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계 관계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군인공제회가 매각을 앞둔 대우건설의 인수자로 나설 뜻을 강력히 비쳤기 때문이었다. 대우건설은 현재 M&A시장에서 ‘최고의 노른자’로 불릴 만큼 빅아이템 중 하나. 그러나 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군인공제회의 행보는 금융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군인공제회는 다른 펀드들과 결합해 인수에 나서겠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그같은 야심을 내비친 것만으로도 업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군인공제회의 기업인수 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외매각이 불발된 하이닉스의 인수 참여의사도 스스럼없이 밝힌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하이닉스는 대우건설보다 자금이 더 필요하다. 다른 펀드와 힘을 합치더라도 하이닉스는 최소 수조원대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대체 군인공제회는 어떤 곳이길래 그같은 초대형 M&A 참여의사를 대수롭지 않게 밝힐 수 있는 것일까.“‘군바리’가 투자를 해봤자, 얼마나 잘 하겠어.” 지난 1982년 군인과 군무원의 복지증진을 위해 223억원으로 시작한 군인공제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렇듯 차가웠다. 조직의 대부분이 군인들이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돈이 몰리는 곳을 알려면 군인공제회를 따라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혁혁한 전과를 세우고 있다. 현재(6월 30일) 국인공제회의 지갑 속엔 총 4조 8,025억원이 들어가 있다. 이 막대한 현금 가운데 57.9%(2조7,807억원)를 건설사업에, 33.6%(1조6,643억원)를 금융투자에 쏟아 부으면서 이 분야의 큰 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한 마디로 20여년만에 자산규모가 200배가 넘게 커졌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금호타이어 투자다. 지난 2003년 지분 50%를 주당 1만원에 인수한 금호타이어는 현 주가 가 1만6,000원대로 뛰면서 평가차익만 1,000억원이 넘는다. 올해 초 지분일부를 매각하면서 350억원의 매각차익을 거뒀고, 지난 2년간 배당금으로 370억원 이상을 받아갔다. 한국캐피탈도 마찬가지. 지난 2001년 71.88%를 117억원에 인수, 현재 주가 기준으로 985억원의 지분가치를 갖고 있어 868억원의 평가차익이 예상된다. 이미 배당금만으로도 투자원금을 회수한 상태다. 이처럼 군인공제회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최종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투자후보를 선별하는 투자심사부서의 저력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사업본부, 건설지원본부, 금융투자본부의 구성원들이 사실상 군인공제회의 핵심 ‘팔과 다리’들이다.

군인공제회의 투자 결정은 4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결정한 후 집행된다. 사후에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연간 500~600건에 달하는 투자신청서를 일일이 검토하고 심사해서 최종적으로 ‘돈이 될 것 같다’는 20~30건의 후보로 간추리는 작업은 앞서 언급한 각 사업부서의 몫이다. 투자제안이 들어오면 사업총괄과에서 1차적으로 검토를 한다. 여기서 건설이냐, 금융이냐에 따라 해당부서로 넘겨진다. 전체 자금의 절반이 넘는 자금이 투여되고 있는 건설부분이 주력부대이다. 건설사업본부 7명, 건설지원본부 10명 등 공병 출신 장교 17명이 주도한다. 최종천 건설사업본부장, 조정제 건설지원본부장도 공병장교출신이다. 군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회원아파트 및 주상복합아파트 건설사업을 잇따라 성공으로 이끌면서 군인공제회의 덩치를 키운 장본인들이다. 우명원 회원주택팀장은 아파트 부지매입·시공·분양분야 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다. 안영구 공사관리팀장은 민원 및 보상문제 해결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받는다. 금융투자본부는 김성중 본부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금융투자본부는 금융전략팀 기업금융팀 투자운용팀 등 3개팀으로 구성된다. 경리장교 출신 8명을 포함해 총 16명이 포진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외부의 전문가들과 전문기관 등을 통해 충분히 자문을 구하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이 특징. 김 본부장은 육군본부 예산편성과장, 3군사령부 예산편성과장, 군수사령부 예산회계차장 등을 거쳐 지난 84년 미국 플로리다 공대 MBA를 취득했다. 기업 M&A건과 같이 신속하게 투자결정이 필요할 경우 김 본부장과 베테랑 경리장교 출신인 김창현 금융전략팀장이 1차 의사결정을 내린 뒤 재무이사와 이사장에게 결재를 받는 ‘핫라인’이 구축되어 있다. 이렇게 결정된 투자계획은 이사회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시킨다.이사회는 이사장(의장), 관리이사, 재무이사, 사업이사 등으로 구성된다. 이사들은 언론에 이름이 나가는 것을 극히 꺼려한다. 투자에 관한 여러 가지 민원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식한 사전 조치인 셈이다. 김승광 이사장만이 수면위에 올라 대외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가 폐쇄적인 조직운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이유다. 그나마 김 이사장이 최근 투자기업인 CT&T와 공동으로 골프카 설명회을 통해 공개석상에 나선 것이 화제가 될 정도다.M&A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불패의 신화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제회는 지난달 8일 무료신문인 데일리줌(법인명 미디어줌)의 신문제작과 배포, 광고영업을 메트로(무료신문)에 위탁했다. 군인공제회는 지난해 6월 창간이래 100억원 이상을 이 신문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경영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한때 모일보·모신문 등을 상대로 매각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자 결국 경영 위탁이라는 고육책을 쓴 것이다. 공제회측은 데일리줌의 지분 90%를 갖고 있는 사실상 오너이다. 또한 지난 7월에는 공제회가 강원도 콘도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추진하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공제회가 시행사로 선정한 4A그룹의 조모 대표가 공제회로부터 받은 450억원의 투자금 중에 80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아 구속된 것이다. 이 와중에 당시 군인공제회 직원이 조 대표로부터 3억5,000만원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받은 혐의까지 포착되기도 했다. 군인공제회가 펼치고 있는 사업을 보면 부동산에서부터 기업M&A, 골프장 사업까지 거의 돈이 되는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중구 계산동 2가 계산성당 뒷골목에 있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민족시인 이상화 시인의 고택도 군인공제회가 소유하고 있다.

인근의 주상복합건물 건축을 추진하고 있어 지난해 20억원을 주고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만간 대구시에 기부채납키로 되어 있다.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서 지상 52~54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두산위브를 두산산업개발과 함께 분양할 계획인 것이다. 9월 지하철 2호선 개통을 앞두고는 범어역 인근의 범어사거리 역시 ‘폭풍전야’의 모습이다. 이미 영남호텔 뒤편 1만평을 사들인 군인공제회가 재개발을 준비하고 있어 인근 주택가는 물론 상가까지도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군인공제회측은 ‘시중금리가 4~5%에 불과한 데 반해 회원목돈 저축이자를 8.0%까지 보장해줘야 하고 각종 복지사업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선 다양한 형태의 수익사업이 필수’라고 밝혔다. 실제로 연 2,500억원 이상의 영업수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군인공제회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군인공제회는 어떤 곳 - 20년만에 200배 ‘투자신화’

1982년 출범한 군인공제회는 한국의 육, 해, 공, 해병대 등 모든 군 출신 인사들 중 하사 이상을 비롯해 군무원, 국방부 산하기관 공무원이 회원으로 가입하는 사단법인이다. 이 단체는 직업군인들이 군 제대 후 사회적응이 어렵다는 점에 착안, 전역 후 안정된 생활보장을 위한 상부상조 기구의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83년 군인공제회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84년 2월 출범했다.군인공제회는 2005년 8월 말 현재 제일식품, 대양산업, 고려물류, 공우ENC 등 7개 직영사업체, 용산대행, 한국캐피탈 등 5개 산하법인체, 태릉 남성대 남수원 등 3개 골프장(수탁관리업체) 등을 산하 사업체로 두고 있다. 현재 이 단체의 운용기금 규모는 4조8,025억원. 기금의 재원은 회원(2005년 6월30일 기준) 16만2천여명이 내는 회비로 조성됐으며, 회원의 84년 이후 21년동안 낸 총저축액은 2조5,638억원이다.

2004년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150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인공제회 운용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국민연금과 달리 군공제회 기금은 자체적인 투자판단에 의해 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재량폭이 넓은 편이다.공제회의 직영사업체는 말 그대로 직영하는 곳이고 법인체는 계열사와 같다. 반드시 100% 지분을 가지지 않은 곳도 있다. 수탁관리업체인 골프장 3곳은 국방부 소유로 군인공제회가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군인공제회의 헤드쿼터인 본부의 총 인원은 156명으로 모든 투자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본부는 주요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거쳐야 하는 의사결정과정이 매우 짧게 짜여져 있는 것이 경쟁력이라는 평을 받는다. 막강한 자금력을 감안하면 조직 규모는 민간 기업체와 비교할 때 빈약해 보이지만 일당백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군인공제회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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