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행 자처’ 입장을 밝힌 뒤 곧바로 검찰로 직행했던 이회창 전총재가 정계은퇴를 후회할만큼 절박한 심경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정가에 파장이 일고 있다. 하지만 이 전총재가 대선자금 수렁에서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 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을 기자회견 전날 일부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전해져 정계복귀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도 낳고 있다. 물론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 이종구 전언론특보는 “대선 후 정계를 떠나면서 국민께 말씀드렸다. 그 심경에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수사막판에 최돈웅 의원에 이어 자신의 최측근인 서정우 변호사가 구속되면서 이 전총재는 심적 압박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 서정우 변호사는 구속 직전 이회창 전총재를 독대했다.서 변호사가 LG측 관계자로부터 검찰에 들어가는데 진술을 안 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검찰 소환이 임박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종구 전 특보는 “이 전총재는 당시 ‘어떻게 자네가 구속되는 것을 보겠는가.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지시했다고 말하고 (검찰에)들어갈까’라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이 전총재는 당초 대선자금 파문이 대국민사과와 지난 세풍수사 때처럼 일부 인사들이 책임을 지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다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하게 됐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이 전총재측에 밝은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 전총재가 서 변호사로부터 불법대선자금 수수사실을 보고 받은 뒤 또 다른 측근을 통해 정확한 자금 규모와 용처를 파악토록 지시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서정우 변호사 긴급 체포 직후 그의 심경을 이렇게 얘기했다.“이 전총재는 이런 식으로 대선자금 파문이 확산될지 몰랐다고 했다. 또 내가 다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나를 위해 지난 대선 때에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도와 준 사람(서정우 변호사 등)들이 다치는 것을 내가 막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스럽다며 개탄했다.”이와 관련 일부 측근은 “만약 이 전총재가 정계은퇴를 보류하고 당에 남아 있었다면 이처럼 공멸의 길은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은 야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측근은 “대선자금 정국으로 ‘망연자실’했던 이 전총재가 최병렬 대표의 대폭적인 중진 물갈이론으로 촉발됐던 서청원 전대표와 충돌 양상을 몹시 불편하게 생각했다”고 전해, 이 전총재와 현지도부와의 갈등을 시사했다.서 전대표는 “최 대표가 사당화를 꾀하고 있다”며 물갈이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서 전대표는 ‘어려울 때일수록 당이 단합해야 한다’는 기류를 조성, 물갈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전총재 측근인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당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당의 분란이 일 것이 뻔한 물갈이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당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선때 이 전총재를 보좌했던 소장파 남경필 의원도 “지금은 당이 뭉쳐야 할 때”라며 “이런 상황에서 50% 물갈이 등의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이 당내안팎으로 위기감이 팽배한데 대해 이 전총재의 한 측근은 “이 전총재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당 대표 경선에서 측근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말고 중립을 지켜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 결과적으로 최병렬 대표가 당선되도록 도와준 셈 아니냐”며 불만을 내비쳤다.이 측근은 또 “이 전총재가 감옥행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도 현지도부가 정국돌파를 위해 이 전총재를 벼랑으로 몰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이 전총재는 기자회견 직후 측근들에게 “내가 정치를 너무 몰랐다. 지난 7년 동안 만들어온 한나라당의 역량이라면 이번 대선자금 정국으로 나라안팎을 이렇게까지 위기로 몰고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탄식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부국팀 멤버였던 한 측근은 “이 전총재가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고 전하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싶다는 심경을 내비쳤다”고 밝혔다.

이 전총재의 행보에 대해 정가에서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았다. 현실 정치에 대한 강한 비판은 곧 정계복귀의 신호탄을 의미하는 것이고, 대선자금수사에 정색한 이후 검찰출두라는 깜짝 쇼를 연출한 부분은 이 전총재의 평소 스타일을 감안할 경우 그의 주장대로 악의적인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여기까지는 이 전총재의 화려한 부활도 예상할 수 있다.이같은 이 전총재의 심경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회창식 ‘너 죽고 나 죽자’는 것 아니냐”면서 의미를 격하하기도 한다. 반면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열린우리당 역시 ‘한나라당 구하기’ 일환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미 이 전총재와 구지도부가 대선자금 수사로 치명상을 입었다는 점과 최 대표의 구상처럼 노무현 대통령도 짜면 나온다는 확신아래 정국반전도 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전총재의 돌출행동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 전총재의 정계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또 다른 핵심당직자는 “한나라당은 이제 수습 국면이다. 이 전후보가 검찰에 나간 마당에 국민들의 관심은 당연히 노무현 캠프로 쏠릴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번 수사를 통해 최 대표가 구상해온 대대적인 물갈이를 실현할 외부 조건이 성숙됐고, 게다가 검찰수사의 초점이 대선자금 사용처를 포함해 국회의원 개개인의 비리로 옮겨질 경우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최 대표 체제 이후에도 지속된, 이 전후보의 측근들 중심의 ‘재옹립’ 기도가 자연스럽게 차단되고 차기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서 이 전후보를 배려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도 당의 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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