제 오류가 발생한 문제는 각각 초등부 1문제, 중등부 2문제, 고등부 4문제 순이었다.

지역대회의 경우 오지선다형 객관식 필답고사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 출제 오류는 치명적이다.

대회 이후인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18 정보올림피아드 대회 논란의 합당한 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안”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주최 측에서 인정한 오류 문항만 7문항인데, 이는 전체 출제 문항 140문항 중 5%에 해당하는 수치로 역대 최다”라고 전하며 시험을 준비했던 많은 학생들이 오류 문항으로 인해 다른 문항을 해결할 시간을 빼앗겨 공정하고 정확한 시험 운영이 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시험’ 혹은 ‘본선 진출 인원 추가’의 방식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제안을 남겼다. 다음 달 18일까지 이어지는 해당 청원에는 27일 기준 557명의 인원이 참여했다.

항의가 쏟아지자 주최 측인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과 엄영익 한국정보과학회장은 “지역대회 문제 출제로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전국대회 진출자 선정 과정에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의신청 기간을 연장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설명 드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지역대회가 가진
‘태생적인’ 문제

 
대규모 문제 출제 오류 사태 이후 기자에게 한 통의 제보 메일이 왔다. 제보의 내용인즉 이번에 터진 출제 오류 사태만을 적시해서는 안 되며 제도 자체의 근본적 오류를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 A씨는 현재 IT교육업계에 종사하는 인물로 이 분야 전공자다.

A씨는 “올해 정보올림피아드 지역대회에서 수많은 출제 오류가 발생하면서 많은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문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으며, 제도적으로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태생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며 오지선다형 중심의 필답고사의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지역대회가 필답고사로만 치러지게 된 시기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보올림피아드 경시부문은 지역예선(객관식 필답고사)→지역본선(실기)→전국대회(실기)로 운영됐다.

지역예선과 지역본선이 현재의 ‘지역대회’로 바뀌게 된 이유는 2015년 지역본선에서 잡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프로그램 입력 방식을 파일 입출력으로 해왔는데, 별도의 고지 없이 대회 당일 표준 입출력으로 변경한 것이 논란의 단초가 됐다.

이후 대회 운영위원회 측이 회의를 통해 파일 입출력 형식의 코드는 0점 처리한다는 결정을 내려 피해 학생이 속출했고, 이들의 이의신청이 쇄도하자 대회 관계자들은 지역대회를 예선·본선으로 나누지 말고 통합하자는 취지의 대회 개선안을 내놓았다. 이후 2016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이에 관해 A씨는 “제도 개선에 따른 부작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행정편의적 발상에서 탄생한 제도가 바로 오늘의 정보올림피아드 대회”라면서 “결론적으로 정보올림피아드 대회에서 필답고사는 이제 퇴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객관식 필답고사가 문제 되는 이유는 정보올림피아드의 본래 취지인 프로그래밍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디딤돌이 되기보다는 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 영재·과학고등학교 학생 등에게 또 다른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30% 비중으로 출제되는 수학문제를 다 맞추고, 실제 프로그램을 작성하진 못하나 이론적으로 익혀 답을 찾는 요령만 터득하면 쉽게 스펙을 하나 더 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보올림피아드가 ‘스펙’이라 불리는 이유는 대입 입시와 직결됐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대학에서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을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해당 학교에서는 ‘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이라는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추세를 보인다.

소프트웨어특기자 전형 지원 시 정보올림피아드 수상을 지원조건으로 내걸거나 또는 외부 수상 기록을 제출을 통해 가산점을 얻을 수 있다. 정보올림피아드 경시부문의 경우 지역대회를 거친 전국대회 진출자는 0점만 맞지 않는다면 전원 수상 가능하다. 그래서 상을 받기 위해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A씨는 “객관식 필답고사는 선택형 문제를 잘 푸는 머리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것일 뿐 문제해결력을 갖춘 창의적 인재를 선발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대회는 상대평가를 기준으로 하는데, 영재·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커트라인을 높여 프로그래밍에는 소질이 있으나 이론적인 부분이 취약한 학생의 경우 커트라인을 넘지 못해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이어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문제의 형태나 난이도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회의 선발 방법에 있는 것인데 제도의 개선 없이 문제의 유형이나 난이도의 조절을 통해 해결하려 하니 이번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오류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정보올림피아드 경시대회에 참여한 학생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비쳤다. 현재 고등학교 재학 중인 B군은 “지역예선이 필답고사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실전 알고리즘에 강한 학생은 본선에 진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런 학생들이) 실제로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은 본선이다”라면서 “(특성화고등학교에 실전에 강한 친구들이 많다 보니) 특성화고가 밀리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과학고에서는 본선에 진출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필답고사에는) 문제 오류도 많았지만 (실제로 쓰이는) 알고리즘보다 문법 문제의 비율이 많이 올라가 싫다는 친구, 실전에서는 절대 안 쓸 코드가 시험 문제로 나온 걸 보고 당황했다는 친구도 있었다”고 전했다.
 
‘성의 없다’
‘질 낮은 문제’
 

올해부터 정보올림피아드 지역대회 필답고사의 출제 경향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보올림피아드가 공식사이트에 올린 ‘2018년 제35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주요 일정 및 계획 안내’ 내용에 따르면 경시대회 문제 난이도를 낮춰 구성하고, 보편적 공교육 기반의 코딩 문제를 출제할 방침이며 초·중·고교 현직 교사가 문제 출제 및 검수위원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관련 업계 종사자, 실제 응시자인 학생 등에게 확연히 체감됐다. 시험을 응시한 고등학생 B군에게 출제 문제 난이도와 이번 논란에 관해 묻자 “문제 스타일이 달라져 객관적인 난이도 비교는 어렵다”고 말하면서 “출제 오류는 성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래밍) 실행은 해봤는지 의심될 정도의 문제, 답을 결정짓는 요소가 누락된 문제가 많아 중간에 몇 문제나 수정됐다. 문제에 다른 문제의 지문이 섞여 있는 것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IT업계 종사자 C씨 역시 “올해 정보올림피아드 지역대회 출제 문제의 특징은 난이도조정이 안 됐고 문제의 질이 낮아진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류가 있거나 문제가 성립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문제 출제와 검수 과정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A씨 역시 “올림피아드대회는 영재를 발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공교육 수준으로 문제를 출제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제 코딩 스크래치(scratch·아이들에게 그래픽 환경을 통해 컴퓨터 코딩에 관한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 교육용 프로그래밍 언어 및 환경. 프로그래밍을 처음 해보는 입문자들에게 권한다)가 공교육에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현재 공교육으로는 (프로그래밍) 문법도 못 익힌다. 전국대회에 입상한 애들을 선발해 국제올림피아드에 보내는데, (이건) 국제대회 나가지 말라는 소리”라고 덧붙였다.

문제 출제 오류 논란에 대한 대책을 묻기 위해 주최 측인 과기정통부와 연결을 시도했다. 이들은 전화를 통해 “문제점이 있다는 걸 인식했다”면서 “(제도) 개선을 위해 대책반을 꾸려 대응할 방침”이라며 “여러 분야의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고 답했다.

정보올림피아드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정보진흥원의 입장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정보진흥원 측은 “구제 관련해서는 중복 답안으로 인정되는 26명을 전원 구제했다. 올해의 경우 예년보다 평균 응시자 수가 많아 그 비율을 적용, 총 147명으로 구제인원이 확대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논란에 대해 “향후 TF(태스크포스)를 개설할 방침이다. 이곳에서 운영·문제 출제 방안 등 대대적인 재검토와 논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찬반 갈리는
실기시험 부활

 
이번 지역대회의 문제 출제 오류가 커다란 문제라는 점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대안책인 지역대회 본선 실기시험 부활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다.

C씨는 “지역본선 실기대회가 없어지고 올해 문제 난도가 낮아진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전국대회에서 요구하는 수학적 문제 해결력과 기초 알고리즘 능력을 필답고사를 통해 충분히 평가할 수 있으며 작년의 경우 난도가 너무 높아 문제였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보와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학생이 정보올림피아드 시험을 치르고 난 다음 (높은 난도에) 낙심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다음에 또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올해 난도를 낮춘 것은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C씨는 “실기 실력은 뛰어나지만 필답고사가 약한 학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선발방법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할 만큼 의미 있는 비율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반면 A씨는 “필답고사와 실기고사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친구가 분명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지금 제도가 문제없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창의적인 IT 인재를 뽑는 게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아닌가”라면서 한국정보올림피아드의 취지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프로그래밍의 경우 풀이 과정에 각자의 개성이 반영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창조적인 방법이 탄생할 수 있다. 이처럼 프로그래밍에 소질과 흥미가 있어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학생이지만, 필답고사의 커트라인이 너무 높아 전국대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어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정작 교육 현장에서는 정상적인 코딩교육보다는 문제의 답을 쉽게 찾아내는 요령 같은 주입식 교육에 몰입하고 있다”면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코딩 교육의 방향성을 정보올림피아드가 기존의 주입식 교육으로 역주행하도록 일조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개선방안으로 A씨는 필답고사의 퇴출 또는 지역본선 실기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면서 “주최 측의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한 충청북도 교육청은 자체적으로 이전의 형식(지역예선 필답고사→지역본선 실기고사)을 이어간다. 놀라운 건 충청북도에서 지난 2년간 전국대회 진출자 전원이 수상했다”고 말했다.

국민청원에도 비슷한 논지가 제기됐다. 청원자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예선 대회를 실기로 변경하는 것”이라면서 “문제에 대한 프로그래밍적 분석과 해결능력을 묻는 것이 대회의 본질이지, 지엽적인 코드의 분석과 한 언어에 대한 종속적인 문제풀이는 오히려 학생들의 실력 증대를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고등학생 B군 역시 “개인적으로는 지역 본선이 부활해서 실질적인 (프로그래밍) 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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