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7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CCMM) 12층 우봉홀에서 금융 관계자들의 눈길을 끄는 한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명칭은 ‘칸서스자산운용 출범식’. 이 자리에는 윤태순 자산운용협회 회장을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과 금융감독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인사, 여·야 국회의원, 금융계 관계자 등 총 400여명이 참석했다. 일개 자산운용사가 출범식을 갖는 행사장에 금융계인사, 정부 관료(금감위), 국회의원 등이 대거 모이게 된 속내용을 뜯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그것은 이날 행사의 주최자인 칸서스자산운용 김영재 회장의 ‘막강 파워’가 작용한 것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 98년 ‘금융검찰’로 불리며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금감원과 금감위가 출범할 당시 이 조직의 대변인 겸 금감원 부원장보를 지낸 인물이다. 그에겐 DJ정부 시절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한 이헌재 사단의 ‘오른팔’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그는 2003년 이른바 ‘이헌재펀드’의 실무를 맡아 추진하면서 자산운용업계에 뛰어들었다. 김 회장이 사모펀드시장에 뛰어든 이후 최근들어 전직 관료들의 사모펀드(PEF)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관료시절 닦았던 인맥을 활용하여 사모펀드를 조성, M&A시장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는 곳은 김영재 회장의 칸서스자산운용. ‘이헌재 펀드’가 당시 이 부총리의 입각으로 무산되자 김 회장은 군인공제회 등을 주주로 영입해 새로운 자산운용사인 칸서스자산운용을 지난해 설립했다. 출범 1년이 되지 않아 흑자로 전환하는 쾌거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 부분에서는 진로인수컨소시엄에 참여하였으나 무산되긴 했지만 자산규모로 볼 때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5,000억원대의 보고펀드를 운용하는 변양호 보고인베스트 대표도 재경부 관료 출신. 변 대표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거쳐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정통관료 출신이다. 지난달에 1차 보고펀드모집이 완료되어 국내 중견 기업 3곳을 투자 후보군으로 올려놓고 저울질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5월까지는 2차 펀딩을 마무리해 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새로운 펀드를 추가로 구성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들 외에 전 금감위 은행구조조정팀장이었던 김범석씨가 한국투신운용의 대표로 있고, 재경부 은행제도과장 출신으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비서관출신인 우병익씨가 K&P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우병익 대표는 한국산업은행(KDB)과 론스타가 50대50으로 투자해 설립한 KDB-론스타의 대표이사로 있다가 지난 2003년 12월 70억원어치의 론스타 지분을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형태로 인수했다. 개인 재산도 몽땅 털어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전직 관료 출신들이 사모펀드에 진출하는 이유는 뭘까. 전직 관료들은 우선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대형 자금을 끌어 모으는 데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막강한 인맥과 전직 관료라는 보증수표를 앞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 한 고위관계자는 “현 은행장들과 사장들이 전직 관료들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이지만 큰 돈을 출자하려니 고민되는 게 사실”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면 전직 관료들이 만든 사모펀드의 앞날은 밝기만 할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우선 생각보다 그렇게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보고펀드의 경우 당초 1조원 이상 모집을 예상했지만 절반인 5,000억원에 그쳤다. 또 현행법상 은행이나 기업, 해외펀드 등은 입찰제안서를 낼 때 투자자 명단 및 자금조성 내역을 제출해야 하는데, 내부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실사기관, 자문기관, 주채권 은행의 대주주 또는 자회사 (사모펀드 포함) 등은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도 장애물이다. 결국 관료 출신이 만든 사모펀드가 성공할지는 미지수지만 이들이 나중에 어떤 자리에 오를지 모르고, 이들이 몸담았던 조직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금융기관장들의 운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게 솔직한 반응이다.


# 쌍용건설·대우건설 M&A 사모펀드 참여하나

연내 매각이 추진되는 쌍용건설과 대우건설이 사모펀드의 대표적인 먹이감이다. 쌍용건설은 지분 20.07%를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인 캠코와 금융기관 등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55% 가운데 25% 가량에 대해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채권단측은 보유지분 전체를 일괄매각한다는 방침을 밝혀왔고 우리사주조합측은 경영권 확보를 할 수 있는 지분만 매수하면 되기 때문에 앞으로 채권단과 우리사주조합의 지분매각 협상에 따라 사모펀드의 전략적 투자유치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대우건설도 사모펀드의 인수가능성이 높다. 인수자금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단독으로 인수하기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제3자가 우선 인수에 참여한 후 사모펀드의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 업계의 고위 관계자는 “어차피 사모펀드는 돈을 좇아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면서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만 있다면 적극 M&A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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