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명가 수성’이라는 강박관념이 화를 불렀나.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24시간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면서, 3년만에 무려 700억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상황이 이러하자 업계 일각에서는 차기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권 승계자로 강력히 부상중인 그의 ‘자질’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주)코리아세븐은 24시간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회사. 지난 88년 5월 설립됐고, 롯데쇼핑, 롯데리아 등으로 흡수됐다가 지난 99년 (주)코리아세븐이라는 단독법인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현재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황. 이렇게되자 롯데그룹은 ‘세븐일레븐’을 살리기 위해, 그룹의 우량 계열사 5곳을 동원, 수백억 원대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향후 이들 회사 주총장에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주)코리아세븐은 오는 9월 750억원을 증자키로 했다. (주)코리아세븐에 따르면 현재 이 회사는 자본잠식상태에 이르렀고, 이에 주주들이 보유 지분만큼 자금을 출자키로 했다는 것. 이에 따라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롯데리아가 128억, 롯데제과 123억, 호텔롯데 109억원, 롯데냉동 85억원, 롯데칠성 44억원을 각각 납입하게 됐다. 롯데그룹의 오너 일가인 신동빈 부회장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 등도 각각 10억원에서 50억원 가량을 쏟아부어야 할 형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갑자기 사업적자 폭이 커지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향후 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판단돼 증자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경쟁 업체에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 롯데의 ‘세븐일레븐’을 둘러싸고 증자 얘기가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한 관계자는 “롯데가 증자를 하거나, 사업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라는 얘기가 1년 전부터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업계 관계자들은 롯데의 적자 이유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가 이번에 증자를 결정하면서 불거진 ‘편법 지원’ 등의 문제는 뒤로하고서라도, 도대체 신 부회장이 경영을 어떻게 했기에 수백억 원의 손실을 냈느냐는 점 때문이다. 현재 편의점 시장은 보광그룹의 ‘훼미리마트’와 GS그룹의 ‘GS25’, 롯데의 ‘세븐일레븐’, 오리온의 ‘바이더웨이’ 등 4강 구도다. 그런데 이들 업체 중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롯데가 유일하다. 롯데가 지난 3월 공정위에 공시한 자료를 보면 ‘세븐일레븐’은 지난 2002년 171억, 2003년 356억, 2004년 25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총 781억원의 적자를 낸 것. 이와는 반대로 ‘훼미리마트’는 지난 2002년 133억, 2003년 185억, 2004년 228억원 등 3년 동안 총 546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바이더웨이’도 지난 2002년 60억, 2003년 21억, 2004년 38억원 등 3년 새 119억원을 벌었다. 롯데가 말한 ‘경기침체’ 핑계가 수 백억원의 적자에 대한 변명이 되기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 3년 동안 롯데의 ‘세븐일레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회사는 사실상 신 부회장의 첫 번째 경영 시험대이자, 그가 공들여 추진한 사업이었다. 신 부회장이 ‘세븐일레븐’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 신 부회장은 지난 99년 3월, 이 회사의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그가 이 사업에 관여하자마자 부친인 신격호 그룹 회장은 곧장 이사직에서 사임했고, 사실상 이 회사의 경영은 신 부회장에게 일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지난 2002년과 지난 3월, 이사회로부터 중임되면서 올들어 6년째 이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게 됐다. 하지만 신 부회장의 ‘세븐일레븐’에 대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내부는 곪아 들어가고 있었다. 경기 침체 탓도 있었지만, 무리한 경영확장과 전략 착오 때문이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기업인 롯데가 국내 최대의 유통 기업이다보니 편의점에 필요한 기본 인프라는 갖춰져 있었지만, 사실 회사 운영 시스템은 부실한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회사 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 중 하나는 ‘세븐일레븐’의 직영점 비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편의점은 크게 직영점과 가맹점 2가지의 형태로 운영되는데, 롯데는 유난히도 직영점에 목을 매왔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5월 한국편의점협회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롯데 ‘세븐일레븐’의 직영점은 전체 매장의 20.3%. 경쟁사인 훼미리마트는 2.2%, 바이더웨이 5.3%와 비교해볼 때 월등히 높다. 물론 편의점을 직영으로 운영하는 것이 이점도 많지만, 롯데는 직영으로 매장을 넓히는 과정에서 과다한 권리금을 지출하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구나 신 부회장은 회사가 적자인 상황에서도, 코오롱의 편의점인 ‘로손’ 248개 매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그 결과 롯데는 지난 2002년 매장 점포수를 기준으로 업계 1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해 회사는 171억원을 날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2년 편의점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다른 업체들은 경쟁력이 약한 매장들을 철수시켰지만 롯데는 반대였다”며 “당시 신 부회장이 유통 명가로서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얘기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결국 오너의 시장 평가와 경영미숙, 무분별한 공격경영 등이 한데 어우러져 3년 만에 8백억 원에 가까운 손해를 기록한 것. 더구나 이 손해를 롯데의 우량 계열사들이 나눠 책임질 것으로 알려져, 신 부회장으로서는 ‘세븐일레븐’으로 인해 이래저래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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