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망해도 3대를 먹고 산다?’ 몰락한 재벌총수인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수백억원대로 평가되는 회사 주식과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 전 회장의 자녀들은 현재 20대의 나이인데다, 그동안 학생이었다는 점에서 회사 자본금 및 부동산 매입 자금 출처를 두고 잡음이 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 나 전 회장이 장남인 영돈씨를 앞세워 제과 회사를 인수, 경영 복귀를 노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아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는 거평그룹 몰락 후 수천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엄청난 국민혈세를 축낸 상황이어서 그의 재산문제를 둘러싸고 ‘도덕적 논란’의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나승렬 전 거평 회장은 무일푼으로 서울에 상경,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로 크게 성공해 그룹오너의 위치까지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 한 때 거평그룹은 재계 28위에 랭크됐을 정도였고, 나 전 회장 역시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촉망 받았다.

하지만 거평은 지난 99년 무리한 사업 확장, 오너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부도를 맞았고, 나 전 회장은 이후 공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인해 징역 2년6개월이 선고됐다. 그리고 그는 몰락한 재벌그룹 총수로 재계 인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나 전 회장은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형집행 정지’를 선고받았고, 그동안 줄곧 병원신세를 졌다. 현재 그는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나 전 회장이 재계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을 무렵, 그의 직계 자녀들은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축적하며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나 전 회장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거평프레야타운 임차인 연합위원회 관계자는 “나 전 회장이 법망을 피해 빼돌린 재산이 천억원대가 넘는다”며 “모두 다른 사람의 명의로 해놨지만, 실질적으로는 나 전 회장의 은닉재산”이라고 주장했다.

나 전 회장은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장녀 윤주씨는 ‘낙산개발’이라는 회사에, 장남 영돈씨는 빵 생산업체인 ‘기린’의 상무를 맡고 있다. 윤주씨는 1975년 생으로 올해 만 29세, 영돈씨는 1977년생으로 만 27세다. 그런데 실제로 이들의 재산목록을 보니 만만치가 않다. 이미 회사 주식과 부동산 등을 합쳐 수 백억원대의 자산가다. 어지간한 재벌 2세들보다 부자다. 나 회장의 장남인 영돈씨는 서현개발의 지분 20%를 갖고 있는 대주주이자, 이 회사의 대표이사다. 영돈씨가 20대 중반의 나이에 이 회사에 투자한 금액은 10억원. 서현개발은 부동산 개발, 건축 등을 하는 중소 건설회사인데, 올 초 빵 제조회사인 ‘기린’을 인수했다. 또 서현개발은 지난 99년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오피스텔 ‘이오빌’ 빌딩을 사들였다. 서초동 ‘이오빌’ 빌딩은 1만2,141평 위에 세워진 24층짜리 오피스텔인데, 20평형 오피스텔 한 채의 매매가격이 1억7,000만원선. 결국 영돈씨는 자본금 10억원을 투자해 서현개발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또 서현개발을 통해 강남에 최소 100억원대의 빌딩을 매입한 셈이다.

이 뿐이 아니다. 영돈씨는 ‘만강개발’이라는 회사의 주식도 36% 보유하고 있다. ‘만강개발’은 나승렬 전 회장의 아호인 ‘만강’을 따서 만든 건설회사로, 영돈씨는 초기 이 회사에 18억원을 투자했다. 영돈씨는 지난 2003년에 등기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25세였다. 영돈씨가 이 회사의 이사로 취임한 직후, 만강개발은 분당에 있는 주상복합상가의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분당구 금곡동 161번지에 있는 분당 ‘천사의 도시’다. 이 상가의 연면적은 1만6,000평이 넘는데, 평당 가격이 1,500만원 이상이라는 것이 주변 부동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영돈씨 개인 명의로 된 부동산도 있다.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본 결과, 영돈씨는 분당 금곡동의 165번지와 170번지 일대의 땅을 본인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금곡동 165번지의 총 4,100여평 중 3,200여평과, 170번지 총 5,900여평 중 4,700여평이 그의 명의다. 현재 이곳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서 있는데, 부지매입 금액만 해도 최소 400억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승렬 전 회장의 장녀 윤주씨도 재산이 엄청나다.

윤주씨는 동생 영돈씨처럼 서현개발 지분 20%와 만강개발의 지분 12%를 가지고 있다. 두 회사에 투자한 돈만 16억원이다. 게다가 그는 본인의 명의로 구로구 구로동 611번지에 빌딩을 갖고 있다. 이 빌딩은 1만5,000평 부지에 세워졌는데, 지하 3층~지상 12층 규모의 복합상가다. 등기부등본에는 윤주씨가 지난 2001년 6월, 이 땅을 매입한 것으로 돼있다. 평당 1,000만원으로 잡아도 1,500억원이 넘는다. 당시 윤주씨의 나이는 만 25세였다. 그리고 올 초, 나 전 회장의 장남인 영돈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서현개발은 3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제과업체 ‘기린’을 인수했다. 거평프레야 임차인 연합회측은 이들이 보유한 재산은 사실상 나 전 회장의 은닉재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회 관계자는 “20대 중반 나이의 자녀들이 회사에 1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수 백억원대의 재산을 축적한 것은 정상적이라 볼 수 없다”며 “이들 자금의 출처를 밝혀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 전 회장측은 “올 초 기린을 인수할 때에도 여러 얘기가 나돌았으나, 과거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전국 방방곡곡이 내 땅”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나 전 회장의 2세들이 투자한 회사가 전국 방방곡곡에 소재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나영돈씨가 대주주인 서현개발과 만강개발은 강원도와 경기도에 각각 본점을 두고 있다. 서현개발은 강원도 양양군에, 만강개발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다. 서현개발이 인수한 기린의 본점은 부산 해운대구다. 연합회측이 또 다른 계열사라고 주장하는 만강학원은 경북 대구에 소재지가 있다. 최근 연합회측은 나 전 회장에 대해 청와대 홈페이지에 제보 글을 올리는 등 정면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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